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현대의학이 일찍 자리 잡은 영국은 21세기에 들어서야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형사 범죄화’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게 됐다. 과실치사상에 대한 형사처벌에 관한 ‘윌리엄스(Williams) 보고서’(Gross Negligence Manslaughter in Healthcare: The Report of a Rapid Policy Review)가 2018년에 출간돼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영국에서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다룬 논문은 이미 지난 2006년에 출간된 바 있다. 1795년부터 2005년에 이르기까지 약 210년간 의사가 과실치사(manslaughter) 혐의로 기소된 사례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연구논문이다. 피오나 맥도널드(Fiona McDonald)가 정리한 캐나다의 107년간 의사 형사처벌에 관한 분석 논문에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 이 두 논문은 James Reason의 인간 오류 분류를 형사책임 문제와 연결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연구진은 신문의 데이터베이스, Medline, Embase, Lancet 및 Wellcome Library 등 광범위한 문헌조사를 통해 1795년부터 2005년까지 영국에서 정상적인 의료행위(legitimate medical practice) 중 발생한 환자 사망 사건을 원인으로 의사가 과실치사(manslaughter) 혐의로 기소된 사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리고 각 사건을 mistake, slip/lapse, technical error, violation이라는 ‘인간 오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분류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영국에서 약 210년 동안 확인된 75개의 사건에서 연루된 의사는 85명이 기소됐으며, 이 중 25명이 유죄 또는 유죄 인정으로 결론 났고, 나머지 71%는 무죄로 판결했다. 특히 형사 기소가 증가하기 시작한 지난 1975년부터 2005년까지 30년의 기간을 별도로 분리해서 살펴보면, 총 44명의 의사가 기소됐으며, 이 중 30명(68%)이 무죄, 나머지 14명만 유죄판결 또는 유죄 인정을 받았다.
1795~2005년 ‘210년간’ 형사처벌 사례분석 총 25명 유죄판결
기소 사건의 대부분은 ‘고의적인’ 안전 규칙 위반이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사건을 Reason의 인간 오류 개념에 따라 mistake( 판단, 계획 단계의 오류), slip/lapse(실행 과정의 실수, 주의 착오, technical error(기술적 실패), violation(의도적인 안전 규칙 위반) 등으로 분류했다. ‘위반(violation)’을 이유로 처분받은 유죄율은 약 63%로, mistake나 slip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인간적 오류(Human error)와 의도적 위반(deliberate violation)은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다. Mistake와 slip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violation은 안전한 진료 규칙을 ‘의도적으로’ 벗어난 행위다. 논문에는 이런 구분을 이해하기 좋은 사례들과 연결해 수록했다.
‘Slip’의 사례로써 지난 1978년 4세 소아에게 methotrexate를 투여하면서 의무기록에 적힌 용량을 잘못 해석해 20배 용량을 투여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을 꼽았다. 해당 전공의(junior doctor)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으나,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2004년에는 마취과 의사가 수술 중 비위관에 주입해야 할 공기를 실수로 혈관에 주입해 영아가 사망한 사건이 있다. 역시 과실치사로 기소됐지만, 무죄로 형벌을 면했다.
반면, 의도적인 위반(violation)은 결과가 확연히 달랐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진료했거나, 마취과 의사가 수술 전 또는 수술 중에 고의로 마취제를 흡입한 사례 등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영국의 방대한 역사적 판례를 보면 단순히 ‘환자가 사망한 사건은 곧 의사의 오류와 형사책임’이라는 무모한 등식과 법률적 구조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다.
