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대 정원 정책을 둘러싼 갈등, 해법은?
일본 관서외국어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장부승 교수는 의사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지난해부터 우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우려를 표해왔다. 그리고 정부가 올해 초 2000명이라는 전 세계 유례없는 과격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내 놓으며 의료계를 악마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정부가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 교수는 해외 국가의 의대 정원 정책 결정 과정을 비교하며 앞으로 의대 정원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① 의사 늘려도 파업 안 한 일본·영국은 정부가 의료계를 의사결정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② 의대 증원 '2000명'에 꽂힌 정부…일본·영국은 추계 과정 밝히고, 점진적이고 유연하게 추진
일본 관서외국어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장부승 교수는 의사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지난해부터 우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우려를 표해왔다. 그리고 정부가 올해 초 2000명이라는 전 세계 유례없는 과격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내 놓으며 의료계를 악마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정부가 한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 교수는 해외 국가의 의대 정원 정책 결정 과정을 비교하며 앞으로 의대 정원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① 의사 늘려도 파업 안 한 일본·영국은 정부가 의료계를 의사결정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② 의대 증원 '2000명'에 꽂힌 정부…일본·영국은 추계 과정 밝히고, 점진적이고 유연하게 추진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2000명'. 정부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숫자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간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가 과학적이고 객관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며 의료계에게 과학적 근거를 가져오라고 고집해 왔다.
일본 관서외국어대학 장부승 교수는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국가들의 의대정원 증원을 비교하며 우리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대학정원 증원 '2000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숫자인지 꼬집었다.
의대 증원 결정, 과정과 근거 섬세하게 밝히는 영국과 일본
Q. 정부가 2000명 증원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했다고 하지만 그 전문가들 본인조차 2000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왜 2000명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일까?
A. 그거야 대충 짐작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 입에서 그 숫자가 나왔으니 공무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으로 무서워서 감히 2000명이 특별한 근거가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사실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의대 정원을 증원할 경우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제시하고, 왜 그 정도의 숫자를 증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다.
영국은 영국의대협의회가 1만5000명이라는 숫자를 직접 내놨다. 매년 신규 등록 의사 숫자를 가이드라인 삼아 일종의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숫자를 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반대다. 바텀업(bottom-up) 방식, 즉 밑에서부터 쌓아 올려가는 방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가 의사 수급 추계 관련 보고서를 내는데 거기에 보면 의사 수급 추계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그 과정과 근거를 섬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면허시험 응시율, 합격률, 합격자 중 등록율 등을 계산해서 매년 의사 공급량을 계산을 한다. 이 때 해외에서 면허를 취득하고 일본으로 들어오는 의사들도 계산에 넣는다.
이렇게 의사 공급량을 계산할 때 단지 의사 머릿수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연령별, 남녀별, 의사 연차별로 노동 공급량이나 숙련도가 다른 것까지 다 계산에 감안을 한다. 그리고 의사의 노동 시간도 계산해 의사 공급량을 추계해 낸다.
수요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밑에서부터 블록 쌓듯이 계산해낸다. 우선 의사 수요를 임상과 비임상으로 분리한다. 임상의 경우에는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입원 수요, 외래 수요를 계산한다. 각 병상별로 어느 정도 의사가 필요한지, 외래 환자 숫자는 얼마이고, 외래 환자 규모 대비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한다.
비임상 수요의 경우에는 요양시설, 의료 교육기관, 회사에 소속된 산업의, 행정기관이나 보건위생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 숫자 역시 현장 조사 등을 통해서 수요를 추계해 낸다.
그리고 이렇게 계산해 낸 의사 공급량과 수요량의 추이를 그래프로 옮겨 연도별로 표시해두면 대략 언제쯤 의사 수급 균형이 이뤄질지 예측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추계 방식과 계산 과정이 보고서에 다 자세히 나온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가 수십 페이지나 된다. 이렇게 보고서를 한 번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 그렇게 만든 보고서를 1년에 몇 번씩 회의를 해가면서 꾸준히 업데이트를 해간다.
사실 우리 정부가 2000명이라는 숫자를 그토록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면 최소한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수급분과회'가 내놓는 보고서 정도 수준으로 아주 꼼꼼하고 탄탄한 추계 근거를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무슨 점쟁이한테 들은 얘기라는 둥 별의별 루머가 만연하게 되는 것 아니겠나?
기존 65% 달하는 증원 밀어붙이는 정부…해외는 유연하고 점진적으로 증원
Q. 의대 정원 증원의 속도도 문제인 것 같다.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일거에 현 정원의 65%에 달하는 2000명을 급속히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의대 정원을 대거 늘리는 나라가 있나?
