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삼천당제약 공시 논란을 비롯해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를 둘러싸고 계약 상대방과 실제 수취 금액, 연구개발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이 공시 제도 손질에 나섰다.
이에 따라 기업은 공모가 산정 근거와 기술이전 계약 조건, 파이프라인 전체 이력을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중요 정보는 언론보도보다 공시로 먼저 제공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공시 신뢰성을 높이고 일반투자자가 공시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방안'을 마련했다고 30일 밝혔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연구개발 기간이 길고 임상시험 성공이나 기술이전 계약 체결 등 미래 사건에 따라 기업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현재 공시는 기업별로 기재 방식의 차이가 크고 연구개발 진행 경과와 기술이전 계약, 임상시험 결과 등 정보가 여러 공시에 흩어져 있어 일반 투자자가 개발 현황과 주요 위험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업가치 산정의 핵심 가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거나 동일한 내용이 공시와 언론보도에서 다르게 전달되는 사례도 반복됐다.
이에 금감원은 2026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외부 자문위원과 제약·바이오 업계 등과 함께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TF'를 운영했다. TF는 증권신고서와 사업보고서·분기·반기보고서, 수시공시,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검토했다.
공모가 산정 4대 가정 표준화…기술이전 계약금·마일스톤 나눠 공개
제약·바이오 기업이 기업공개(IPO) 공모가를 산정할 때 사용하는 핵심 가정은 ▲예상 시장 규모 ▲임상시험 성공 확률 ▲허가·심사 위험 ▲개발 기간과 소요 비용 등 4개 항목으로 구분된다.
예상 시장 규모는 해당 제품이 진입할 수 있는 전체 시장과 기업이 실제로 공략하는 목표시장으로 나눠 기재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사업 역량을 고려해 실제 진출 가능한 시장 규모를 합리적으로 산정했는지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전체 시장을 산정할 때는 실제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범위를 정하고, 유병환자 수를 활용하는 경우 치료율과 진단율, 처방 가능한 환자군 등을 반영해야 한다. 외부 통계나 시장조사기관 자료를 사용할 경우 자료명과 작성 기관, 작성 시점을 제시한다. 최신 자료가 있는데도 과거 자료를 사용한 경우 그에 대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임상시험 성공 확률은 파이프라인과 임상 단계별로 제시한다. 동일한 약물을 여러 적응증으로 개발하는 경우에는 적응증별 성공 확률과 산정 근거를 각각 공개해야 한다. 성공 확률은 논문이나 기존 통계 등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산정토록 했다. 적응증과 항체치료제·유전자치료제 등 치료제 유형에 따른 외부 자료를 활용하고,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면 근거를 제시한다.
기술이전을 전제로 미래 매출을 산정했다면 예상 기술이전 시점까지 임상 단계별 성공 확률을 반영해야 한다. 기술이전 계약 체결 가능성을 별도로 산정한 경우에는 근거를 공개하고, 별도로 산정하지 않았다면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위험을 주석으로 기재한다.
허가·심사 위험도 별도로 공개한다. 허가 대상 규제기관과 적응증, 신청 품목, 신청 예정 시점, 예상 심사 기간과 허가 완료 시점 등을 기재하고, 선택한 허가 경로와 유형의 근거도 밝혀야 한다.
보완자료 제출 요구와 심사 지연, 허가 반려, 허가 범위 축소와 적응증 제한 등 발생 가능한 위험과 대응 방안도 함께 제시한다.
개발 기간과 소요 비용은 임상 단계별 일정과 비용으로 구분한다. 환자 모집과 데이터 분석, 허가 준비 등 일정이 늦어질 수 있는 요인과 단계별 자금조달 계획도 공개해야 한다.
추가 자금이 필요하면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 등 예상 조달 방안을 기재한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등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토대로 개발 완료까지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상장 이후 정기공시에는 파이프라인별 '연구개발 이력관리 총괄표'가 신설된다. 현재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뿐 아니라 개발 완료와 중단, 기술이전, 품목허가 등 과거에 추진한다고 공개한 제품의 전체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당초 계획보다 개발 일정이 늦어진 경우에는 지연 사유와 변경된 계획도 함께 기재해야 한다.
기술이전 계약은 총 계약 규모만 제시하지 않고 계약금과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로 나눠 공개한다. 각 금액의 지급 조건과 성격도 함께 안내한다. 마일스톤과 로열티는 임상시험이나 허가, 판매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지만 계약 체결과 동시에 수취가 확정된 금액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계약상 비밀을 이유로 계약 상대방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규모와 사업 역량 등 최소한의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수시공시에서는 최초 공시부터 직전 공시까지의 파이프라인 이력을 정기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임상시험 결과 공시에는 일반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의 의미와 해석 방법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중요 정보는 공시 먼저…승인 임박·사실상 성공 등 '과장' 표현 제한
금감원은 공시 내용이 시장에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보는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해야 한다. 언론보도는 공시 내용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공시되지 않은 중요 정보를 추가하거나 공시와 다른 내용을 담아서는 안 된다.
특히 과장되거나 주관적인 표현은 피해야 하며, 객관적인 사실과 수치에 근거해 정보를 전달하도록 했다. 모든 투자자가 같은 시점에 같은 양의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특정 투자자에게 정보를 먼저 제공해서도 안 된다.
기업에는 보도자료 배포 전 내용의 적정성을 확인하는 내부 승인 절차를 마련하고, 가이드라인 위반 시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조치하도록 권고했다. 최종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은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 논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꿈의 항암제'와 '기적의 치료제', '근본 치료 길 열어' 등 투자자의 오인을 부를 수 있는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표현을 제시하며, 명확한 임상 데이터 없이 효능을 강조하는 표현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기전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치료 원리를 발견했다는 의미로, 사람에게 투여해 효과를 검증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승인 임박'과 '사실상 성공'처럼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하는 표현도 주의 대상으로 꼽았다. 실제 규제기관 심사에는 여러 변수가 있고, 임상시험의 일부 유리한 결과만으로 전체 시험이 성공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50조원 규모 시장 정조준'처럼 전체 질환 시장을 해당 기업이 확보할 수 있는 수익처럼 표현하거나, '2조원대 기술 수출'처럼 최대 계약 규모를 확정 수익처럼 전달하는 사례도 포함됐다. 기술이전 총액은 임상시험과 허가, 상용화까지 성공해야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일 수 있어 계약금과 조건부 마일스톤을 구분해야 한다.
희귀의약품 지정과 패스트트랙 지정도 최종 품목허가나 효능 검증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명 인사 영입이나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역시 임상시험 성공이나 상업화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I와 비만 치료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 시장에서 주목받는 분야를 강조하는 경우에는 실제 연구시설과 전문 인력, 특허, 연구개발 조직과 비용이 확보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금감원은 개선안이 시장에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시장 참여자를 대상으로 릴레이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심사 사례와 시장 의견도 지속적으로 점검해 필요한 사항을 가이드라인에 반영할 예정이다.
제약·바이오 상장기업과 IPO를 추진하는 비상장기업은 증권신고서를 작성할 때 이번 가이드라인을 반영해야 한다. 금감원은 심사 과정에서 반영 여부를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정정 요구 등을 통해 기업과 투자자의 정보 격차를 줄이도록 지도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