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닥터프레소 정환보 대표는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들의 의견을 듣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 서울 10명, 경기 5명, 충청 2명 등 닥터프레소의 제품을 사용 중인 원장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통화하면서 실제 진료 흐름에서 무엇이 불편한지 들었다.
정 대표는 다른 진료과 원장들도 만나 제품의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정신과에서 검증한 것이 내과와 같은 의원에서도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려고 원장들을 만나고 있다"며 "이밖에 보험·제약 쪽과 정신건강 분야 협력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자리도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환자와의 대화가 중심이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면 의사는 그 내용을 듣고 판단하는 동시에 진료기록을 남겨야 한다. 닥터프레소는 이 과정에서 기록에 쓰는 시간을 줄여 의사가 환자에게 집중하도록 돕는 데 사업의 초점을 맞춘 회사다.
정 대표는 최근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의사가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진료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정신과를 중심으로 사용 의사들로부터 기록 시간이 줄고 진료에 활용할 시간이 늘었다는 반응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력 제품은 정신과 진료에 특화한 음성 기반 진료기록 솔루션 '쏘피(SOAPY)'다. 진료 중 대화를 전사하고 요약해 의료진이 기록에 활용하도록 돕는다. 출시 3개월 만에 가입 의사 약 100명, 누적 사용시간 약 5000시간을 기록했다. 월간 외래 진료 활용 건수는 1만 건 이상이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한 정 대표는 의료 AI 기업 뷰노 최고의학책임자(CMO)를 거쳐 2022년 닥터프레소(Doctorpresso)를 창업했다. 정신과 진료기록 지원을 기반으로 우울감 측정 알고리즘 연구와 지자체 멘탈케어 사업으로 활동을 넓히고 있다.
대화 중심 정신과에 집중…AI 판단보다 기록 업무 지원
닥터프레소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먼저 집중한 이유는 진료의 특성에 있다. 환자가 말로 표현하는 증상과 경험이 중요한 만큼, 언어모델을 활용해 진료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이 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 대표는 “진료 시간을 줄이기보다는 기록 작성에 따른 인지적 부담을 덜어 의사가 진료 자체에 집중하도록 돕고 있다”라며 "일부 의료진은 기록을 위해 반복적으로 키보드를 사용하는 부담이 줄었다는 의견도 전했다. 환자와의 아이컨택이 늘었다거나 진료 집중도가 회복됐다는 피드백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신과 진료에서는 환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뿐 아니라 표정과 태도, 대화의 맥락도 중요하다. 쏘피는 진료 대화를 구조화해 기록 작성을 돕고, 비언어적 정보의 해석과 임상적 판단은 의사가 맡는 방식이다.
정 대표는 "비언어적 요소의 해석과 임상적 판단은 의료진의 영역으로 두고, AI는 진료 내용을 구조화하는 역할을 맡는다"라며 "SOAP 형식에서도 평가에 해당하는 'A' 영역은 AI 작성 범위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쏘피는 의료진이 프로그램에 접속해 진료 내용을 정리한 뒤 결과를 복사해 전자의무기록(EMR)에 붙여 넣는 방식으로 이용한다. 기존 EMR을 대체하기보다 의료진이 사용하는 시스템에 진료 보조 기능을 더하도록 했다.
특히 정 대표는 범용 음성 전사 서비스와의 차이로 정신과에 특화한 구조화된 요약이나 언어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그는 “진료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요약 결과를 10초 이내에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피력했다.
정신과 진료 내용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할 수 있다. 닥터프레소는 쏘피를 통해 병원 진료 데이터를 축적하기보다, 의료진이 필요한 결과를 활용한 뒤 서비스 안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정 대표는 “전사·요약 결과는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의료진이 새 진료나 새 녹음을 시작하면 이전 화면의 데이터가 삭제된다”며 “특히 진료 데이터를 서버에 보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인프라를 보급하려면 사용할 고객들의 요구에 맞추는 것이 원칙”이라며 "데이터 활용 가능성보다 의료진이 기록 보관에 느끼는 부담을 줄이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고 강조했다.
일상 기록으로 우울 위험 살피고 전문기관 연계…부천시 취약계층 멘탈케어 참여
닥터프레소는 진료실 밖에서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전문가에게 연결하는 사업과 이를 뒷받침할 알고리즘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일반 이용자를 위한 ‘마음 편의점’ 등 앱 서비스를 운영하며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실증 경험을 쌓고 있다.
정 대표는 “일상 관리 서비스의 목적이 치료를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며 “일상에서 남기는 기록과 변화를 진료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적절한 시점에 전문가를 만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천시의 ‘온마음펀드 활용 취약계층 멘탈케어 서비스’다. 닥터프레소는 기술 파트너로 참여해 현장 인력의 방문 선별과 전문기관 연계를 지원한다. 부천시 3개 동에서 약 100명 규모를 목표로 이용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40여명이 참여했다.
정 대표는 “지역 담당 인력이 취약계층 가정을 방문해 태블릿으로 상태를 확인하는 방식”이라며 “위험 신호가 확인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의료기관으로 연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연말까지 사업을 진행한 뒤 결과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도 사업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음성과 텍스트, 행동 정보를 활용해 우울감을 측정하는 알고리즘도 연구하고 있다. 정 대표는 “팁스(TIPS) 과제를 통해 행동 기반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으며, 음성과 텍스트에 관한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해왔다”고 밝혔다.
실제 관련 연구로는 고려대 안암병원과 닥터프레소 등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이 2024년 국제학술지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JMIR)’에 발표한 감정일기 분석 연구가 있다. 앱 이용자 91명이 작성한 일기를 설문 점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검토를 활용해 분류하고, 이를 AI 분석 결과와 비교했다. 일상에서 작성한 글을 우울 위험을 살피는 보조 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을 탐색했다.
정 대표가 장기적으로 구상하는 것은 AI가 단독으로 진단하는 서비스가 아닌, 의사의 판단을 돕는 검사 지표다. 정 대표는 "음성이나 일상 기록에서 얻은 측정값을 진료의 참고 정보로 제공하고자 한다"라며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한 사람이 적절한 도움을 받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진료기록에서 예약·환자 관리까지…정신건강 접근성 높이고 해외 진출 추진
닥터프레소는 다른 진료과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탐색하고 있지만, 우선 정신과에 필요한 기능을 보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진료기록 지원을 초기 모듈로 삼아 평가척도와 예약 시스템, 환자 관리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EMR과 경쟁하기보다는 정신과 진료 위에 얹혀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우울감 측정 알고리즘의 인허가와 진료 활용, 청구 가능한 검사 모델로의 발전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업 방향에는 의사의 역할을 진료실 밖으로 넓히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정 대표는 의대 재학 시절부터 환자를 치료하는 일뿐 아니라 의료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창업 역시 의료진과 환자가 겪는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시도”라며 “의료진에게는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환자에게는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으로는 일본과 미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내 정신과 의료진의 요구에 맞춰 제품과 운영 경험을 쌓은 뒤, 언어와 진료기록 방식, 제도 등 현지 조건에 맞춰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정 대표는 “글로벌 기업 한 곳과 다국어 음성 처리에 관한 실증을 논의하고 있다”며 “해당 기업의 여러 국가 이용자 음성을 바탕으로 다국어 처리 가능성을 실험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는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 확보한 자금은 국내 정신과 의원에서의 사용 확대와 일본 실증사업, 우울감 측정 알고리즘의 인허가 준비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2030년까지 국내 정신과 AI 시장에서 선도 기업으로 성장한 뒤 아시아와 미국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누구나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이해하고 필요할 때 부담 없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 수 있도록 기능과 사업 모델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