지난 19세기부터 영국 법원은 이미 의사가 실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형사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합리적 원칙’을 인정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1862년에 이뤄진 판결을 보면 법원은 합리적인 의료 기술과 주의를 행사한 의사가 실수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며, 과실치상(gross negligence) 또는 전문적 지식의 중대한 결여가 있는 경우에만 명확히 따져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이 원칙은 이후 1925년 ‘Bateman 판례’에서 과실은 단순한 과실(negligence)을 넘어,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시가 범죄로 처분되고, 처벌받을 정도로 ‘중(gross)해야’ 한다는 기준이 제시됐다. 영국 상원 의회(귀족원)는 1995년 의료인의 ‘주의 의무’ 위반으로 인한 과실치사상(gross negligence manslaughter)에 1925년 ‘Bateman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처럼 영국의 기본 구조는 의료 분야에서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에 한해 예외적으로 형사책임을 묻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전체 조사 기간 210년간의 기소 건수를 들여다보면, 그 건수가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는다. 논문에 의하면, 1990년 이후 기소 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나, 기소가 증가했음에도 유죄율은 약 30% 수준에 그쳤다. 저자들은 이를 근거로 당시 영국의 검찰청(Crown Prosecution Service)이 의사들을 지나치게 많이 기소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중요한 정책적 구분은 ‘기소율’과 ‘유죄율’은 전혀 다른 지표라는 점이다.
논문이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개인의 ‘처벌’보다는 시스템적인 ‘개선’으로, 저자들은 명백한 안전 규칙 위반(violation)이 있을 때 형사 기소가 적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mistake와 slip과 같은 ‘human error’는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의료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며, 의료에 대한 악결과만으로 형사 처벌하는 것은 환자 안전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英 법원, 의사 실수 하나로 형사책임 묻지 않는 ‘합리적 원칙’ Just Culture 모델
인간의 오류 개념 중 하나인 Slip은 피로, 주의 분산, 간섭(interruption) 등 인간의 인지적 특성에서 기인하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줄이려면 개인 처벌보다는, 의사가 일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우선 안전하게 설계해야 함을 논리적으로 편다. 또한 의료인이 자신의 오류를 솔직하게 보고할 수 있어야만 문제가 내포된 시스템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류(error)가 발생해 개인을 비난하고 형사처벌 하면, 그 이후에는 오류의 은폐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조직의 학습 능력과 의욕을 저해해 결국 시스템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오류 보고를 통해 원인과 시스템 분석을 통해 시스템 개선으로 동일 사고 재발 방지라는 접근 방식이 환자 안전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의료사고에 대한 Just Culture의 원형이 여기서 기원하고 있는 셈이다.
논문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도 의료분쟁의 정책을 검토할 때, 의료사고를 하나의 과실 개념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인간 오류(human error)와 의도적 위반(deliberate violation)을 형사책임에서 동일하게 다루지 않는 것이 환자 안전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210년간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추출한 이 논문의 핵심 메시지다. 우리나라도 오류를 세분화해 ①불가피한 adverse event, ②technical error, ③slip/lapse, ④mistake, ⑤negligence, ⑥gross negligence, ⑦deliberate violation 등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Bateman 판례’가 보여주는 중요한 원칙은 정책 논의를 할 때 ‘과실이 있었는가?’와 ‘그 과실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정도로 중대한가?’를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기준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특히 환자 안전에 대한 조사와 형사책임 판단의 목적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환자 안전 조사의 목적은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왜 이 시스템에서 이러한 오류가 발생했나?’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의료의 궁극적인 목표로 볼 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조사 체계의 설계에서 현대적 개념의 공정 문화(Just Culture)와 시스템적 접근(systems approach), 인적요인(human factors) 개념과 함께 연결해야 한다. ‘어떠한 행위를 형사법으로 다루고, 어떤 오류를 보상 체계로 끌어들이고, 어떤 문제점들을 전문직 규제와 환자 안전 시스템으로 다루는 것이 재발 방지에 가장 좋은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료체계의 발전이다.
210년간 25명의 의사를 형사 처벌한 영국과 연간 20~40명을 형사 처벌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의사가 겪어야 하는 수난의 근원이 무엇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참고문헌>
Ferner RE, McDowell SE. “Doctors charged with manslaughter in the course of medical practice, 1795–2005: a literature review.”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2006;99:309–314.
Ferner RE, McDowell SE. “Doctors charged with manslaughter in the course of medical practice, 1795–2005: a literature review.”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2006;99:30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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