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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구매 못한 코로나19 백신, 언제까지 접종 기다려야 하나

    [칼럼] 배진건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기사입력시간 2020-12-11 06:02
    최종업데이트 2020-12-11 06:48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지난 11월 24일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한 달 동안 인구 10만명 당 코로나19 확진자수와 사망률, 코로나19 진단 검사의 양성 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코로나 회복력 지수’를 공개했다. 코로나19 사태를 효과적으로, 방역적으로 잘 대처한 국가로 뉴질랜드와 일본, 대만이 먼저 꼽혔다. 한국은 그 뒤를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정부의 K-방역에 대한 자부심과 1등 자화자찬이 민낯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일본이 우리보다 앞섰다고? 이건 아마도 틀린 기사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 것이 ‘Access to COVID Vaccines’ 즉 ‘백신 조달 능력’이라는 항목이다. 이 항목에서 일본이 4점이고 우리는 2점이다. 그것도 왜 우리가 0점이 아니고 2점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8월 24일 자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잡지 ‘네이처’는 ‘News Explainer’ 섹션의 ‘The unequal scramble for coronavirus vaccines — by the number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의 부자 나라들이 코로나19 백신 20억 도즈(dose)를 이미 선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그 때만해도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의 mRNA백신에 대한 대한민국의 선주문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갔다.

    다른 나라들은 백신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어떤 백신이 안전하고 효과가 높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종류별로 복수의 백신을 확보해 놓는 입도선매 전략을 선택했다. 그렇게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세계경제 11위 국가의 규모이지만 일찍 백신 구매 경쟁에 뛰어 들지 않았다.
     
    사진: 이코노미스트

    11월로 들어가며 상황이 확 바꼈다. mRNA 백신 95% 효과의 압도적인 성공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Wealthy countries have already pre-ordered more than two billion doses)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1월 22일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과학정보분석업체 에어피니티(Airfinity) 자료를 토대로 이 같은 현실을 지적했다. 현재 가장 먼저 상용화에 도달한 화이자,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생산 가능한 용량의 절반을 전 세계 인구의 13%에 불과한 EU 회원인 27개 국가와 캐나다, 미국 등 5개 국가가 사전 주문했다.

    그 부자 나라들 중에도 국민 1인당 코로나19 백신 확보량은 캐나다가 가장 많았다. 캐나다는 국민 1인당 코로나19 백신을 9회 접종할 수 있는 양을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2위는 미국으로 1인당 7회 접종할 수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사전 주문했으며, 영국과 호주가 최소 5회 이상 접종할 수 있는 양을 확보했다. 일본도 국민 1인당 2회 이상 접종할 수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사전 구매해 놓았다. 화이자 백신의 2021년까지 생산량은 13억 도즈이다. 그러나 그 백신 물량의 80%는 이미 부자 나라들에 선점을 당했다.

    코백스(COVAX)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혁신연합(CEPI) 등이 만든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배분 기구다. 코백스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는 국가들이 많아 코백스에는 189개국 이상이 가입했다. 대한민국도 코백스를 통해 1000만명분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할 계획이다.

    그러나 백신 확보에 뒤쳐졌다는 지적을 받아온 우리 정부가 지난 2일 보건 당국에 따르면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 계약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 당국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11월 27일 아스트라제네카(AZ)와 백신 구매 계약을 완료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10월부터 모더나·화이자·AZ·존슨앤존슨·노바백스 등과 공급 계약 협상을 벌여왔던 것의 처음 결과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백신 확보에 뒤처진 사이에 같은 날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미국 화이자가 개발한 mRNA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승전일을 의미하는 ‘V-Day’라고 12월 8일을 다시 명명하고 50군데 병원에서 노인들을 우선으로 첫 백신을 접종했다.

    지난 8일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외교부는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 해외 개발 백신 확보 계획에 대해 심의·의결하고 예방접종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제약사별로는 AZ, 화이자·모더나 등 세 곳에서 각각 2000만회분(1000만명분), 존슨앤드존슨의 제약부문 계열사엔 얀센에서 400만회분을 선구매하기로 했다. 나머지 기업도 구속력 있는 구매 약관을 체결해 구매 물량 등을 확정했고, 나머지 계약 절차도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정부는 코백스 1000만명분까지 더해 4400만 명분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현실성이 있을까? 문제는 아직 계약을 안 맺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백신 구매를 서두른 나라들조차 공급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백신 물량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전망에 있다.

