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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대 파킨슨병 환자 '맥페란' 처방 의사 '금고 10개월'…의료계 "말도 안되는 판결"

    특정 의약품 처방이 파킨슨병 악화 원인이라는 근거 '미흡'…법조계도 "형사 사건에서 인과관계 엄격히 증명돼야" 지적

    기사입력시간 2024-06-10 14:28
    최종업데이트 2024-06-11 09:2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80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맥페란'이라는 소화제 약물을 처방한 60대 의사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 판결이 내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계는 해당 판결이 환자의 병력청취조차 어려운 3분 진료 현실에서 특정 약물로 환자 상태가 악화된 것을 단정지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창원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민)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60대 의사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피고인 A씨는 2021년 1월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모 의원에서 근무하던 의사로 1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80대 환자 B씨가 영양제 주사를 맞기 위해 해당 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실시했다.

    A씨는 환자 B씨에게 구역·구토 증상 치료를 위한 의약품인 맥페란 주사액(2㎖)를 투여했는데, 주사액 처방을 받은 B씨가 이후 전신쇠약과 발음장애, 파킨슨증 악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A씨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맥페란이 파킨슨병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투여가 금지되고 고령자에게는 신중한 투여가 권고된다"라며 "A씨가 사전에 환자 B씨 병력에 파킨슨 병이 포함되는 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B씨에게 맥페란 주사액을 처방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유죄가 나온 1심 판결 당시 A씨와 변호인은 의사로서 문진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며 업무상과실이 없다고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 병력 등을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를 소홀히 한 업무상 과실이 있다며 역시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은 직접 페이스북에 "환자 치료한 의사한테 결과가 나쁘다고 금고 10개월에 집유 2년이요? 창원지법판사 '윤민' 이 여자 제 정신 입니까?"라고 해당 판결의 부당함을 알렸다.

    실제로 의료계 내부에서는 '맥페란'이라는 약품이 위장관 운동 조절, 소화불량, 구토 등의 소화기증상 개선제로 매우 흔히 사용되는 약물이라며, 평범한 약물 처방이 의사를 금고형에 처하게 한 것은 과도하다는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신경과의사회 윤웅용 회장은 "말도 안되는 판결"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물론 맥페란이 파킨슨병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파킨슨병 환자는 감기에 걸리거나 면역성이 떨어지거나 외부 요인으로 수술을 받았거나, 음식을 잘 못 먹어도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며 "그런데 맥페란 하나만 가지고 파킨슨병이 악화됐다고 판단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회장은 "악화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퇴행성 질환이라도 어느 기간에 도달하면 증상이 갑자기 악화되는 기간이 있다. 맥페란 때문에 파킨슨 병이 갑자기 악화됐다고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며 "해당 환자의 증상 악화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파킨슨병은 감기약, 소화제, 여러 수면제, 안정제 등도 파킨슨병 증상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번 판결 이후로 파킨슨병 환자에게 그런 약들도 전혀 쓸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며 "맥페란 한번 썼다고 파킨슨병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해당 판결에 당혹스러움을 전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이정용 회장은 "맥페란 주사는 파킨슨병이나 고령의 환자에게 사용 시 주의해야 할 약물인 것은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진료 시 의사의 재량에 따라 특정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약물을 부작용만 생각해 못 쓰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어떠한 경우 극약이라도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의사들의 환자 치료를 제한하는 판결로 다소 과도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최근 의대정원 증원 상황과 맞물리다보니 의료계에 공분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세승의 현두륜 대표변호사 역시 해당 사건이 '형사사건'임을 생각할 때, 맥페란을 환자의 증상 악화 원인으로 지목한 과정이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현 변호사는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형사 사건에서 과실이나 인과관계는 엄격하게 증명돼야 한다. 그리고 그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며 "80대로 고령인 환자가 치매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설명서에 '금기 사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과관계를 너무 쉽게 인정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형사 사건에서는 의사의 맥페란 처방과 파킨슨병 악화라는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엄격하게 입증돼야 한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인과관계가 엄격하게 증명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저 막연하게 해당 약을 투여한 이후 악화라는 결과가 발견했다고 해서 바로 인과관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형사 상의 입증 책임의 문제에서 지나치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A씨가 병력 청취를 소홀히 해 B씨가 파킨슨병이라는 사실을 간과했을지라도, 3분 진료라는 의료 현실에서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개인 페이스북에 "맥페란은 파킨슨 환자들이 복용을 피해야 하는 약물이다. 그런데 소화제를 처방하는 대한민국 모든 의료진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약을 처방할 때마다 모든 환자에게 처방 약물과 관련성을 가질 수 있는 모든 기저질환을 일일이 문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