도대체 전공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생일까? 병원에서 급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둘 다 아닌 것 같다. 최소한의 노동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교육'이 아닌 '일'만 하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송명제, 이하 대전협)는 12일 '전공의 수련 및 근로기준에 관한 특별법안'을 공개하고, 김용익 의원(새정치민주연합)과 공동으로 입법을 위한 공청회를 국회의원 회관에서 개최했다.
강청희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말대로 "수련을 담당하고 있는 병원의 협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지만 병원협회는 참석하지 않아 김빠진 토론이었다. 단지, 수련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공청회의 모든 참여자는 전공의 수련 과정의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처우 개선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김용익 의원은 축사에서 "전공의 문제는 저한테 후배들 문제이기도 하고 제자들 문제이기도 하다”고 운을 뗀 뒤 "학습의 양으로 보나 노동의 양으로 보나 (현재의 수련이) 지나친 부분이 있고 한 인간으로서 인권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무진 의사협회 회장은 "의권 회복은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강창희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협회가 외부에 대한 투쟁만을 해왔다. 정작 의료계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인 전공의 수련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전공의들이 밝힌 '노동자'의 현실
-2010년 흉부외과 전공의 주당 150시간 근무 후 우울증 자살
-2011년 신경외과 전공의 주 168시간(100일 연속 당직) 근무 후 자살
-2012년 마취통증의학과 3년 차 전공의 주122시간 근무 후 심장마비
(같은 병원에서 2003년 가정의학과 전공의 120시간 근무 후 심근경색 사망한 적 있음)
-2013년 9월 내과전공의 주 150시간 근무, 가족에게 업무 스트레스 호소 후 투신자살
-2013년 12월 이비인후과 전공의 주 130시간 이상 과도한 업무, 지인에게 호소 후 자살
대전협에서 제시한 최근 5년간 과로로 사망한 전공의 자료다.
이쯤 되면 전문의가 대단한 이유가 그에 맞는 전문지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 정신'을 가지고 '안 죽고' 살아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송명제 대전협 회장은 "전공의 중 10%는 자살 시도 생각을 한다"는 통계 결과를 전하며,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를 통틀어 대한민국 전공의가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공의 업무과다는 환자에게 피해를 준다. 대전협이 밝힌 외국 통계에 따르면 전공의 의료 사고 중 5~36%는 전공의의 과로 때문에 일어났고, 24시간 연속 근무한 전공의는 심전도 판독에서 2배 이상 오류 가능성이 높았다. 전공의 개인에게 과다한 업무를 참고 버티길 강요하면 안되는 이유다.
인식의 문제가 아닌 실행의 문제
-전공의 73%가 월급이 너무 적고, 근무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의협 보고서
-전공의 수련 교육과정 및 결과에 대한 불만 제기가 많다-병원경영연구회의 ‘전공의 수련제도와 병원신임 제도 개선방향 보고서’
-전공의 98%가 법적 근무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중장기 전공의 수급 방향과 수련 과정 질적 개선
위 자료들은 최근 보고서가 아니다.
의협보고서는 1992년, 병원경영연구회는 2001년 8월, 중장기 전공의 수급 방향과 수련 과정 질적 개선은 2002년에 발표한 내용으로 지금 들어도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제목들이다.
그만큼 수련 과정 개선의 필요성은 20년 넘게 제기되어 왔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좌장을 맡은 최재욱 교수(고대의료원 예방의학교실)는 "(전공의 과정이) 지나가는 과정이어서 이런 문제들이 생긴다"고 진단했다.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것보다 버티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개인에겐 편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은 너무 오랫동안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을 '무시'했다.
송명제 대전협 회장은 "전공의 제도가 시작된 후 64년 동안 (전공의 처우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현재 일본, 미국, 유럽, 캐나다 심지어 말레이시아도 전공의 근무 시간이 50~80시간으로 줄어든 데 반해 우리나라는 1960년대 주당 100시간에서 2013년 120시간으로 오히려 처우가 악화됐다"고 밝혔다.
송 회장은 이어 "(의료계 내부에서) 알고 있으면서 고치지 않습니다"라고 개선을 촉구했다
"병원들은 항상 말합니다. '이제부터' 지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