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의과대학 학제가 예과 2년 본과 4년에서 6년 통합으로 바뀌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문제 파악이 쉽지 않을 교육부 관료를 설득해 결국 의대 학제를 6년제도 통합한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랜 난제의 해결에도 불구하고 일부 젊은 의사와 학생은 의대 본과과정이 6년으로 연장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정당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예과와 본과로 양분된 의대 구조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특히 예과가 이과로 분류돼 이공계 소속으로 존재하던 경우 예과의 필요성과 존재 사유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과 예과 무용론 만들어 냈다. 예과 학생은 임상 실습이나 인턴이 특정과의 소속이 아니듯 결코 이공대 소속 학생은 아니었고 의대 소속도 아니었다. 단지 학제 편제상 잠시 이과 계열 대학에 소속된 모양새였다. 설령 예과가 의대 소속이었어도 예과 교육은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리었다.
학생들의 예과 수업에 대한 인식도 그다지 학구적이지 않았다. 선배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는 예과 공부와 본과 공부는 연관성이 없으며 예과 성적은 추후 의사 경력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심지어 유행가를 차용해 “노세 노세 예과 때 노세, 본과 가면 못 노나니!”의 소리도 들렸다. 예과 교육을 담당한 이과 계열 교수들도 예과 교육 에 대한 관심도도 높지 않았고 결국 의대로 갈 학생들의 예과 수업에 대한 태도도 매우 불만족스럽게 여기였었다.
많은 대학이 예과 교육에서 세포학, 물리, 의학물리, 유기화학, 물리화학 등의 과학 중심 교육과 생물, 물리, 화학 등 이미 대입 고교과정으로 이수한 과목과 불필요한 중첩도 발생했다. 한 과목 60점 이하면 1년 낙제라는 징벌적 제도가 존재하였을 당시 다수의 학생이 예과에서 낙제를 경험해 의대 교수진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필자도 한 개인이나 미래의 의사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예과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우선 예과의 의대 귀속을 주장했다. 종합대학 내에서 예과의 소속 대학 변경도 순탄치는 않았다. 학내에서 예과 교육과 의대 귀속에 대한 보고서만 3차례나 출간했다. 무관심 속의 예과는 차라리 의대에 소속되어야 학생에 대한 관심과 교육과정 개선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일부 의과대학은 이미 예과가 의과대학 소속으로 학제 상 예과와 본과로 됐어도 교육과정은 실제로 통합 6년 과정의 개념을 도입해 이미 시행되고 있기도 했다.
예과 2년 중 첫해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양학부를 운영하던 대학들이 있었다.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 모두를 대상으로 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외국어, 글쓰기 등 고등교육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역량 배양과 전공과 무관한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전인적 교육을 지향했다. 그러나 교양학부가 내실화되려면 상당한 교육자산 투입이 가능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교양교육으로 저명한 대학을 보면 글쓰기 한 과목을 위한 교육자산 투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생 일 인당 한 학기에 제출하는 글쓰기의 양도 많고 일일이 조교의 교정과 결과물에 대한 정교한 평가 등 외국의 사례를 보고 단순히 과목개설로는 교육의 효과를 얻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과거 독일의 전통은 의과대학, 신학대학, 법과대학은 일반 학부와 달리 상위학부의 개념에 의한 6년제 과정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를 본받은 일본이 의학교육을 예과, 본과의 과정으로 분리하고 상위학부 개념의 과정을 도입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실제 일본은 이미 80년대 예과, 본과로 나누어진 의과대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의학교육에서 우리와 유사한 문제점을 갖는 일본도 일찍이 예, 본과 분리 제도를 포기한 셈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에서 예과, 본과를 갖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젊은 의사들이 염려하는 6년 통합 학제에서 의학 관련 학문 이외의 타 학문에 대한 경험 차단에 대한 우려는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사안으로 학제의 문제가 아닌 운영의 문제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의과대학의 교육목적과 목표의 설정이다. 지금도 많은 나라의 의과대학을 보면 같은 나라 속에서도 의과대학의 지향하는 바에 따라 교육과정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이 발견된다. 유난히 의과학을 추구하는 대학도 있는가 하면 인문학, 예술, 사회학이 강조되는 의과대학도 있다. 의과대학 간의 교육과정의 편차는 매우 커 보인다.
