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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서 심정지 온 환자 살렸지만, 법원은 후유 장애 5억 배상 판결…들끓는 '의료계'

    '15분' 간 진료기록 없는 것 놓고, 모니터링 안했다며 의료진 과실 물어…"응급의료 현실 괴리된 판결" 반발

    기사입력시간 2023-12-21 10:39
    최종업데이트 2023-12-21 20:1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법원이 인천의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심정지로 응급처치를 받은 후 뇌 손상을 입은 사건에 대해 병원 측이 5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려 의료계가 들끓고 있다.

    법원은 해당 병원 의료진들이 응급환자에 대한 주의의무를 부실하게 해 환자에게 악결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는데, 의료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응급환자가 무수히 밀려드는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 등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는 판단에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21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인천지방법원 민사 14부가 환자 A씨가 모 대학병원 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응급환자 심정지, 의료진 기관 삽관·심폐소생에도 '뇌 손상'…법원, "15분' 경과 관찰 소홀"

    사건은 2019년 4월 A씨가 호흡 이상 등으로 인천의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43세였던 A씨는 병원 방문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10차례 넘게 설사를 하고, 이틀 전부터 호흡 곤란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씨는 과거 폐렴으로 입원한 경험이 있고, 최근 들어 신장이 좋지 않아 조만간 혈액 투석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총체적으로 건강 이상을 보이던 A씨는 응급실에 도착했을 당시 체온이 40도로 높았고, 분당 호흡수도 38회로 정상 수치(12~20회)에서 많이 벗어난 상태였다.

    A씨는 응급실에 도착한 이후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의식 불명에 빠졌고, 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마취를 시행한 후 기관 삽관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곧바로 A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해 호흡을 유도했으나, A씨는 뒤이어 심정지가 발생했다.

    이에 병원 응급구조사는 곧바로 A씨에게 흉부 압박을 시행했고, 의료진도 A씨에게 수액을 투여한 뒤 심폐소생을 진행해 A씨는 소생했다.

    하지만 A씨는 깨어난 이후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이후 후견인으로 당시 응급실에 동행했던 아버지는 2020년 5월 변호사를 선임한 후 해당 대학병원을 상대로 총 13억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을 제기한 후 약 3년 만인 지난 19일 인천지법은 대학병원 의료진이 A씨에게 기관 삽관을 한 뒤 경과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는 환자 측의 주의의무 소홀에 대한 과실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당시 의료진은 신장 기능이 떨어진 A씨의 상태를 고려해 일반 환자보다 더 각별하게 주의해 호흡수·맥박·산소포화도 등을 기록하며 신체 변화를 관찰했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의료진은 기관 삽관을 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심정지를 확인한 15분 동안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A 씨의 호흡수가 증가하고 의식도 점차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관 삽관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병원 의료진이 A 씨의 심정지 이후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점 등도 고려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가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 결정적 사유인 ‘신체기록 관찰’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 사항은 응급실 의료진이 A씨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는 정황 때문이었는데, 그 근거가 A씨가 응급실 접수 이후 15분 가량의 진료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응급의료진들이 15분 가량 A씨에 대한 진료기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정황만으로 의료진이 A씨에 대한 모니터링을 소홀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의료과실 입증 책임 환자→의사로…응급의료 현실 고려 않고, 최선 다해도 책임 묻는 현실 "분노"

    의료계는 앞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실에 찾아온 응급환자를 곧바로 '대동맥박리'로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에 이어 연타로 발생한 응급실 관련 판결로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이번 사건은 굉장히 무리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상태가 악화된 상태에서 응급실에 왔는데 의료진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실을 해서 환자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환자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 환자가 나빠지는 걸 몰랐던 것이 아니냐며 의료진의 과오를 인정한 사건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에 대한 20분 가량의 진료기록이 없다는 것이 근거가 됐는데, 쉬지 않고 환자들이 밀려드는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한 명씩 속기사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응급의료진들이 매 순간 진료기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라며 "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상적인 진료를 요구하는 판결이다"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 회장은 "과거에는 의료소송이 제기될 경우 환자 측이 의료과실을 증명해야 했는데 이제는 의료진이 의료과실이 없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사법부의 판단은 결국 소신껏 진료하는 의사들의 위축과 응급의료 현장 이탈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 피해는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 역시 "응급실에는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응급환자들이 하루에도 무수히 들이닥친다. 해당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지 1시간도 안 돼 심정지가 발생했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는데 응급환자를 받아 심폐소생 등으로 최선을 다한 의료진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판결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이제 언제 어떻게 경과가 나빠질지 모르는 응급환자는 병원에게 시한폭탄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응급실은 더욱 더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응급환자가 대기하는 상황에서도 이제 의사들은 모두 진료기록을 붙자고 있어야 하는가? 최근에 응급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 법 마저 생겼으니, 이제 응급의료 의료진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됐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