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차기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청사진을 놓고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온도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사회는 차기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은 커녕 의료영리화∙민영화로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한 반면, 의료계는 공공정책수가 도입으로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호평했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의료포럼 제4차 정책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윤 당선인의 행보와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들을 하나 하나 짚으며 문제를 제기했다.
재계부터 만난 윤석열 당선인 '의료영리화' 우려...공공정책수가는 공공 아닌 '민간수가'
정 위원장은 우선 윤 당선인이 당선 후 가장 먼저 만난 단체가 전국경제인연합, 한국경영차총협회 등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의료영리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경총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영리병원 허용을 주장했다”며 “최근에 제주도 영리병원과 관련해 녹지병원 소송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제주 MBC의 관련 질의에 윤 당선인은 (법원 판결에) 찬성하는 기조로 얘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수위 기획위원장이자 국토부 장관 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이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이러한 인수위의 분위기가 영리병원의 대한 재계의 주장과 연계돼 어떤 활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우려를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의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를 공약하며 내놓은 공공정책수가도 도마에 올랐다. 공공정책수가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국 민간병원에 수가를 지원하는 ‘민간수가’로 공공의료 확충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공공정책수가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인프라 투자가 아니라 민간이 운영하는 음압병상,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 등의 인프라에 투자를 해주겠다는 것”이라며 “이와 유사한 내용이 의협이 낸 정책안에 담겼는데, 민간의료공급자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공약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윤 당선인은 선거 유세를 하면서도 공공병원 확대 공약은 민간병원으로도 충분하다고 한 적이 있다”며 “한국의 가장 심각한 의료 문제가 부족한 공공병상과 시스템인데 민간의료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 공공의료를 방치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형병원 분원∙공공병원 위탁운영 공약 혹평...지역 거점 공공병원 내실화해야
지역별 공약에서 공공병원 설립이 포함된 데 대해서는 그나마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인천 제2의료원, 충남 경찰국립병원, 울산의료원 등 지방에 다수의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의료취약지 문제를 대형병원의 분원을 설치하거나 공공병원을 위탁운영하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새 정부의 기조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공병원 위탁은 효과가 없고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다”며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보라매병원은 병원 규모가 크고 중환자 진료를 많이 하는 시스템이라 그나마 기능을 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지방의료원을 위탁운영 하면 식민지병원처럼 운영되면서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자원을 빨아먹는 구조가 돼 효과가 전혀 없다”고 했다.
이어 “(윤 당선인은) 대형병원 중심 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있어 보인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이 문제인 상황에서 상종에 위탁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오히려 지역 기반의 거점 공공병원을 내실화하는 것이 지역의 인구소멸도 막으며 선순환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공공정책수가, 대형병원 중심 의료체계에 더해 개인건강정보 집적화에 기반한 의료산업화, 공공의료 없는 보건부 독립 주장까지 모두 직간접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공공∙민간 구분 국민 입장서 되레 불편...공공정책수가, 의료자원 효율적 활용 가능케 할 것
패널로 참석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김계현 연구위원은 먼저 공공보건의료 관련 정책에서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행 의료보험 체계에서 공공과 민간을 나누는 것이 국민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민간의료기관도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의 전반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보건의료관련 법률 개정 과정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정의 규정만 개정되고 이하 규정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며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전체적인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위원장이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을 영리화∙민영화라고 비판한 데 대해서는 “아직 공약 수준이기 때문에 기우가 아닐까 싶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공공정책수가에 대해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정 위원장과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김 연구위원은 “감염병 예방이나 대응은 평상시 준비가 더 중요하고, 관련해서 규제보다는 지원 정책이 효과적이란 점도 이미 밝혀져 있다”며 “필수의료에선 인프라 확보가 중요하단 측면에서 기존 의료기관들의 응급, 중증외상, 필수 시설에 운영비를 지원하고, 수가를 주는 방안이 국민 안전권 확보라는 큰 틀에선 효율적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실제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기능에 대해선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지원과 보상을 해주고 있다. 국내 민간의료기관들의 공익적 역할과 공공성이 공공의료기관과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어 의협도 유사한 내용으로 정책 제안을 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또한 “민간의료기관에 많은 보상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민간기관의 공익적 기능들에 대해선 공공병원들과 동일하게 인정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부족한 필수의료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면 국민들에게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의료기관의 공익적 기능을 지원한다면 공공의료기관의 사회적 책임, 민간과 차별화된 기능에 대해서도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대응서 돋보인 공공∙민간 협력 사례 발전시켜야...현행 70개 중진료권 재검토 필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성공적이었던 부분이 언급되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중환자치료에선 민간의료기관들도 많은 기여를 했고, 대구시도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며 “이런 경험치를 잘 모아 공공과 민간의 협력 모델을 개발하고 확산하는 게 앞으로 더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현행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에서 전국을 70개 중진료권으로 나누고 있는데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70개 중진료권별로 중증응급부터 감염병 진료까지 공백없는 의료체계를 확립하려다보니 병원 신증축, 의사 인력 확충이란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인데, 진료권 설정 자체를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자원 배분정책의 수립이나 진료권 설정을 위해선 지역별 지리공간적 특성, 인접지, 해당 지역의 현황 및 특성, 환자의 의료이용 행태, 이동행태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사회의 공공병원 설립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주장과 관련해선 “선거철마다 병원 설립 공약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병원 신증설에 대해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물론 필요한 지역엔 병원을 지어야 겠지만, 무조건 예타 면제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