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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두고 학계·산업계 시각차…“평가 약화 우려” vs “대상 확대 필요”

    학계 “속도보다 가치평가 구조 중요”…산업계 “기준 좁으면 환자 접근성 개선 제한적”

    기사입력시간 2026-05-28 07:29
    최종업데이트 2026-05-28 07:29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희귀질환 치료제의 허가 후 급여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을 100일 이내로 줄이는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학계와 산업계가 제도 설계 방향을 두고 엇갈린 시각을 드러냈다.

    학계는 신속등재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등 평가 내용이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산업계는 대상 기준이 지나치게 제한적일 경우 실제 환자 접근성 개선 효과가 낮을 수 있다며 보다 폭넓은 적용을 요구했다.

    27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신속등재 추진방향 공청회’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둘러싼 패널 토론이 진행됐다.

    학계 “속도 단축 필요하지만 평가 내용 축소는 안 돼”

    이날 경상국립대 약학대학 배은영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속도 단축을 이유로 평가 내용을 줄이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신속등재에는 찬성하지만 방법론은 달라져야 한다”며 “해외에서도 등재 기간을 줄이기 위해 허가와 급여평가 절차를 병행하거나 중복 절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효율화하지, 임상적 유용성이나 비용효과성 평가 자체를 약화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후에 비용효과성을 평가하겠다는 방침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급여 전 단계에서 어떤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언제 평가할 것인지 명확히 합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후평가 계획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등재가 이뤄지면 실제로는 평가 없이 급여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약가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배 교수는 A8 국가 조정 최저가의 90%를 기준으로 약가를 설정하는 방안에 대해 “겉으로는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해외 표시가격과 실제 보험당국 지불가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5년 동안 높은 약가를 보장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조민우 교수도 신속등재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약제의 가치 평가가 빠진 채 등재 속도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생명이나 기능 회복에 직결되는 환자에게 해외에서 효과가 확인된 약제를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효능과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됐는지,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사실상 임상시험을 대신하게 되는 구조는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신속등재 과정에서 경제성평가가 빠질 경우 약제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가치 부여가 자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경제성평가는 환자나 제약사에 부담을 주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건강보험이라는 공적 재원을 투입해 해당 의약품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불할 것인지 판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며 “신속등재가 단순히 빨리 급여를 적용하는 제도로 끝나지 않으려면 계약 단계에서 효능 자료뿐 아니라 실제 효과 자료까지 포함한 가치 평가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업계 “대상 기준 좁으면 환자 접근성 개선 효과 제한적”

    노바티스 정재호 전무는 학계의 우려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업계 관점에서는 제도 취지와 실제 운영 방안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무는 “2007년 선별등재제도 도입 이후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면제 등 여러 제도가 도입되면서 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율은 높아졌지만, 허가 이후 환자가 실제 급여로 약제를 사용하기까지는 여전히 17~20개월, 환자단체 자료 기준으로는 46개월까지 소요된다”고 말했다.

    그는 신속등재 제도 도입 배경이 환자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데 있다고 봤다. 다만 현재 제시된 대상 기준은 지나치게 제한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전무는 “현재 허가받는 제품 중 상당수가 희귀질환 치료제인데, 신속등재 대상은 기존 경제성평가 면제 규정을 사실상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한두 개 품목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으로 복지부가 생각한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A8 국가 중 일정 수 이상 등재돼야 한다는 요건도 신속등재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국내 허가 속도가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빨라진 상황에서 해외 등재를 기다리다 보면 오히려 국내 환자 접근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질환 위중도 판단 기준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전무는 희귀질환에서 위중도를 기대여명 중심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며, 어린 시절 진단 후 수십 년간 누워 지내며 호흡 훈련만 하고 있는 환자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기대여명이 12개월 또는 24개월 이하인 환자만 위중하다고 볼 수 있는지, 장기간 기능을 상실한 채 치료제가 없는 환자의 위중도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며 “대상 약제 범위와 위중도 기준을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접근성 개선 관점에서 업계와 학계가 함께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후 약가 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제약사의 제도 참여 유인이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전무는 최근 미국의 최혜국 대우 약가 정책 등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미국 시장 보호에 민감해진 상황에서, 매출 비중이 1% 미만인 한국 시장을 위해 추가 임상과 사후평가 부담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수행한 사후평가 결과가 기존 글로벌 임상 결과와 다르게 나오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로 번질 수 있다”며 “이런 구조라면 제약사가 해당 제도에 투자할 유인이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복지부가 기대한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 효과가 실제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환자단체 “제도보다 실제 치료 접근이 중요”

    환자단체는 제도 설계 과정에서 환자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정진향 사무총장은 “신속등재를 왜 하는가. 목적은 환자 치료 아니겠느냐”며 “오늘 발표된 내용에는 환자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총장은 복지부와 심평원 발표자료에서 ‘환자’라는 표현이 대부분 환자 수, 환자 단위, 환자 접근성이라는 관용적 표현에 그쳤다고 했다. 그는 “환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환자 치료 접근성의 획기적 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절차 개선, 급여기준 검토, 위원회 운영 어디에도 환자 현황 조사나 환자 목소리 청취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급여 등재 자체가 곧바로 실제 치료 접근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치료제가 급여돼도 연령 제한이나 재발 횟수 등 까다로운 급여기준 때문에 실제로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 사무총장은 “환자들은 새로운 제도나 좋은 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제를 원하고, 치료받기를 원한다”며 “환자 목소리를 듣고, 환자들이 얼마나 치료제를 원하는지 제도에 반영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부 “환자 접근성과 사후관리 함께 고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종봉 약제관리실장은 “희귀질환 혁신 신약은 대부분 초고가 약제인 만큼 급여 적정성 평가에 시간이 소요되고, 환자와 가족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도 무겁다”며 “기존의 순차적 절차를 병행화해 환자가 필요한 치료제를 최대한 빠르게 급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김 실장은 “단순히 빠른 등재만이 해법은 아니다”라며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급여가 이뤄지는 만큼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평가, 다른 필수의료 영역과의 보장성 균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강준혁 보험약제과장은 이날 공청회가 확정안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강 과장은 “환자의 접근성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은 모두 중요하지만, 재정 지속 가능성도 더 많은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결국 본질은 환자의 건강과 치료 접근성”이라며 “정책 자료와 제도 설계 과정에서 환자 관점이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신속등재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고, 제도의 방점은 사후관리에 있다”며 “시범사업에서 좋은 선례와 성과가 쌓여야 본사업으로 전환되고, 궁극적으로 희귀질환자의 치료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