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여한솔 칼럼니스트] 병마와 씨름하는 환자, 소중한 목숨을 잃은 아이와 그 유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글을 시작합니다. 응급실 당직근무 중이라 11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는 참석할 수 없어 글로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전공의 등 의사 3명 구속 사건
최근 경기도 모 병원에서 횡격막 탈장 질환을 놓쳤다는 이유로 2명의 전문의(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1명의 당시 전공의(가정의학과)가 형사재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구속됐다. 이 사건에 대해서 잘 설명한 여러 기사가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모든 병원 응급실의 의료진은 좀처럼 최종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응급실은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전에 초기 처치를 시행해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는 환자를 놓치지 않기 위한 곳이다. 입원 치료를 필요로 할 정도로 환자 생명에 특별한 위험이 없는 한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낼 때도 전문의의 외래 진료를 권하는 것이 거의 일상화돼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응급실은 '응급'질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 3명의 의사가 응급질환을 놓쳤다고 간주했다. (사법부는 아는가? 당시 의사 중 한 명은 가정의학과 '1년 차 전공의'였다)
의료진에게 형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처사였다. 의사 중 누구도 환자가 나쁜 상태로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치 못할 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상해가 가해졌을 경우 환자와 가족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민사재판을 통해 과실이 가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실로 놓친 의사들이 감방을 가야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의료인에 대해 이 같은 구속과 징역행이 만연해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환자의 건강을 해칠 목적의 고의성이 다분한 의료행위를 제외하고 의료진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 이른바 '바이탈(Vital)'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과실 하나 하나를 일일이 따져가며 그들이 다루는 생명을 잃은 대가로 형사적 책임을 지워버린다면, 이들 중 감옥에 가지 않을 이가 몇이겠는가.
#2. 환자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
안면에 구타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라 의식상태가 명료하지 않았던 상태였고 의료진이 권유하는 검사를 거부하며 난동을 피우던 전형적인 만취 환자였다. 그는 의료진으로부터 진정제를 투여 받은 후 뇌 CT 검사를 진행했지만, 환자가 진정 상태에서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심정지가 났고 결국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법원은 의료진을 상대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3억원을 지급하라 주문했다.
사법부의 판결문을 잠시 인용한다. "의료진은 알콜 중독 상태에서 진정제인 미다졸람을 투여받은 A씨가 CT 검사 도중 구토할 경우 토사물에 의한 기도폐쇄로 인해 급성 호흡부전 등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예견하고, 이를 대비해 즉시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는 등 기도를 확보하고 흡인기로 토사물을 제거하는 조처를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 이 외에도 산소포화도 및 생체 활력징후를 측정하는 등 경과 관찰을 하고 이에 대응해 기도 폐쇄로 인한 심정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태 변화를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지 않고 CT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가 만에 하나라도 뇌출혈과 같은 초응급질환을 놓치기라도 했다면 사법부는 이 의료진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검사를 진행하지 않았던 의료진에게 또 다른 허울 좋은 주의의무위반 및 과실치상 혹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혹여나 난동을 피운 환자와 옥신각신 다투다 의료진 중 누군가가 또 폭행을 당해 의료진 폭행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을까.
#3.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모인 의사들
이런 사건에 크게 분노한 의사들이 궐기대회를 열어 서울 한복판에 모였다. 이들은 단순히 의료진에 대한 형사책임은 부당하다고 여겨서 참석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번 법정구속 건으로 참고 또 참아왔던 제도권과 사법부를 향한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본다.
물론 환자들을 기만하고 부당한 검사로 국민을 괴롭히는 의사들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어두운 그늘이 끼워져 있다는 것을 부인해선 안 된다. 우리 내부에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자성함으로써, 문제를 올바르게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아껴선 안 된다.
지금까지는 의료를 행할 때 제도적, 행정적 문제들이 얽혀있어도 수많은 의사는 묵묵히 견뎌왔다. '내가 좀 피곤하고 고생하더라도 제도의 문제를 논하기 전해 아픈 환자만 성심성의껏 잘 보면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테다.
앞의 두 사건을 보더라도 정부와 사법부가 의사를 너무 얕봤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당하면 당하는 대로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우리는 가마니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공인하는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이다.
의사들은 신(神)의 영역이라고 확신하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지막 남은 자부심으로 의업에 종사하며 버티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와 사법부는 너무나도 큰 비극을 선물로 주었다.
혹자는 이것이 우리만을 위한 이기적인 외침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가리키는 달은 쳐다보지 않은 채 손가락을 보며 탓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나은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분한 마음에 소리치는 이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나 또한 작은 목소리지만 함께 소리치고자 한다. '군경절축(群輕折軸,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많이 모이면 수레의 굴대를 부러뜨린다. 작은 힘도 합하면 매우 강한 힘이 돼서 강적에 대항할 수 있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의 의지로.
마지막으로 외치며 글을 마친다.
“의사는 죄인이 아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런 과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의료환경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