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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당선인께,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문가와 협치하는 정부를 기대합니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⑮ 좌훈정 일반과의사회장

    기사입력시간 2022-03-23 15:23
    최종업데이트 2022-03-23 15:37

    윤석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 

    제 20대 대통령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임기는 올해 5월 10일부터 5년간입니다. 윤 당선인은 코로나 대응체계 전면개편과 필수의료 국가 책임제를 주요 보건의료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선거 이전 의료계 전현직 리더들의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보건의료정책 어젠다(agenda)'에 이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보건의료정책'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에 앞서 의료계가 꼭 필요한 보건의료정책을 다시 한 번 선제적으로 제안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①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는 보건의료정책 수립"
    ②이철호 전 의협 대의원회 의장 "코로나 최일선에서 의료진의 애로사항과 헌신 헤아리길"
    ③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 "국민 생명 지키는 필수의료 살리기가 최우선"
    ④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 "직역 간 편가르기 대신 화합과 통합의 사회를"
    ⑤민복기 의협 대선기획단장 "국민을 위해 의사가 소신 진료할 수 있는 의료환경"
    ⑥안덕선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저수가 정책기조 버리고 적정한 의료비 지출을"
    ⑦박홍준 전 서울시의사회장 "의료는 산업발전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
    ⑧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장 "전문가 배제된 보건의료정책, 국민들에게 비극과 참사"
    ⑨서연주 전공의협의회 수련이사 "합리적인 보건의료체계와 의료인력 양성 시스템"
    ⑩이로운 의협 홍보이사 "선의의 의료행위 위한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⑪장성구 전 의학회장 "의학계·의료계는 보건의료정책 파트너십 발휘하는 전문가 단체"
    ⑫박상준 의협 대의원회 부의장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정착 시급"
    ⑬주신구 병원의사협의회장 "전면적인 건강보험 정책 개선과 재정 투입"
    ⑭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 "의대 설립 아닌 의료인력 활용과 양성 청사진"
    ⑮좌훈정 일반과의사회장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문가와 협치하는 정부"
     
    사진=위키피디아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2011년 5월 1일, 외신을 통해 보도된 백악관 상황실의 사진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9·11테러의 배후인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위해 긴급히 모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의 모습이 보였는데, 오바마는 중앙자리를 작전의 책임자인 마샬 B 웹 공군 준장에게 내주고 옆에서 약간 웅크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관전하고 있었다.

    이 장면 하나가 지난 1세기 동안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의 저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잘 알 수 있도록 보여줬다. 직위보다 직무를 중요시 하고,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등용해 믿고 맡김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노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었다.

    전문가(專門家)는 사전적으로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해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사회 통념상으로는 전문직(專門職)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는데, 흔히 의학이나 법학 등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지닌 사람을 칭하기도 한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경제, 공학, 자연과학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 타인과 차별되는 능력을 함양한 사람들을 말하는데, 결국 이들이 주도해 각 분야의 활동과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치열하게 논의하면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민관 협력이 국가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바람과는 달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각하는 ‘전문가’는 곱게만 보이지는 않는 듯하다. 각 직역을 대표하는 전문가 단체들이 종종 사회의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거나 이른바 직역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 의견이 각 분야에 있어서 최고로 정선되고 국민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문 직역이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 쉽다.

    이이제이(以夷制夷)식 ‘위원회 공화국’은 지양(止揚)

    전문가의 의견을 경원시(敬遠視) 하는 건 국민보다 정부가 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다. 주요 사안에 있어서 정부가 국민과 소통을 하겠다면서 각계각층 사람들을 모아 위원회를 만들고 의견을 듣는데, 거기 초빙된 전문가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박대를 당하거나 이미 결론이 정해진 토론에 의미 없는 목소리만 내다가 힘없이 되돌아오곤 한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의료계는 이러한 논의구조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구색 맞추기 용으로 불려간 전문가의 목소리는 위원회 구성원 중 1/N밖에 안 되고, 다수결을 하게 되면 정부가 정해놓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그 대표적인 기구가 이른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다).

    필자도 지난 십 수년 간 의료계 일을 하면서 거버넌스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때마다 주장한 것이 그것이다. 정부가 전문가의 의견을 정말 귀담아 듣고 싶으면 일대일로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각계각층 시민들의 얘기는 미리 듣고 오고, 그것을 토대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전문성은 1/N로 희석이 되고, 전문적인 충고에 반하는 결론이 난 뒤에도 정부는 ‘의견을 다 수렴했다’는 식으로 강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의료계 내에서도 이 단체, 저 사람을 불러서 논의구조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전문가인 의사들 내에서도 이견(異見)이 있는 사안은 의사들을 공식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내부 의견을 정리해서 정부와 일대일로 만나서 협의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여기저기서 불러놓고 의협의 의견은 또 1/N이 되고, 결국은 정부 입맛에 맞는 의견만 채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우선 이런 구조를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불요불급한 위원회들은 대폭 없애거나 통폐합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보다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당장 일하기 편하자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끌어 모아 거수기와 같은 논의 구조를 만들면 확증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의 의견을 공익(公益)으로 만들어야

    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M. 뷰캐넌은 그의 공공 선택 이론(public choice theory)에서 ‘이기적 개인 대(對) 공공의 정부’라는 가정은 환상이고 국가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 역시 이기적인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사회 정의나 공익, 복지 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규모가 커지고 기능이 강화될수록 해당 부처의 이권이 커진다는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를 돌이켜보면 해당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컨대 소득주도성장이나 원전문제, 부동산 규제 등의 경제 정책들은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정치적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다시 말해 경제 정책들이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경제학에 문외한인 정치인들이나 경제학은 좀 알지만 사상적으로 편향된 어용학자, 그리고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등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의 전문가인 의사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됐다. 뷰캐넌의 입을 빌리자면 의사들은 공공의 선택에서 애당초 배제됐다. 2017년 이른바 문재인 케어나 2020년 공공의대 논란에서 보듯, 의사들의 목소리는 전문가가 아니라 소수 이익집단으로 폄훼됐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방역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윤석열 정부가 문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사회 다방면에 있어 전문가에 대한 오해를 벗어던지고 진솔하게 다가가야 한다. 보건의료에 있어서는 의사가 전문가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의사들은 언제든지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나설 준비가 돼있다. 따라서 윤정부도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돼온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의사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이미 우리 사회는 집단 지성을 통해 전문가의 의견에서 이기주의를 걸러내고 국가나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있다. 여기에 정부가 전문가가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만 만들어주면 된다. 이를 통해 새 정부가 전문가를 존중하는 정부, 국민은 물론이고 전문가과 함께 협치(協治)하는 정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