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 법안이 6월 국회를 넘지 못하고 7월 이후 계속 심사키로 결정되면서 의료계가 우선 한고비를 넘겼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 위원들은 수술실 설치 장소 등 세부 쟁점에 대한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관련기사=수술실 CCTV 설치법 국회서 발목…복지부는 수술실 입구에서 내부 설치로 입장 변경>
그러나 의료계 입장에서 향후 수술실 CCTV설치법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안심사 과정에서 정부와 보건복지위가 기존 CCTV의 수술실 출입구 설치 입장을 철회하고 수술실 내부 설치를 기본 전제로 대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CCTV의 수술실 내부 설치를 기본 골자로 하는 대신 정당한 사유가 있을 시 의료인의 촬영거부가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열람조건을 제한하고 CCTV 설치 관련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도 제시됐지만 의료계의 분위기는 밝지 않다.
대한의사협회 김종민 보험이사는 "의료계는 CCTV 설치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만 법안 통과가 강행된다면 마지노선은 CCTV의 출입구 설치가 될 것"이라며 "수술실 내부에 CCTV가 설치되면 필수진료과 붕괴와 외과의사들의 방어수술 등 부작용은 기정 사실화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수술실 CCTV설치법에 대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복지부는 방어수술 등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해 출입구 설치안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인천과 광주 등 척추전문병원에서 대리수술 의혹이 붉어지면서 수술실 내부 CCTV설치를 주장하는 환자단체 주장에 힘이 실렸고 이에 따라 CCTV설치 찬성 여론이 대폭 확산된 점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환자단체 주최로 인천 21세기병원 입원 환자가 자신의 대리수술 경험을 폭로하는 등 관련 환자들의 주장이 담긴 보도가 집중 조명됐다. 또한 이와 관련해 텔레비전(TV)과 라디오 방송 토론회 등 굵직한 공론의 장이 지속적으로 마련되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여당 측에서 수술실 CCTV설치법을 두고 "반드시 통과돼야 할 민생법안"으로 거론하며 적극적으로 법안 추진에 힘을 쏟았던 점도 복지부를 움직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우리 당은 이번에야 말로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큰 결심을 하고 당 차원에서 의료계와 복지부를 설득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복지부 내부에서 민주당의 압박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앞서 수술실 CCTV설치법은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재명 도지사의 핵심 공약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최근엔 여당의 핵심 민생법안으로 불린다.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 현장을 직접 찾아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는 등 법안 통과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외과계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계 관계자는 “연달아 터진 대리수술 의혹 보도와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복지부도 출입구 내부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법안심사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13일까지 진행한 수술실 CCTV 설치 관련 설문조사 결과도 향후 논의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관건이다.
이번 설문조사에 굉장히 많은 인원이 참여한 만큼 찬성 측 여론이 기존 조사보다 높게 도출될 경우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문조사는 이번 주 내에 발표될 예정으로 설문 참가자는 1만 3959명에 달한다.
앞서 리얼미터에서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찬성 측 응답이 78.9%였고 한국사회연론연구소(KSOI)가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1%가 CCTV설치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권익위 관계자는 "타 설문조사에 비해 수술실 CCTV 설치법 관련 조사에 굉장히 많은 인원이 몰려 답변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결과 발표 기간은 이번 주로 계획된 상태"라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찬성 측 국민적 여론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수술실 출입관리 강화로 충분히 대리수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며 “의협의 새 집행부가 들어오면서 적극적인 대화 기조가 진행되고 있는데 정부, 국회 등과 논의의 기회가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용대비 효과가 있는지 여부와 영상 유출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 여당 의원들과 복지부 모두 추후 논의하자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출입구 설치라는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큰 예산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