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원격진료를 무리하게 시행하려 한다며 원격진료 추진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보건복지부가 원격진료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원격진료는 국내 실정에 맞지 않으며 많은 문제들이 파생될 위험이 높다”고 밝혔다.
앞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1일 2019년 업무계획 발표 질의응답에서 원격의료라는 용어를 스마트 진료로 바꾸고 주어진 법의 범위 내에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병의협은 “외국의 경우 의료접근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지역에 한해서 의사들이 필요성을 먼저 인식하고 정부 등에 요구해 이뤄진다”라며 “전세계에서 가장 의료접근성이 좋은 우리나라에서 원격진료를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병의협은 “원격진료는 환자를 직접 보면서하는 시진, 청진, 촉진, 타진과 같은 기본적인 진찰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진단이 잘못되거나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라며 “특히 원격진료의 대상자가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가지고 있는 노인들이라면 이는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재정 절감을 주 목적으로 원격진료를 추진한다며 급격한 의료 질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병의협은 “정부가 원격진료를 강행하려고 하는 이유는 의료기기업계에 당근을 줘 규제를 철폐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대면진료보다 낮은 원격진료 수가 책정을 통해 건보재정 지출을 줄이겠다는 목적도 있다”라며 “실제로 우리나라 정부가 생각하는 원격진료는 스마트폰을 통한 의료데이터 전송, 의사-환자간 음성, 화상 통화 정도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병의협은 “현재 거의 전국민에게 보급돼 있는 스마트폰을 진료에 이용하고, 정부는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 부분에서 규제가 풀린다고 해 산업계에 얼마나 부가가치가 더 창출될지는 의문이다”라며 “오히려 산업의 발전이나 부가가치의 창출 없이 스마트폰을 통한 값싼 저질의료만 양산될 우려가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미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은 저수가 체계로 인해서 박리다매식 진료를 하지 않으면 유지가 되지 않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다”라며 “이를 더욱 부추기는 원격진료의 도입은 의료의 질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려 국민 건강에 심대한 위해를 끼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병의협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주치의제 시행, 원격진료 도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사업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의협은 “지난해 12월 17일 대통령 주재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획재정부가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도입을 언급하고, 만성질환관리제를 통해서 이를 추진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이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라며 “실제로 만관제 시범사업과 관련해 주치의제·원격진료 우려가 커지자 복지부의 모 보건의료정책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만관제는 원격의료와 주치의제와 별개의 것이고 원격의료, 주치의제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병의협은 “그러나 지난 2월 13일 박능후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만관제가 주치의제 시행을 위한 도구임이 드러난 데 이어서 이번에는 원격진료 추진 발언까지 나옴으로써 복지부가 그동안 거짓말로 국민들과 의료계를 기망해 왔음이 드러났다”라고 주장했다.
병의협은 “물론 복지부는 이번에도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만 허용할 것이며 1차 의료기관 위주로만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일단 의사-환자간 대면진료 원칙을 허무는 이러한 법 개정은 점차 범위를 확대시키는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협과 시도의사회가 의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대정부 투쟁을 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복지부의 이번 원격진료 발언을 계기로라도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