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배경에 수도권 대형병원의 약 6600개 병상 규모의 분원 정책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애초부터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하기보다는 현재 주 88시간 가까이 근무하면서도 국내 최저임금과 큰 차이없는 수당을 받는 '저비용 전공의'를 많이 양산해 대형병원 분원에 필요한 인력을 채우려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17일 KBS 전주 라디오 '터놓고 말합시다'가 '의대 정원 확대 논란, 합의점은 없나'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 가운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이 정부의 비과학적인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의 배경에 빅5를 비롯한 대학병원들의 분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방적 의대 증원…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6600개 병상에 '저비용 전공의' 투여 목적?
김 회장은 "정부는 앞으로 2028년 이후 수도권에 들어설 분원에 필요한 의사들을 저임금의 전공의들의 인력으로 충당하려 한다"며 "공보의, 군의관, 전공의들은 월 200만~300만원선의 저임금을 받고 있다. 특히 전공의는 수련의라는 명목하에 주당 88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있다. 향후 수도권에 대학병원 분원이 들어설 계획인데, 정부는 병원에는 규제 없이 그저 값싼 전공의들로 인력을 채우겠다는 생각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아산·세브란스·서울대 병원을 포함해 가천대·경희대·고려대·아주대·인하대·한양대 병원 등 대형 병원 9곳은 2028년까지 수도권에 대형 분원을 총 11곳 의 분원이 개원될 예정이며 이 분원들의 병상은 총 6600여 개다.
김 회장은 "현재 서울·경기·인천에 있는 대형 병원의 병상은 약 3만개다. 예정대로 분원이 들어서면 불과 5년 사이에 기존 수도권 병상의 22%가 추가되는 것이다. 서울의 빅 5 대형 병원들은 이익이 나면 전문의 추가 채용 등 내실을 다지는 투자를 하지 않고 분원 설립 등 외형만 늘려 '저비용 전공의'에 의존하는 경영 방식만 고집해온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국 47개 상급 종합병원은 고난도 중환자 치료를 전담하는 대형 병원이다. 이 병원들은 정부 통제가 강해 비싼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비급여 진료가 제한된다. 대부분 건강보험 수가에 의존하는 급여 진료인데 우리나라 수가는 외국 주요국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결국 낮은 수가로 전문의를 더고용하지 못하는 부분을 낮은 인건비의 전공의들의 노동력을 착취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 따르면 혈액·영상 검사 등 수가는 원가의 110~140% 수준인 반면 국내 진료비 수가는 원가의 80% 수준이다. 외과 수술은 원가의 70~80% 선으로 상당수 의료 행위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김 회장은 최근 정부가 필수의료 공백에 왜 공보의와 군의관을 동원하고 있는 것 자체가 '저임금 의사'를 양산하는 데 대한 계획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대한전공의협의회의 2020년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평균 월급은 398만원이었다. 전공의 대부분이 법정 근무시간(주 80시간)을 꽉 채워 일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의 시간당 임금은 1만2000원 수준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9860원)과 큰 차이가 없다"며 "이런 전공의 1만3000명 중 1만1000여 명이 한꺼번에 이탈하자, 전공의의 ‘장시간·저임금 근무’에 의존해온 대형 병원들이 금방 휘청이게 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김 회장은 현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건강 보험 재정 외에 국고지원금을 통한 재정으로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상향하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의사의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법안을 만들면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전공의 개별 사직 문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고 지원 대책 없는 '필수의료 지원책' 믿기 어려워…"대통령실 개입 의혹도 해소해야"
이날 김 회장은 또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도 재정 마련의 가장 중요한 국고 지원에 대한 것은 없고 의료기관을 통제하기 위한 내용으로 오히려 필수의료 독약에 가까울 정도로 위협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료수가를 필수의료지원 만큼 기타 분야의 수가를 줄여서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이젠 간호사들에 미용 시장을 개방한다거나, 비급여를 전면 차단하려는 내용이다. 총액계약제가 복지부의 최종 목표인 듯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상태라면 대한민국 의료가 더 이상 손대기 힘들 정도로 회복하기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사들은, 특히 젊은 의사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 개선을 이야기 하지만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말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지불해서 해결하거나 국가가 세금을 직접 투입할 것인지 재원 마련 계획부터 결정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어려운 수련과정을 거쳐 필수의료 전문의가 되고서도 전문성을 살려 일할 병원이 없고, 개원의가 돼도 환자가 자신을 찾지 않는 데다 모든 리스크를 의사 스스로 떠안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자랑하던 한국의료의 실상은 건강보험이라는 왜곡된 가격결정 제도에 국민들이 수십년 간 길들여져서 세계 최저의 의료 수가를 당연한 것으로 수십년 간 믿게 한 결과"라며 "정치인들의 생각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의사 증원으로 과잉 공급된 의사들의 노동을 저비용으로 의료시장에 갈아 넣어 저수가의 의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정부가 급작스러운 대규모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의료계를 향한 초법적인 협박과 의사 직역에 대한 악마화 등도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논의된 의사증원 수는 500명선이었다"며 "설 연휴 직전, 2025학년도부터 2000명 증원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각계 예측지가 1000명 정도였는데 이걸 한참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해당 복지부 발표 직후 정부 여당을 둘러싼 모든 논란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개입하지 않았나하는 의심이 든다. 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언론사에게 '이거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 같나'라고 물어봤다는 증언을 들은 바 있다"며 "대통령 실이 어느 정도나 개입했는지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 회장은 "정부의 2000명 고집 때문에 의료시스템 붕괴가 시작됐다"며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빅5병원들은 현재 경영상태로는 2개월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빅5병원 보직교수들은 현재 상태에서 오래 버텨야 '2~3개월'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병원은 공공의료 비중이 높아 고정비 지출이 많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기간도 최대치가 2개월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