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스스로 우리나라 병원은 감염 관리에 안전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감염관리를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득하기 좋은 기회로 보였다. 감염 관리를 위해 다인실 입원병실 시스템을 개선하고 수많은 환자들이 뒤엉켜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는 등의 응급실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길 바랬다. 그 때라면 충분히 국민 동의를 얻을 수 있고 의료계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대한의사협회에 수차례 연락했다. “메르스가 한창인데 의협은 입장을 안 내는 건가요?”, “의료계 전문가 단체로서 메르스 대응책이나 개선방안을 말씀해주시죠?” 등을 물었다. 의협으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당장 입장을 내놓기 어렵고 회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의협회장은 오히려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가 고의로 시내를 돌아다녀 메르스를 전파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는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섣부른 사과였다. 의협회장은 다시 해당 의사에게 사과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의협이 내놓은 대안은 메르스 극복 스티커를 배부한다거나, 감염 관리에 힘쓴 국립중앙의료원에 500만원 전달이라는 소소한 행보에 그쳤다.
메르스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의협 결의문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형식적인 데 그쳤다. 결의문은 방역 실패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의료계 지원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들라고 했다. 의료계 기자의 입장에서 당시 의협의 행보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메르스 환자를 살리고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피해를 입은 의료진을 나 몰라라하는 듯했다. 의협은 국민 관심을 등에 업고 의료 문제를 해결할 좋은 기회를 스스로 발로 걷어찬 듯했다.
메르스 국정감사가 펼쳐지는 그 해 9월 의협의 행보는 더 가관이었다. 의협은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치매예방과 절주 홍보를 위한 시민건강열차 업무협약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는 지하철의 일부를 절주, 손 씻기 등을 건강관리 홍보를 위해 꾸민다는 것이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 국정감사에 나타나지 않는 등 심각한 사안에 비해 의협의 소식은 터무니 없었다.
의협이 이렇다 보니, 국민 관심 속에 의료계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했다. 뒤늦게 학회 전문가가 나섰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해진 뒤였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손실을 입은 병원에 대한 국민 여론은 ‘그동안 병원들은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가 전부였다. 의료계는 감염관리 지원책보다 규제만 겹겹이 늘어났다.
기자 입장에서 보면 의협은 의료계의 대표성을 갖는다. 특히 주요 일간지와 방송은 의협의 산하단체나 임의단체를 알지 못한다. 오로지 의협의 행보만 쳐다본다. 사회적으로 의료와 관련한 커다란 이슈가 있을 때 의협이 내놓는 정책은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의협은 국민 눈에도 의료계의 대표성을 갖는다. 의협은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의료 문제를 논의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지난해 8월부터 다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라는 의료 문제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달 23일 '오직 문재인 케어를 저지하기 위해 강한 투쟁을 하겠다'는 공약으로 최대집 의협회장 당선자가 나왔다. 최대집 당선자는 문재인 케어 저지를 위해 의료계 내부 통합을 이끌어내고 국민까지 설득하겠다고 했다.
의료계는 새로운 회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강한 투쟁을 외치던 최 당선자가 된 데는 문재인 케어로 벼랑 끝에 몰린 의사들의 심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혹여나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 회장이 당선됐다고 해서 의협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의료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료계가 원하지 않은 정책이 그대로 시행되거나, 규제만 강화될 수 있다. 의료계가 문재인 케어를 정말 문제라고 본다면 의료비 부담 증가 등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사들이 새로운 의협 집행부를 격려하고 또 감시하면서 힘을 합쳐야 한다.
새로운 의협회장은 메르스 때처럼 싸늘한 국민 여론으로 각종 규제를 낳게 될지, 아니면 '문재인 케어'를 등에 업고 의료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만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