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최근 임상유전체의학 발전으로 다양한 유전자·유전체 검사 기법이 도입되면서 희귀질환 진단 정확도와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검사 기술의 발전이 곧 모든 환자에게 유전자검사가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검사 시행 여부부터 시점과 대상, 결과 해석까지 환자와 가족의 이익을 고려하는 전문적 유전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22일 서울대병원 의학혁신센터에서 '2026 SNUH Rare Disease Workshop(희귀질환 유전진단 및 상담 2026: Updates & Insights)'을 열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이승복·문장섭·김시현 교수는 각각 소아, 성인, 유전성 암 영역에서의 희귀질환 유전상담 원칙과 사례를 공유했다.
세 연자는 유전자검사를 많이 시행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검사를 적절한 시점에 시행하고, 검사 전후 충분한 설명과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사 결과는 환자 치료와 가족 관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검사를 시행하지 않거나 연기하는 결정 역시 유전상담의 중요한 역할로 제시됐다.
특히 소아와 성인 유전질환에서는 검사를 시행하지 않거나 미루는 결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으며, 유전성 암에서는 환자의 병력과 가족력을 토대로 검사 대상을 선별하고, 검사 결과를 치료 전략 수립과 가족의 조기진단·예방적 관리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아 유전상담, 아동의 '알지 않을 권리'와 '최선의 이익' 고려해야
이승복 교수는 소아 희귀질환 유전상담은 유전질환에 대한 의학적 정보 전달뿐 아니라 보호자와 가족이 질환 가능성과 검사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고, 향후 관리 방향을 결정하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아 유전상담에서는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수 있는지보다 지금 검사가 아이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아가 법적 동의 능력이 없더라도 보호자 결정만으로 검사가 이뤄져서는 안 되며, 아동의 최선의 이익과 미래 자율성 보호를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유전상담의 원칙은 소아나 성인이나 동일하다"면서도 "소아는 혼자 외래에 오지 않기 때문에 소아와 보호자를 함께 대상으로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아 유전자검사에서 진단검사와 예측검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증상이 있는 소아에게 명확한 진단을 제공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검사는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기 발병 질환처럼 현재 치료적 이득이 없는 질환의 예측검사는 아동의 알지 않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검사 참여에 대한 긍정적 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독립적 의사결정 능력이 일정 부분 형성돼 있는 만큼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신경섬유종증 1형(NF1)이 의심된 3개월 여아 사례를 소개하며, 유전자검사가 아닌 경과관찰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해당 환아는 전신에 다발성 카페오레 반점이 관찰돼 임상적으로 NF1이 의심됐고,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면 상당한 확률로 진단이 가능했다. 하지만 생후 3개월 영아는 채혈 부담이 있고, 진단이 이뤄져도 당장 치료적 개입을 할 수 없어 경과관찰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운동 발달 지연이 있는 11개월 남아 사례에서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검사를 우선 고려했다. 환자 증상이 운동 영역에 치우쳐 있었고, SMA는 진단 시 치료적 접근이 가능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교수는 검사 결과 해석에서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의미가 불확실한 변이(VUS)를 단정적으로 설명할 경우 환자와 가족에게 불필요한 심리적 고통을 줄 수 있다며, 결과 해석에 확신이 없을 때는 추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희귀질환 연쇄검진은 세대 순서에 맞게…본인 결정권이 핵심
문장섭 교수는 성인 희귀질환 유전상담에서는 검사 순서와 본인 결정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 중 한 명이 유전질환으로 확진되면 추가 환자나 보인자를 찾기 위한 연쇄검진을 고려할 수 있지만, 질환의 특성과 치료·관리 가능성, 검사 대상자의 연령과 의사결정 능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쇄검진은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긴 진단 여정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조기 진단을 통해 치료나 위험도 관리가 가능한 경우 도움을 주기 위한 전략이다. 문 교수는 상염색체 우성 질환처럼 가족 내 환자가 많을 수 있는 질환, 유전자검사나 다른 선별검사 방법이 있는 질환, 치료법이나 위험도 관리 방법이 있는 질환에서 연쇄검진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CADASIL이 있다. CADASIL은 NOTCH3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유전성 뇌혈관질환으로, 근본적인 질병조절 치료제는 없지만 혈압 조절, 금연, 고지혈증 관리, 항혈전제 사용 등 뇌혈관 위험요인 관리가 필요하다.
