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의정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30년 선배인 의대 학장과 총장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의대생들은 좀처럼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복귀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절반가량이 여전히 복귀하지 않고 있으며, 전체 의대생을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이 복귀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현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이다. 나는 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문의로서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수많은 의대생과 전공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을 지배하는 정서, 그들이 고립돼 있다는 '피포위 의식'이다.
'피포위 의식'은 적군에 포위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집단 정서를 설명하는 용어다. 외부로부터 공격받는다는 공통의 정서로 강한 내부 결속을 이끌어내고, 내부의 흑백논리를 강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논란이 됐던 '전공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낸 것도 바로 '피포위 의식'이다.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부정하고,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흑백논리가 집단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논리가 여론을 지배하는 집단을 긍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피포위 의식'이 생긴 이유는 오롯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외부에서 그들을 궁지에 몰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궁지에 몰았던 그룹은 많다. '책임을 통감한다'던 선배 의사들, 의사를 적으로 선언한 정부, 의사들을 악마화하는 데 긍정한 일부 국민들.
그런데 여기서 언론은 책임이 없을까? 언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굳이 따지면 언론도 가장 책임이 큰 그룹 중 하나다. 사례를 3가지 정리해봤다.
첫 번째 사례: "사직전공의 전원이 내년에 군대 가야한다는 정부의 협박"
지난 2월 22일, 사직한 전공의 100여 명이 용산 국방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항의 내용의 핵심은 한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언제는 군대를 보내겠다고 협박하던 정부가 이제는 못 가게 하겠다며 협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정부 발언은 작년초 이미 입영대기를 암시하고 있었다. 작년 3월 이기식 병무청장의 '입대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어 훈령이나 지침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전공의들의 기억은 정반대였다. 정부가 협박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그들의 기억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작년 7월 한 통신사의 기사다. "사직 전공의들이 내년에 군대를 가지 않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단 하나도 없다"는 등의 '협박 발언'이 통신지 기사로 보도됐다.
'사직전공의 전원이 내년 군대가야한다'는 발언은 이미 발표된 정부 측 공식 입장과 상이할 뿐더러 사실관계도 완전히 잘못된 허위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허위 발언이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출처로 마치 정부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보도됐다.
전공의들을 크게 상처 입힌 '협박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익명의 병무청 관계자의 발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 허위사실임에도 그저 '병무청 관계자'의 발언이라며 팩트체크도 없이 기사에 옮겨버린 기자의 보도 행태는 무책임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 사례: "의사들을 '카르텔'로 지칭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윤 대통령이 한 집단을 공격할 때 애용하던 용어가 바로 '카르텔'이다. 일부 국민을 비국민화할 때 쓰던 '빨갱이'나 '적폐'라는 용어와 일맥상통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의사들을 카르텔이라고 명칭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의사들을 카르텔이라고 발언한 기사들은 많았다. 바로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출처로 해서다.
'의사 카르텔' 발언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즉시 항의했다. 의사 집단 내부에서는 '정부와 대화하자는 사람은 배신자'라는 의견이 굳어졌고, 이는 '피포위 의식'을 강화시켜 사태 장기화에 크게 기여했다.
'카르텔' 발언으로 사태를 장기화시킨 대통령실 관계자는 사실상 직접적인 책임자다. 본인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발언을 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누구인지 아직도 알려져 있지 않으며,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사태 장기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실명조차 밝히지 않은 발언이었다. 그런 발언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라는 출처를 달고 수많은 기자들이 기사로 작성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폭탄 발언을 언론이 보도함으로써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이다.
세번째 사례: "복귀 의대생이 절반 이상이라는 가짜뉴스"
지난주, 연세의대 의대생들의 복귀율이 50% 이상이라는 단독 기사가 주요 일간지에 보도됐다. 이 소식은 의대생과 의료계 내부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의대생들은 해당 보도가 가짜뉴스라며 강하게 반발하였고, 내부 단속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보도 내용과 차이가 있었다. 연세대 의과대학의 전체 학생 수는 881명으로, 이 중 398명(45%)이 1학기 등록을 하지 않았다. 등록 인원은 55%지만, 복귀한 학생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군위탁 등 처음부터 휴학하지 않았던 학생, 등록 후 군휴학 예정자, 등록 후 휴학 예정이던 25학번 신입생 등 복귀와 관련없는 학생의 비율이 등록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로 복귀한 의대생 비율은 30% 이하로 절반에 크게 못 미치며, 전국 단위로 보면 복귀 의대생은 많아야 10~20% 남짓이다.
등록 의대생 비율이 55%라는 사실은 복귀 의대생이 50% 이상이라는 기사 제목과는 다르다. 맥락과 세부 내용을 따지면 명백히 틀린 기사다. 허위보도냐 아니냐를 굳이 따지자면 허위보도가 맞다. 누군가 내게 '의대생 절반이상 복귀 기사'가 가짜뉴스냐고 물으면 나는 가짜뉴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해당 기사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익명의 의사 유튜버와 해당 언론사의 갑론을박도 있었다. 한 의사가 '의대생 복귀 기사'에 맞서 '의대생 절반 이상 복귀했다는 기사는 가짜뉴스'라는 유튜브 영상을 올렸는데, 해당 언론사가 이를 허위영상이라며 재반박기사를 낸 것이다.
해당 언론사는 영상 중 일부내용이 틀렸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결론적으로 절반 이상이 복귀했다는 기사는 허위사실이 맞았다. 반박 기사에서도 '절반 이상'이 아닌 '절반 수준'이라고 표현을 바꾸기도 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 소송을 걸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소송이 들어와도 결코 처벌받지는 않을 것이다. 허위사실에 의한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사 덕분에 의대생들은 언론마저 자신들을 속이려든다며 블랙리스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사태 해결의 길이 요원해진 것이다.
과거 자극적인 기사를 내는 언론을 '황색 언론'이라 비판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수익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내용을 알리는 유튜버, 일명 '사이버 렉카'에 빗대어 기자들을 '럭키 렉카'라 부르며 비판하기도 한다. 조회수에 급급하여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을 기사로 작성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지속되는 동안, 정부의 공식 발언은 의외로 자극적인 내용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익명의 관계자를 출처로 한 기사들에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았으며, 그중 상당수는 진실과 거리가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가 남 탓하기 바쁘다. 의료계도 예외가 아니며 정부와 국민들도 그렇다. 언론인들에게 가장 묻고 싶다. 의정사태 장기화에 언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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