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현재 우리나라 병의원의 98%가 진료할 때 전자차트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사용되는 전자차트의 지배권이 온통 정부에 있다 보니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은상용 정보통신이사는 26~27일 전북 군산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의정포럼(의협을 걱정하는 대의원 모임)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은 이사는 “한국에서는 전자차트를 청구프로그램이라고 칭하고 있다. 청구프로그램은 전자차트 기능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기능이자 한달에 1회 청구시에만 사용되는 매우 협소한 표현이다”라며 “정부의 편의에 따라 90%이상의 기능을 하는 ‘전자차트’라는 용어를 청구프로그램이라는 용어에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의사들은 각종 의료빅데이터를 정부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시점부터 모든 용어는 전자차트라는 용어로 통일시켜야 한다. 의협부터 청구프로그램이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하고 전자차트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차트, 의사 개인 부담으로 잡일과 삭감만
그는 전자차트를 의사 개인의 비용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은 잡일과 삭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은 이사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전자차트를 만들고 보급하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정부 예산과 노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미국은 2009년 전자차트 활성화에 약30조원을 투자했으며 전자차트를 사용하면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정부가 지원하고 투자하고 있다.
은 이사는 “한국 정부는 전자차트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다. 민간업체인 전자차트 회사들이 개발하고 그 비용은 의료인들이 완전하게 부담하고 있다”라며 “전자차트는 의사들의 진료편의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투자도 없이 전산을 이용한 정부의 편의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탑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Drug Utilization Review)이나 병의원용 공인인증서를 예로 들었다. 은 이사는 “정부는 인증이라는 무기로 전자차트 회사들을 지배하고 조종하고 있다. 의사들은 별다른 반향 없이 이런 제도에 순응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은 이사는 “DUR 강제화는 전자차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진료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주업무인 수진자관리와 심평원 전산삭감은 전자차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라며 “정부의 편리성을 향상시켜 주면서 모든 비용은 사용자인 의료인들이 부담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잡일과 무자비한 삭감 뿐”이라고 했다. 이어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의료인들 스스로 자비를 들여서 자기 목을 조이고 있는 형국”이라고 강조했다.
은 이사는 “실상을 보면 청구코드가 세분화돼서 의사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수가코드 30만개, 약가코드 6만5000개, 진단코드 5만개, 치료재료코드 2만6000개 등이다. 의사들은 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전자차트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R3131000 코드는 유도분만-초산-제1태아를 말한다. 앞의 5자리는 정부에서 결정된 고정코드를 예로 들었다. 뒤의 3자리는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 자리로 3자리 변화에 따라 수가가 2배 이상 뛰기도 한다는 것이다.
은 이사는 “복잡다단한 과정 중에서 전자차트가 지원 불가능한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응급의 경우 의사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법적 제도적으로 수가는 올랐으나 의사의 청구미숙으로 정상적인 수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은 이사는 “청구미숙에 의한 미지급 진료비는 공단의 수익으로 귀속될 수밖에 없다. 심평원은 삭감만을 위한 전사심사를 하고 있다. 공정한 심사를 추구한다는 심평원이라면 법이 정한 수가를 찾아줘야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차트, 의사들이 단결해서 정부 지배권 빼앗아야
은 이사는 “이런 불합리성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은 오직 단결이다. 의사회원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대응해나가야 한다. 의사회원들에게 이런 현실을 알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주인이면서도 차트의 지배권을 심평원에서 행사하다 보니 의사들 반대하는 기능들이 전자차트에 탑재돼있다. 전자차트에 성분명 처방 기능이 탑재돼있고 나아가 처방전 리필제까지 탑재됐다”라고 했다.
은 이사는 “의사들이 전자차트의 주인이면서도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폐단이다. 이런 점은 꼭 시정, 보완돼야 한다”라며 “의협이 의사들을 위한 전자차트를 개발 보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들의 단결이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
은 이사는 “의협을 통해 전자차트 시장점유율이 30% 이상만 되면 의협은 비로소 정부와 전산다툼에서 대등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의협은 의료빅데이터를 관할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대정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경향심사와 관련한 데서도 전산에 대한 중요성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은 이사는 “경향심사는 모든 동일 의료기관의 상위 5%를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보상도 없이 모든 의무기록을 심평원에 넘겨줘서 의료빅데이터 생산자인 의사들의 권한을 이양할 수 있다. 사전심사인 현재의 건별심사가 존재하는 가운데 사후심사인 경향심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은 이사는 “경향심사에서 5% 개념을 포괄개념이 아닌 세분 단위개념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경향심사를 통한 삭감은 5%가 아닌 세분단위를 적용해 25% 삭감까지도 가능하다. 앞으로는 훨씬 더 큰 삭감 비율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은 이사는 “만약 개원 이비인후과는 300억원 이상 못준다고 말할 수 있고 초기에 전체의 5%를 삭감할 수 있다. 그 다음 심사에서는 변형된 총액계약제 형식으로 얼마든지 운영 가능하다. 경향심사는 함부로 접근할 수도 있고 함부로 인정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은 이사는 “정부에서 (본인이)DUR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고생했다며 370만원을 줬다. 정부에서는 의료전산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의료전산에 대한 중요성을 지불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라며 “하지만 전자차트 사용비용, 인터넷 사용 비용 등은 모두 의사들의 사유재산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은 이사는 “의사들은 시키면 그저 따라가고 있다. 잠시 몇 달동안이나마 의사들이 사용하는 전자차트를 종이청구로 바꾸면 지금 들어오는 심평원 업무는 절대 불가능하다. 의사들이 전자차트와 의료빅데이터의 전산작업에 대한 적절한 비용 요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