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수술실과 외래진료실에 폐쇄회로(CC)TV 설치가 반드시 필요할까. 민감한 수술과 진료행위에 대해 CCTV 또는 실시간 녹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최근 들어 수면마취 중 성추행한 의사,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맡기고 자리를 비운 의사, 신생아실에서 이제 막 분만한 신생아를 떨어트려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등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미디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수술실에 대한 직무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환자의 수술실과 퇴소, 다음 수술을 위한 청소와 준비에 대한 감측(monitor)은 물론 수술이 진행 중인지 종료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수술실 내부의 CCTV를 통한 중앙통제와 감측(monitor)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수술실 CCTV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환자건강을 위해 최선의, 그리고 최상의 의업 수행을 목적으로 구비해온 것이다.
의료기관이 자율적 판단에 의해 자체 CCTV 시설을 구비해 운영하는 것은 환자와 의료인의 안전을 위해 설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진료실에서의 의사 살해 사건으로 외래진료실에 대해서도 CCTV 설치 및 보안장비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CCTV 설치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인 민감 정보에 대한 엄중한 보호와 인권 보호 문제는 나날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CCTV, 인권침해와 개인정보 침해, 그리고 환자 비밀보장 침해
진료 및 수술 과정에 대한 녹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너무 많다. 우선 잠정적 인권침해와 개인정보 침해, 의료윤리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의 비밀 보장에 대한 침해요소는 환자 개개인의 식별과 인적사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해상도 높은 CCTV를 수술실이나 외래에 단순히 설치하고 마는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영상자료로 수록된 개인 정보의 소유와 보관 및 관리 문제에 대한 복잡한 문제가 내재돼 있다. 개인정보는 말 그대로 보안과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프라이버시이자 민감한 보호영역이기 때문이다. 수술실에서 CCTV를 통한 수술 장면의 적나라한(?) 녹화는 수술 부위에 관계없이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된다.
프랑스의 경우 환자에 대한 비밀보장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엄중한 사안으로 국민들에게 깊은 인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경우 환자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하는 것이 엄격한 의료윤리로 정립돼 있다.
수술실 폐쇄회로의 자료가 ‘폐쇄’가 아닌 ‘공개회로’로 변환될 경우 환자에 대한 비밀보장이 매우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의료인이라면 반드시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환자의 비밀 보장 의무를 의료인 자의(自意)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저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CCTV에는 환자는 물론이고 수술실 근무자에 대한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이다. 물론 철저한 자료보관 시스템과 해킹 방지 등 빈틈없는 차단막을 설치한다 치더라도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에 따른 정보관리의 허점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수술실 근무가 곧 CCTV 영상에 시시각각 노출될 수 있다. 이런 사실에 종사자들의 소신 있는 직무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께름칙한 분위기로 업무 상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어린이집 CCTV이나 자동차 블랙박스와는 다른 수술실 CCTV
어린이집의 CCTV와 수술실의 CCTV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CCTV에 남겨진 유아나 선생님의 영상이 약점으로 작용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어린이집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CCTV가 즐겁게 받아들일 내용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CCTV가 악성 범죄들로부터 공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설치되기 때문이다. 다수 선량하고 모범적인 선생님들까지 모두 잠정적 범죄인 취급을 받는 맹점이 있는 것이다.
개인 승용차마다 블랙박스를 장착했다고 사고가 백 퍼센트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도 필수품처럼 설치 건수가 급증하는 이유는 사고에 대한 잘잘못이나 팩트 확인 과정에서 불필요한 우격다짐을 줄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겠다. 특히나 자동차 블랙박스는 아주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민감 정보 유출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복잡한 범죄사건의 해결에 명확한 스모킹 건과 같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공공장소에서의 CCTV 설치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병원 복도, 접근금지 지역, 외진 곳, 주차장 등 사회 안전을 위해 설치되기는 하나 이것도 법적 규제에 부합하게 매우 까다롭게 설치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환자의 신체부위와 개인 식별이 가능한 매우 정교한 수술실 CCTV가 논의되는 것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 목격하기 어렵다. 수술실 CCTV 설치는 모든 의료인을 잠정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환자의 피해를 막고 권리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CCTV 설치 주장은 아직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성숙되지 않은 것이며, 특히 일부 투명하지 못한 운영 방식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불법 행위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정치인의 CCTV 주장, 환자 보호를 방패막이로 환자 비밀 폭로하자는 것
수술방에서 CCTV 설치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픈 역사인 일본 식민지 시절부터 겪어온 불령선인(일제 강점기에,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에 대한 신고교육을 비롯해 해방 이후 빨갱이와 군사정권 시절 거수자(거동이 수상한 자)신고 및 멸공 방첩이라는 국시(國是) 아래 국민 생활에 깊이 스며들었던 간첩신고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보여주는 편집증적 사회 현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양분된 이데올로기에 의한 반대 집단 타도 술책에서 반정부, 반체제 집단, 빨갱이집단 등 잠재적 우범집단의 설정과 색출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 처리 방식’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편협 된 사고가 확대 발전해 과거 우생학적 논리에 의한 성소수자, 장애인, 열등민족에 대한 대량 학살까지 확장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우리의 가족적 가치에 의한 구성원 간의 비밀 공유, 비밀보장에 대한 낮은 문턱이 바로 집단적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CCTV 논란에서 제일 중요한 본질은 의사들의 환자 비밀보장이고 가장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 전문 직종의 윤리 의식이다. 이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남이야 죽든 말든 자신의 커다란 정치 성과물인 양 포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냉철하게 뜯어보면 역설적이게도 환자의 보호를 방패막이 삼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될 환자 비밀보장을 무참히 희생시키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CCTV로 의료윤리의 개혁적인 선도국가로 취급 받을지, 아니면 의료윤리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나라인지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다.
앞으로 정치인들은 전문직종의 의료윤리 의식에 어긋나는 인기 영합에 의한 ‘정치 의제’로 삼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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