문 교수는 CADASIL 환자의 무증상 자녀에게서 동일한 변이가 확인된 뒤 MRI 검사와 혈관 위험인자 관리를 시행한 사례를 소개하며, 치료제가 없더라도 조기 관리가 가능한 질환에서는 연쇄검진이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치료법이 없고, 조기 관리가 어려운 성인기 발병 질환에서는 미성년자 검사를 신중히 해야 한다고 했다. 문 교수는 헌팅턴병 사례를 통해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과 알지 않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문 교수는 "헌팅턴병은 HTT 유전자의 CAG 반복서열 증가로 발생하며 대개 성인기에 발병한다"며 "현재 근본적 치료법은 없고, 무증상 상태에서 진단될 경우 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적 부담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쇄검진은 세대를 건너뛰지 않고 환자 본인, 자녀, 손주 순으로 진행해야 하며, 치료법이 없는 성인기 발병 질환은 성인이 된 뒤 본인이 충분히 숙고하고 검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41세 남성 환자는 아버지와 고모가 헌팅턴병으로 진단된 가족력이 있어 본인 검사를 위해 내원했다"며 "그보다 앞서 환자의 배우자가 시아버지의 헌팅턴병 진단 사실을 뒤늦게 알고 14개월 된 딸에게 다른 병원에서 유전자검사를 시행했고, 양성 결과가 나온 상태였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치료법이 없는 성인기 발병 질환임에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미성년자에게 검사가 시행된 사례"라며 "자녀가 양성 결과를 받을 경우 부모 중 한 명도 변이를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아,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부모의 유전정보가 사실상 드러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성년자 본인의 선택권뿐 아니라 부모의 유전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성인 무증상자의 경우에도 검사 전 상담이 필수적이라고 당부했다. 문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검사를 받으러 오지만, 양성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결과 확인 시에는 가까운 가족이나 보호자와 함께 오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인에서는 무증상기 검사가 결혼, 출산, 직업 선택 등 삶의 계획과 연결될 수 있다며, 성인 환자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이 원한다면 사회경제적 의미를 고려해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가족력이 있는 경우 유증상자에서 원인 유전자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언급했다. 원인 변이를 모른 채 무증상자에게 광범위한 검사를 시행하면 음성이 나와도 가족 내 질환을 물려받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성 암 상담, 환자 치료 넘어 가족 조기진단까지
김시현 교수는 유전성 암 상담이 환자 개인의 진단과 치료를 넘어 가족 구성원의 조기진단과 예방 전략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모든 암 환자에게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병력과 가족력을 바탕으로 유전성 암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선별하고, 검사 결과를 치료 전략과 가족의 예방적 관리로 연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암은 유전성 변이가 없어도 발생할 수 있고, 유전성 암 관련 변이를 가지고 있어도 반드시 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환자의 암 병력, 발병 나이, 암종, 가족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유전성 암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성 암으로 의심되는 경우로는 젊은 나이에 암이 발생한 경우, 한 환자에게 여러 종류의 암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 양측 장기에 암이 발생한 경우, 같은 종류의 암이 여러 가족 구성원에게 발생한 경우, 남성 유방암처럼 드문 암이 발생한 경우 등이 있다.
김 교수는 유전성 암이 의심되는 경우 검사 전후 상담을 통해 검사 필요성, 가능한 결과, 결과의 의미, 가족검사와 선별검사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전성 암에서 유전상담이 중요한 이유는 변이 확인이 환자 치료와 가족의 조기진단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BRCA1/2 등 일부 유전성 암 관련 변이는 표적치료제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변이를 가진 가족 구성원은 정기적인 암 선별검사를 통해 조기진단과 예방적 관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김 교수는 난소암 환자에서 BRCA1 변이가 확인된 뒤 가족검사를 통해 막내 여동생의 조기 유방암을 발견한 사례를 소개했다. 한 57세 여성 난소암 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시행한 유전자검사에서 BRCA1 병적 변이가 확인됐다. 이후 자매들을 대상으로 가족검사를 시행한 결과 일부 자매에게서 동일한 변이가 확인됐다.
이 중 48세 막내 여동생은 이전까지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의 BRCA1 변이 확인 후 유방 MRI를 시행했고, 1cm 미만의 작은 유방암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이 환자가 조기에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가족검사를 통해 변이 보인자를 찾아 암 선별검사로 연결하는 것이 유전성 암 상담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폐암 4기로 진단된 45세 여성에서 BRCA2 변이가 확인됐고, 가족검사를 통해 변이를 가진 언니들이 확인됐다. 이후 선별검사에서 두 명의 가족에게 폐암 1기 병변이 발견돼 수술적 치료로 이어졌다.
최근 암 진료에서는 종양 유전자검사가 표적치료제 선택을 위해 활용되고 있어, 치료 목적의 암 패널검사에서 유전성 암 단서가 발견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김 교수는 종양 검사에서 나온 변이가 생식세포 변이 가능성을 시사할 경우 이를 확인하고, 환자와 가족에게 적절한 유전상담과 검사를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유전성 암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병력과 가족력을 잘 확인하고 적절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변이가 확인되면 환자 치료뿐 아니라 가족 보인자를 찾아 적절한 선별검사를 시행함으로써 조기진단과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