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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증·희귀질환 신약 접근성 해결 '선급여 후평가' 제안에 정부 '난감'

    보건복지부 "콜린알포세레이트 같이 효능효과 떨어져도 재평가·퇴출 어려워"

    기사입력시간 2020-09-24 07:13
    최종업데이트 2020-09-24 07:13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중증·희귀질환자와 암환자들의 낮은 신약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 개선, ICER 값 조정, 무엇보다도 '선급여 후평가' 방식의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는 일정기간을 먼저 급여 등재한 후 리얼월드데이터(RWD),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필요시 상환하는 방식이다.
     
    신약의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비대면 토론회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은 23일 신약의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비대면 토론회에서 제기된 이 같은 전문가 의견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한 번 급여로 들어오면 재평가와 퇴출 자체가 어려워 현 제도 유지·보완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 허가 지연 문제 심각...선급여 후평가 방식 제안  

    이날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 대안 분석 연구' 주제 발표를 맡은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력 부족과 낮은 전문성, 잦은 보완 요청 등으로 신약 허가 지연문제가 심각하다"면서 "항암제의 경우 2년반~3년까지 걸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심평원에서 급여 적정성 여부를 결정시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값)를 고려하는데, 지나치게 ICER 임계치가 낮아 혁신신약 대부분이 기준을 맞추지 못한다"면서 "이 같은 문제로 2013년에 위험분담제(RSA)를 도입했으나 이 역시 긴 급여결정 과정과 이중가격, 제한적 대상 적용 등의 한계가 있다. 선별급여 제도 역시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약가정책도 낮은 신약 접근성으로 연결된다고 밝혔다. 공급자에 대한 관리·통제를 강화하고 다양한 약가인하 정책을 중복적용해 혁신 가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약가 통제를 많이하는 영국도 탄력적으로 ICER값 적용하고 항암제는 별도의 평가와 재정지원 시스템을 운영한다. 일본 역시 신약 허가 후 60일 이내에 급여를 해주고, 혁신성과 유용성에 따라 약가를 보정 가산해준다"면서 "우리도 신약 접근성 강화를 위해 탄력적인 ICER 임계치를 적용하고, 위험분담제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ICER 값을 국민의 소득수준 증가와 질병 위중도, 특이성, 환자 필요·요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동시에 경평이 어렵거나 암, 중증질환 적용 약제 등은 ICER 값을 범위(밴드)의 형태로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보다 효과적으로 신약의 급여를 확대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선급여 후평가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단 큰 문제가 없으면 급여를 적용하고 나중에 평가하는 것이다. 암, 중증질환 등 치료제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등재 후 필요시 상환하자는 의미"라며 "이 때 리얼월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해 사후 재평가를 추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건보 재정의 효율적 사용도 당부했다. 이 교수는 "첩약급여화가 공평한지 의문이다. 첩약은 안전성, 유효성 심사가 면제돼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없으며, 경제성평가도 받지 않아 비용효과성도 불분명하다"면서 "건보 재정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첩약 대신 안전하고 효과 있는 의약품에 재정을 활용해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확대하자"고 강조했다.

    건보 재정과 동시에 신약의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별도의 기금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정부가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로슈 최인화 전무(KRPIA 급여개선 소위 위원장)도 "혁신신약 급여시 최소 2년이 걸리고 7~8년이 걸려도 급여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게다가 가격도 낮아 신약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국가인지 의문이며, 해당 가격을 다른 국가들이 참조하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이 신약 등재시 한국을 우선순위로 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전무는 "한국시장과 지속가능한 파트너십 유지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제는 양적 접근성 뿐 아니라,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등을 위해 ICER 값을 조정하고 가치를 고려한 질적 접근성 확대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최영현 한국복지대 특임교수(미래건강네트워크이사) 역시 ICER값 차등화와 동시에 등재 기간 축소를 위해 발제자 제안처럼 선급여 후조정 방안하자고 했다.

    공단의 가격협상 단계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최 교수는 "위험분담제 조건으로 급여협상을 하고 매년 사용량 약가연동제를 연계해 조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콜린알포도 효과없어 재평가·급여축소했지만 소송으로 막혀...선급여후평가 시행 불가"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물론 건보공단, 심평원 등은 이미 적극적으로 항암신약 등의 급여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선급여 후평가와 같은 획기적 제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진 = 최경호 사무관.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최경호 사무관은 "이미 문재인케어 도입 후 위험분담제 도입, 경평면제 확대 등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진행해왔다"면서 "한정된 재원으로 제도 개선을 하다보니 진행상 임상현장에서 느끼는 속도 차이가 있겠지만, 제네릭 재정은 축소하고 신약은 확대하는 지출구조 합리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 사무관은 "오늘 많은 제안이 이어졌으나 ICER 임계치를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제안은 적용하기 어렵다. 보장성 강화에는 좋겠지만 약가 상승이 동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선급여하자는 제안도 작동여부에 의구심이 있어 적용이 어렵다. 실제 최근 효능효과가 떨어지는 콜린알포세레이트에 대해 급여 재평가·축소 결정을 했지만 제약사들이 소송을 제기해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처럼 먼저 급여적용해서 약을 먼저쓰다가 추후 재평가시 효과가 없어도 급여 축소나 퇴출이 되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건보공단 박종헌 급여전략실장은 "이미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증약제비는 2018년 대비 2019년 2배가 늘어났고, 면역항암제의 경우 지난해 1200억원이 사용됐다"면서 "최근 가격 협상기간 단축 노력도 기울이고 있으며, 위험분담과 사용량약가제도 연계도 고려해보겠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유전자 치료제 등 초고가 항암제의 경우에는 해외사례를 더 검토해볼 예정이다. 아웃컴(결과)에 기반해 재정을 줄이고 신속하게 도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계획"이라며 "오늘 제안 중 별도 기금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원 구조 등 해외사례를 검토해보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