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임상수련의 제도 도입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부 차원의 투자와 수련교육에 대한 평가∙인증 시스템이 구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임상수련의 제도는 기존 인턴 기간을 1년 더 늘리는 데 불과할 거라는 것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부터 의료계와 함께 운영해온 ‘전공의 수련 체계 개편 TF’에서는 인턴제를 폐지하는 대신 2년 과정의 임상수련의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정부안으로 세부적인 사항이 논의되거나 확정된 바가 전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TF에 참여하는 전문가들로부터 관련 제안이 나왔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인턴 제도 폐지할까…인턴 1년+전공의 3~4년→임상수련의 2년+전공의 2~3년
현재는 의대 졸업 후 의사국시에만 합격하면 인턴, 전공의 과정 등을 거치지 않더라도 단독 진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임상수련의 제도가 도입되면 의대를 졸업하더라도 임상수련의 2년 과정을 밟아야 개원을 통한 단독 진료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임상수련의 기간 동안 필수과에서 집중적으로 트레이닝 받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입장에선 임상수련의를 통해 현재 필수과 인력 공백을 일부 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인턴제 폐지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던 주장이다. 인턴은 교육을 해줄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병원 내 온갖 잡무만 떠맡은 채 1년을 허비하는 시기가 돼버렸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 9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50.8%)이 인턴 시기에 청소, 빨래 등 수련과 관련없는 업무를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 과정에 대해 안내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도 22.7%, 과별 획득역량에 대해 안내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도 49.6%에 달했다. 수련에서 해당 역량을 다룬다고 답한 비율은 50%에 불과했다.
근로조건 개선 없인 인턴 잡무맡는 기간 늘릴 뿐…전문의 수급 차질 우려도
하지만 의료계에선 ‘임상수련의 2년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강민구 정책자문위원은 근로조건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교육 내실화를 담보할 수 없고, 정부가 기대하는 필수과 인력 부족 문제를 풀어주지도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 위원은 “인턴 1년을 임상수련의 2년으로 단순히 늘리는 건 잡무나 허드렛일을 하는 기간만 더 늘리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 그 전에 근로시간 단축, 연속근무제한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근로조건 개선 없이 의대 6년, 임상수련의 2년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필수과를 선택하는 젊은의사들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인턴들이 맡은 잡무와 관련해 향후 업무 재분배를 통해 주치의나 진단∙처방 위주로 수련 과정을 전환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전문의를 포함한 의료인력의 추가 고용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배장환 교수는 "외국의 제도들을 섞어 놓은 것 같은데 정책 목적이 일차진료의를 늘리겠다는 건지 전문의를 양성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일차진료의 양성이 목적이라면 정부가 비용을 들여서 별도 트랙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 나온 방식은 자칫자칫 전문이 수급에 문제만 생길 수 있다. 임상수련의를 2년하고 나면 내과 2년차로 뽑으라는 건데 이들이 전공의를 안하겠다고 나가버리면 내과 TO는 어떻게 되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수련교육에 대한 정부 투자 필요…별도 평가인증 시스템도 마련해야
의학교육 전문가들은 수련 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와 별도 평가 인증 시스템 마련 없이 임상수련의 제도만 도입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대의대 안덕선 명예교수(전 셰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는 “지금처럼 병원이 전공의 교육비를 대고 전공의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형태가 아니라, 정부가 전공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병원에 ‘이렇게 교육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형태로 가야 한다”며 “교육에 대한 평가 인증도 강화해야 한다. 영국은 별도의 평가 인증 체제를 만들어서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하는 병원에는 아예 인증을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려 없이)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식으로 제도를 도입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며 “의대 들어오느라 재수하고 의대 들어온 뒤에도 낙제, 국시 탈락 등으로 재수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또 2년 임상수련의를 더해서 쓸데없는 트레이닝만 시키는 건 낭비형 의학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학교육학회 이영미 학술이사도 “임상수련의 2년제 도입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교육의 질이 담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병원들이 교육전담지도전문의를 뽑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의 ACGME(전공의교육평가원)와 같은 전공의 교육 담당 기구를 두고, 평가 인증을 받은 기관에서만 임상수련의 2년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면허 제도∙의대 교육 체계도 함께 검토 필요…의대생 실습 강화
수련교육 제도를 바꾸려면 현행 면허 제도, 의대교육 체계 변화도 함께 검토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 교수는 “현재 실기시험은 임상실습을 잘하기 위해서 만든 건데 그게 아니라 임상수련의 2년을 마치고 실제 단독개원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실기시험을 볼 수도 있다. 실기 교육이 의대에서 병원 쪽으로 가야 더 제대로 가르칠 것”이라며 “이 외에도 의대 5년후 필기시험을 통해 교육 면허를 주고, 이후에 인턴 과정으로 6~7학년을 마치면 단독 개원 면허를 주는 방식도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의대만 나오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한 건 과거에 의사가 부족하고 의학지식이 지금처럼 방대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라며 “정부가 의대정원을 확대해 의사 수를 늘리려는 상황에서 의학교육와 의료 질을 담보하려면 낙후된 현행 면허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인턴제 폐지에는 찬성하지만 그러려면 의대 6년 과정 중 마지막 2년간은 미국처럼 학생들을 병원에서 제대로 교육시키고 졸업 후엔 바로 레지던트로 가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위원도 “현행 의대교육이 효율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해외에는 의대 교육을 5년만 하는 곳들도 있는데 우리도 의대 교육 연한 단축 등을 포함해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