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디지털의료기기와 관련한 법·제도의 변화와 AI 기술의 진보가 의료 현장부터 생활 전반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국제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KHF 2025) 'K-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제도와 기술, 현장 적용까지' 세션에서 디지털 의료기기 제도의 변화와 최신 AI 기술 적용 사례 등이 소개됐다.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 이후 주의할 사항은? 사이버보안 요건 2배 강화
디지털의료제품법이 2024년 제정되고 2025년 본격 시행됐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 배영우 주무관은 디지털의료제품법과 하위 규정을 소개하고, 업계가 주의해야 할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공유했다.
디지털의료제품법 시행 이후 주요 변화는 ▲AI 포함 의료기기의 디지털의료제품법 관리 ▲사이버보안 및 사용적합성 요건 강화(15개→35개) ▲인·허가 시 사용적합성 자료 제출 의무화 ▲AI 기반 디지털의료기기의 변경관리 계획 제출로 사전 검토 및 신속 변경 허용 ▲디지털 건강지원기기 자율신고제 및 자율성능인증제 도입 ▲완제품이 아닌 AI 모델 등 구성요소 단위의 성능평가 제도 도입(2026년 시행) 등이다.
배 주무관은 "SaMD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포함 의료기기(SiMD)도 인공지능 기술이 액세서리에 설치된 경우 디지털의료기기로, 규제 대상에 해당한다. 또한 사이버보안 관련 요구사항이 기존 15개에서 35개로 확대됐다"며 "이는 IEC 표준을 참고해 만들었다. 일부 기업은 자사 제품이 인터넷 연결이 안 되기 때문에 사이버 보안 미적용 대상이라고 주장하지만 USB도 통신이다. 의료기기 안에 있는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하는 기능 자체를 통신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단, CD와 SD 카드 등 일부는 예외로 인정한다. 배 주무관은 "내부적으로 정해둔 통신으로 보기 어려운 케이스가 있다"며 "이는 면제 대상으로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인공지능 알고리즘 흐름에 대한 근거 문헌을 제출해야 한다. 간혹 이프문과 툴 몇 가지를 돌려서 인공지능이라고 주장하는 업체가 있어 (근거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변경 관리 목적으로 알고리즘 흐름을 구체적으로 기재해달라고 지속적으로 보완이 나가고 있는 만큼 자료 제출을 당부했다. 사용적합성 자료도 인·허가 심사 단계에서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는 사용자 안전 강화를 위한 조치다.
배 주무관은 "그간 그레이존에 위치했던 디지털의료, 건강지원의료기기를 정의하고 안전관리할 수 있는 규제 프레임을 정립했다. 건강지원기기도 업체에서 원하는 경우 식약처에 신고할 수 있다"며 "자율성능인증제도 향후 도입될 예정이며, 구체적 방안은 연구용역을 통해 확정할 것"고 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기술문서 심사 체계도 전면 개편된다. 배 주무관은 "디지털의료제품은 2등급이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 인증, 3·4등급이면 식약처 허가로 일원화됐다"며 "업체가 품목 코드와 등급을 잘못 판단할 경우 절차 전체가 롤백돼 처음부터 다시 심사를 받아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 현장을 바꾸는 인공지능…뇌졸중, 응급의료 골든타임 확보
의료 인공지능은 뇌졸중 진단·치료 워크플로우 개선부터 응급실 이송 지연 해소까지, 현장에서 직접 환자의 생명과 맞닿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이엘케이와 온택트헬스는 실제 병원과 구급 현장에서 활용되는 구체적 사례를 공유했다.
