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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다쳤는데 서울에서 응급수술? 지방엔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없다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기사입력시간 2024-01-05 07:58
    최종업데이트 2024-01-05 08:36


    [메디게이트뉴스] 야당 당대표가 부산에서 다쳤는데, 부산에서 수술을 받지 않고 헬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서울대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했다. 테러는 민주주의의 적이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사람의 목은 생명 유지와 관계된 장기가 밀집돼 있어서 급소 중에 급소에 해당한다. 목에 자상을 입었다면 그 자체로 응급상황이다. 현장에서 시급히 지혈을 하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한 것은 잘한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응급수술을 부산대병원이 아닌 서울대병원에서 한 것이다. 부산대병원 권역응급센터는 자타공인 전국 최고의 외상치료 전문성을 자랑하는 병원이다. 그럼에도 환자는 부산에서 치료받지 않고 서울로 떠났다. 이 사건은 앞으로 두고두고 한국 의료의 실상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될 것이다.
      
    부산은 인구 300만명이 넘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다. 그런데 최근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2004년 368만명이었던 부산의 의료보장인구는 2022년 337만명으로 31만명, 8.6%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부산의 의과 의사수는 5344명에서 8356명으로 56.3%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는 줄어들고 의사수는 급격히 늘어나니 의사당 환자수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외래환자가 가장 많은 의원의 통계를 보면 부산의 의원당 외래환자수는 2012년 1만7712명으로 정점을 찍고 10년째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다. 2021년 의원당 외래환자수는 1만2769명으로 정점대비 27.9%나 줄었다.

    부산만 환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 울산, 경남을 일반적으로 부울경이라고 부르며  하나의 권역으로 보는데, 울산이나 경남도 환자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주는 것은 다르지 않다.

    울산은 2012년 2만1404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의원당 외래환자수가 2021년 1만5491명으로 27.6%가 줄었다. 경남도 부산, 울산과 마찬가지로 2012년 의원당 외래환자수가 정점을 찍고 하향세를 보여주고 있다. 2012년 2만2228명이었던 경남의 외래환자수는 2021년 1만6265명으로 26.8%의 감소세를 보여주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 연보를 보면 2022년 서울 지역의 의료기관이 진료한 환자 중 41.7%가 타지역으로 부터 유입된 환자였다. 대한민국 최대 도시 서울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환자들이 서울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규모에 따라 분류한 종별 통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환자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환자들은 서울로, 대형병원으로만 쏠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인구가 줄어 국가의 존립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가 지적하고 있다. 중장기 인구 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2023년 5171만명에서 이후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2050년에 4333만명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환자수는 이미 10여년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앞으로는 인구도 상당히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본격적인 인구 절벽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의사들은 9천명의 전문의가 전문과 간판을 떼고 있었다. 인구가 줄기도 전에 이미 환자 감소의 벼락을 맞았는데, 의사들이야 망하던지 말던지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수를 대거 늘려 '낙수효과'로 필수의료를 해결하겠다는 게 정부의 정책 수준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올바른 의료시스템이나 의료전달체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환자들이 원하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마음대로 가는 지금의 잘못된 시스템을 손댈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 질병의 경중은 안중에도 없고, 다른 사람의 생명이 시급하든지 말든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저 내가 원할 때 언제 어디서든지 나부터 봐줄 그런 의료체계를 바라는 것이다.

    환자가 해마다 줄어들고, 수 천명의 전문의들이 전문과 간판을 떼고 개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면 의료 폭망의 최종관문이라고 불리는 총액계약제도 의사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추진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의사들이 물러설 곳은 없다.
     
    게다가 지역 의료를 살리자며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하며 그 법안까지 일방적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도 병원쇼핑을 하는 현재 상황에서 지역의 유수 의료기관을 홀대하고 기를 쓰고 서울로 올라오는 지방의 환자들을 비판할 수는 없다.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충분히 진료 가능한 환자는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자는 인식이 전 국민적으로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마땅함에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고위층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씁쓸할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