    화이자 백신도 가난한 나라들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시늉을 해야 하기에 잔량 20%에서 일정 부분은 코백스를 통해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3일 블룸버그통신은 홍콩·마카오도 화이자 백신 1000만회 분을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백신의 잔량은 점점 줄어든다. 백신이 만들어지기도 전 도박판 같은 부자 나라들의 선점 게임에 일찍 끼어들지 않은 정부의 실수가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물론 백신 국수주의 결과물이라고 비난할 수 있지만 어떤 백신이 성공할지 모르고, 주문 물량을 모두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과잉 주문’은 리스크가 담긴 예방책이다.

    듀크대 글로벌 보건 혁신센터의 국가별 코로나19 백신 구매 현황 집계(12월 4일 기준) 등을 토대로 중앙일보가 국가별로 구매 계약을 마친 코로나19 백신 종류를 산출해 보도했다. 영국의 ‘V-Day’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코로나19 mRNA 백신 접종이 임박한 가운데(11일로 추측) 지금까지 최소 12개 국가가 3가지 종류 이상의 백신 구매를 확정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캐나다는 7가지, 미국·EU(유럽연합)·인도네시아는 6가지, 호주·멕시코는 4가지, 일본·인도·브라질·칠레·에콰도르는 3가지 종류의 백신을 구매 계약했다. 분산 구매를 통해 위험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다.

    선진국의 전략은 어떻길래 대한민국과 다르게 백신 선점을 강행했는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4종류의 백신을 총 1억 3400만회 분 이상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우리의 전략은 우리 국민이 (백신) 대기 행렬의 앞에 서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고 있으며 전문가들이 추천하면 백신을 추가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여러 개발사의 백신을 확보하는 전략에 대해 “어떤 백신이 더 효과적인지, 어떤 백신이 먼저 도착하는지에 상관없이 국민에게 수천만 개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접종할 백신을 먼저 확보한 앞의 명단에 실린 인도네시아, 멕시코, 인도,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등이 대한민국보다 선진국인가?

    왜 정부가 구매 계약을 맺었다고 밝힌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일까? AZ는 SK바이오사이언스-보건복지부와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AZD1222’의 글로벌 공급망 강화를 위한 3자 협력의향서(Letter of Intent)를 체결했다고 지난 7월 21일 밝혔다. 협약에 따라 SK바이오사이언스는 AZ의 글로벌 파트너로 코로나19 백신 제조에 참여하고 보건복지부는 양사의 백신 생산 및 수출 협력이 신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협약이다. 겨우 그만한 안면 외교력인가?

    더욱이 AZ는 지난달 3상 중간 결과 발표 뒤 연구진의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신뢰성 논란이 일면서 효과 90%를 도달하기 위해 추가 임상 3상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마도 의도적인 실수(?) 방법대로 낮은 도즈(dose) 접종으로 먼저 프라이밍을 하고 두번째는 높은 도즈를 접종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AZ의 3상 최종 결과가 다시 나온 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사용을 승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물량 공급 시기 등을 감안할 때 접종은 일러야 내년 3분기에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것도 현재는 우리나라 국민의 5분의 1만 맞을 수 있는 1000만명분이다.

    3000만~3500만명이 대한민국에서 백신 접종을 해야만 집단면역이 생기고 코로나19가 물러간다. 언제가 그 시기일까? 내년 이 맘 때일 것이다.

    최근 들어 하루 확진자가 500~600명씩 쏟아지는 가운데 백신 확보전에서 대한민국이 뒤쳐진 게 분명하다. 보건당국은 곧 하루에 1000명의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하고 경고한다. 군인과 경찰을 투입해 추적조사를 한다고 해결될까? 2020년을 지루하게 기다린 국민들이 앞으로 반년을 마스크를 쓰고 또 조용히 기다릴까? 미래 상황을 예측하고 준비하는데 정부가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무증상으로 바뀐 이태원 사태가 지난 5월 1일부터이다. 그 때부터 6개월 뒤 겨울 상황을 준비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의 K-방역에 대한 자부심과 1등 자화자찬으로 세월을 보내며 ‘코로나 회복력 지수’가 낮아진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에 대해 ‘V-Day’를 선언하고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와 답답한 마스크를 계속 써야하는 나라와는 차이가 난다. 차이나는 클라스이다. 대한민국의 ‘V-Day’는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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