제이엘케이(JLK) 김동민 대표는 뇌졸중 AI 솔루션 'MEDIHUB STROKE'를 사례로 들며 "의료 AI가 현장에서 쓰이려면 단일 기능이 아니라 전주기 워크플로우 전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JLK는 CT, MRI, CTA 등 모든 영상 모달리티를 아우르는 솔루션을 패키지화해, 병원별로 다른 진단·치료 경로를 모두 커버하도록 설계했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병원에서 많이 사용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활용 빈도수가 줄었다. 전주기적인 의료 인공지능을 제품화하지 않은 탓"이라며 "이후 표준 프로토콜 전체를 아우르는 솔루션을 개발했고, 병원의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분당서울대병원과 인천의료원에서 도입한 모바일 알림·이송 의사결정 플랫폼을 소개하며, "환자 상태를 실시간 공유하고 치료 결정을 지원해 치료 시간을 약 1시간 단축했다"고 밝혔다. 이 플랫폼은 ▲워크플로우 모니터링 ▲실시간 채팅 ▲AI 분석 기능을 포함해 의료진 간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김 대표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상시험과 경제성 분석을 통해 수가 편입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향후에는 LLM(대규모 언어모델)과 결합해 드문 케이스까지 다룰 수 있는 신뢰성 높은 AI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택트헬스 장혁재 대표는 AI 기반 EMS 시스템을 통해 환자 이송·진료 과정 전반을 실시간 데이터로 연결하는 응급의료서비스 사례를 발표했다.
장 대표는 "응급환자가 119에 신고해도 실제 치료 가능한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병상 부족과 정보 단절로 발생하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온택트헬스가 개발한 EMS 시스템은 구급차 내 카메라·마이크·EMS 키오스크를 통해 환자의 생체신호와 음성·영상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고, 이를 클라우드 AI가 실시간 분석해 환자 중증도를 판정한다. 분석 결과는 구급활동일지에 자동 기록되며, 구급처치 가이드가 제시된다. 이후 연계된 의료센터를 통해 최적의 이송 병원까지 추천한다. 응급실 의료진은 환자 데이터를 사전에 확인해 환자 도착 후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응급 현장은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한 뒤 기억에 의존해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며 "AI와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 구급대원은 기록 부담에서 벗어나 환자 처치에 집중할 수 있고, 환자는 더 빠르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에는 국가 단위에서 환자-구급대-병원-정부·지자체를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응급실 뺑뺑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 특화 LLM, 임상 현장 지원…통신 데이터의 활용 사례
이어진 발표에서 업스테이지와 LG유플러스는 각각 의료 특화 LLM과 데이터 기반 심리케어 솔루션을 소개했다.
업스테이지 한지윤 리더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관하는 '초거대 AI 기반 보건의료 서비스 지원' 사업 참여 경험을 소개하며, 의료 분야에서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적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해당 사업은 ▲대화형 소아 건강상담 ▲맞춤형 소아 질병예측 ▲맞춤형 증례 추천 ▲맞춤형 처방 보조 등 네 가지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업스테이지는 맞춤형 증례 추천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데이터 수집을 통해 기반을 다졌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AI 모델과 서비스 개발에 돌입했다.
한 리더는 "의료진이 작성하는 진료기록과 연계해 유사 증례를 조사하고, 요약자료를 제공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소아·청소년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진료 업무를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LLM은 의료 현장에서 정보 검색, 문서 작성 자동화, 의료 지식 요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환자와의 소통을 표준화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을 설명했다.
다만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환자 안전성, 의학적 정확성 보장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범용 모델을 의료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특화 학습이 필요하며, 전문가 검증과 가이드라인 정착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 김정선 위원은 디지털 헬스케어 확산 과정에서 데이터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자사의 심리케어 실증 과제를 소개했다.
LG유플러스는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의 일상 패턴과 행동을 분석해 ▲심리 상태 탐지 ▲맞춤형 상담 제공 ▲AI 챗봇 기반 지원 서비스를 실증하고 있다. 그는 "상담사가 AI 분석 결과를 참고하면 환자의 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상담사 보조형 구조임을 강조했다.
이어 "AX 시대에는 기술이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오기 때문에 정신건강 관리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통신 데이터와 의료 데이터를 융합해 생활 전반에서 심리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통신사·IT기업·의료기관이 협력해 심리케어 서비스를 생활 속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며, 데이터 융합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 가능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