A. 일본은 2008년부터 10년 동안 점진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 10년동안 총 23%를 증원했다. 첫 해에는 2.2% 늘렸고, 그 이듬해에는 8.9% 늘렸다. 이 2008년도에 8.9% 늘린 것이 지난 40여년간을 통틀어 일본의 의대 정원이 한 해에 가장 많이 늘어난 비율이다. 그 다음 해부터는 다시 증가폭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일본은 약 10년에 걸쳐 의대 정원 약 1800명 정도를 늘렸다. 그렇게 해서 7600명대였던 의대 정원이 9400명대로 늘었다. 하지만 이렇게 의대 정원을 늘리는 과정이 매우 점진적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의사수급분과회'에서 2018년에 다시 의사 수급 추계를 내놨는데, 의대 정원의 추가적 증원이 없어도 대략 2028년 내지 2033년쯤 가면 의사 숫자의 공급 초과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서 그해 일본 내각은 의대 정원을 동결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일본 의대 정원은 그 이후 소폭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해도 매우 점진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또 계속해서 변화하는 수요를 면밀히 검토해 나가면서 공급 초과 현상이 예상되자 신속히 의대 정원 증원을 중단하고 동결에 들어갔다. 상황 변화에 대해서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영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국 의대협의회가 내놓은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보면 매우 점진적으로 추진하도록 돼 있다. 약 10년간에 걸쳐 정원을 5000명 증원시키는데, 매년 500명씩 늘리자는 주장이다.
의대협의회는 이 증가량의 절반인 250명 정도는 13개 의대를 신설해서 대응하도록 하고, 나머지 250명을 기존 의대 40개가 나눠서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매년 250명 증원을 기존 40개 의대가 나눠 맡는다고 했을 때, 각 대학의 증원 규모는 대략 1년에 6명 정도이다. 신설 의대는 13개 신설 의대가 매년 250명 증원을 나눠서 부담한다고 했을 때, 연평균으로 보면 1개 신설 의대당 약 20명쯤 부담하게 된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에 영국 국민건강공단에서 2023년에 인력 확충 계획을 내놨는데, 그 계획에 따른 초년도인 올해 영국의 의대 정원 증가량은 205명, 기존 정원의 2.2%에 불과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2008년도에 일본이 의대 정원 증원에 시동을 걸었을 때도 초년도 의대 정원 증가량은 역시 2.2%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붕어빵 찍어내듯 의사 배출?…"2000명 증원, 교육의 질 유지 어려울 게 뻔해"
Q. 의대 증원을 이처럼 대폭 늘리는 것에 대해 얼마나 현실성이 있다고 보는지?
A. 일본이나 영국의 사례를 보면, 어느 경우에도 우리나라처럼 일거에 2000명, 기존 의대 정원의 65%를 늘리자는 식의 주장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우리나라 경우에 지금 의대 정원이 배정된 것을 보면 지방대 중심으로 배정했기 때문에 일부 의대의 경우 현재 정원보다 일거에 4배로 늘어난다.
이런 식의 급격한 의대 정원 증원은 일본이나 영국의 의대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전세계 의대 어디에서도 아마 이런 식의 정원 증원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나 영국이 의대 정원을 이렇게 점진적으로 늘린 것은 의대 정원 증원이 실제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교수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장비와 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또 임상 사례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속병원도 새로 짓거나 확충해야 한다.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이고, 또 돈이 있다고 다 금방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예를 들어 능력있는 의료 교육자는 어느날 갑자기 대량생산할 수 없다.
Q.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해도 실제로 늘어난 정원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A.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의대 정원을 이렇게 갑자기 대량으로 늘리는 것은 대학교수인 나로서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을 기존 정원의 65% 가량 늘리는 것 자체도 무리인데, 그나마 늘어난 정원을 지방 대학들에 몰아줬기 때문에 특정 의대에서는 정원이 무려 400%가 늘어난 곳도 있다.
아니, 대학이 무슨 붕어빵을 찍어내는 곳은 아니지 않나. 이번 학기에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략 70명 정도다. 만약에 이 숫자를 일거에 280명으로 늘린다면 솔직히 교육의 질을 그대로 유지할 자신이 없다. 교육의 질 유지는커녕 학생들을 도대체 어디에 앉힐 것인가?
수업이라고 하는 것이 강의하고 기말고사 한 번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숙제를 주고 발표도 시키고 토론도 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런 활동에 대해 일일이 평가를 해야 한다. 이런 식의 교육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원을 4배로 늘린다고 하면 기존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심지어 인문사회과학도 그런데 실습 위주로 교육을 해야 하는 의학 분야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