미국은 전문대학원이 기본이나 6년제 의대도 운영하고 있다. 6년이라는 단기간에 학사(B.Sc/B.A)와 의사(M.D.)를 동시에 취득하는 과정인데 너무 학습량이 많고 힘들어 아예 7년제 통합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반면에 캐나다는 문제바탕학습교육과정으로 유명한 맥메스터 대학과 같이 3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캘거리대학같이 5년제 전문대학원도 존재한다. 다양한 학제가 가능한 이유는 전문직 양성을 위한 학제 결정과 새로운 시도는 거의 전문직 스스로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법치와 관료주의에 익숙한 우리나라는 예과, 본과 등 학제가 교육법으로 엄격히 묶여있는 상황에서 혁신이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너무나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노력이 요구된다.
몇 년 전 홍콩의과대학은 5년제 의과대학 학제에서 6년제로 전환하며 인문사회의학과 연구역량을 중시하게 됐다. 그 후 30대의 젊은 학장이 취임하며 아예 3학년 전체를 'Enrichment Year'로 명명하고 학생이 원하는 공부나 경험은 학생 자유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야심찬 교육과정을 채택하였다. 학생이 의과대학에 지도교수와 함께 상의하며 자신의 계획을 제출하면 대학이 승인과 지원을 하는 형태이다. 한국어를 배운다고 신청한 학생도 있었고 빈곤국 봉사를 신청한 학생도 있었다. 학생이 원하면 6개월 단위로 두 가지 경험도 가능하게 했다.
인문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영국 등으로 유학을 해 1년 동안 석사과정 이수를 하면 의과대학 졸업 시점에 복합 학위를 수여한다. 의사회, 동문회등 장학기금으로 해외 유학 등 학생들의 자유 학년 활동을 지원했다. 학생 모두 결과물 제출이 의무이고 발표날을 정해서 성대한 행사도 개최했다.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의과대학에 대단한 행정력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직된 제도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부에 유권 해석을 요청하면 법적 규정을 들어 의과대학 재학생이 외국에서 석사과정 선수취득 학점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의대는 복합 학위가 법적 근거가 없음을 들어 불인정 될 것임을 자명한 사실이다.
의과대학 학제를 규정하고 의과대학의 평가인증 등은 Health Workforce Regulation에 속하는 분야로 전문성과 자율을 담보로 전개되는 전문직 인력양성에 관한 제반의 과정이다. 교육부 관리들은 의학교육에 대한 전문성은 없다. 한 부서에 오래 근무하는 인력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법이 과도하게 간섭하는 구조로 법 적용의 선진적인 방법으로 혁신이나 개선이 수월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교육 현장은 아직도 지독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혁신과 개혁의 대상이 교육이라면 선결 사항이 정부와 정치권인 셈이다.
100년 만에 얻은 의대 통합 6년 학제의 의미는 어려운 관료주의를 돌파하였다는 사실과 의사양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많은 불합리하고 비생산적인 사안에 대한 능동적 개선을 했다는 고무적인 사실이다. 6년제 통합 학제에서는 의과대학 교육이 학생들이 우려하는 폐쇄적인 의대 교육이 되지 않도록 학교의 목적에 맞추어 다양하게 편성돼야 한다. 아울러 의과대학 간 혹은 단과 대학이나 학부 간의 학점 교환이나 취득도 가능해야 하고 다양한 선택과목이나 자유학기제도 추진돼야 한다. 이런 것이 달성되려면 의과대학의 학생지원 역량과 교육과정에 대한 선진화된 단체적 역량이 필요하다.
모든 의과대학의 목표가 의사국가고시 합격이라는 단일 명제로 국한되지 않는 진정한 상위학부 개념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 교육과 의사국가고시는 내용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 의사국가고시는 측정 가능한 분야로 제한되고 결코 학교 교육에 대한 평가도 아니다. 의과대학의 공통된 목표도 있는가 하면 의과대학별로 추구하는 특성화된 목적도 존재한다.
지난 100년간의 경험에서 예과와 본과로 분절된 학제 속에서 고등교육의 한계와 부정적인 면은 줄곧 보아왔고 개선되지도 않았다. 이제 공식적으로 의과대학 6년 통합 학제를 맞이하며 의과대학이 스스로 교육을 뒤돌아보고 각 의과대학의 특성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펼쳐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의과대학의 6년 통합 학제라는 작은 변화를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견뎌낸 교수님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