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법적 근거를 갖추고 출범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독립성, 임상 대표성, 기초자료, 논의 시간이 모두 부족해 추계 결과의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위원회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구조로 운영되면서 독립성에 한계가 있었고, 위원 구성에서도 실제 임상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의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비판이다. 의료이용량 중심의 기존 추계 방식만으로는 실제 의사 업무량과 미래 의료환경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대한의학회는 12일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 플렌티컨벤션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바람직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방안 모색’을 주제로 패널토의를 진행했다.
“의사인력 추계위, 독립성·임상 대표성·자료 한계”
문석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법적 근거를 갖추고 출범했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독립성·전문성·자료 접근성·논의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 부원장은 “수급추계위원회가 만들어질 때 의협은 독립성과 전문성, 자율성 확보를 요구했다”며 “독립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계속 말했지만 결국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수급추계센터 수탁기관으로 선정된 구조 역시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봤다.
위원 구성의 임상 대표성 부족도 문제로 꼽았다. 문 부원장은 “일본이나 네덜란드 등은 임상 의사들이 3분의 2 이상 참여해 실제 임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지만, 우리나라는 15명 중 임상을 하는 교수는 저 혼자였다”고 밝혔다. 그는 위원회 회의에서 “14대 1로 싸우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문 부원장은 위원 자격 요건에서도 임상 의학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안에는 경제학, 보건학, 통계학, 인구학이라고 명시돼 있고 의학은 없다”며 “임상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위원 추천이 굉장히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운영 과정도 촉박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2주 단위로 계속 회의를 했고, 회의 자료를 전날 저녁이나 당일 아침에 받는 상황도 있었다”며 “위원들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이 들어가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12차 회의 때 꼭 결론을 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며 “결론을 내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 형태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추계의 기초자료와 방법론에도 한계가 있었다고 봤다. 문 부원장은 “수급추계위원회에 들어가면 수많은 자료를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제가 구한 자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며 “기초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기존 논문들과 지금 추계가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비·의료이용량 중심 추계만으로는 실제 의사 업무량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진료비 기준으로 업무량을 산정하면 MRI, CT 등 고가 장비 비용이 포함되면서 실제 의사 업무량이 과다 추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부원장은 실제 업무량을 반영하려면 FTE, 즉 풀타임 환산 근무량 산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며, 현재는 자료와 준비 기간 모두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AI, PA 제도, 비대면 진료, 요양병원 구조조정, 통합돌봄 등 미래 의료환경과 정책 변화도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문 부원장은 “정부가 우리나라 의료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 것인지 비전을 먼저 제시해야 그에 맞춰 추계가 가능하다”며 “이번 추계는 너무 성급하게 진행됐다. 다음 추계는 더 짧은 주기로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은 ‘숫자’보다 합의 구조 중시…“한국도 거버넌스 전환 필요”
노준수 아주의대 교수는 주요국 의사인력 수급추계 정책을 비교하며, 의사인력 추계는 단순히 필요한 의사 수를 산출하는 작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규모를 합의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과연 사회에 의사가 몇 명 필요한가를 딱 한 가지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느냐. 사실 그렇지 않다”며 “의사가 몇 명 필요한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모는 몇 명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 사례를 소개하며 각국의 추계 거버넌스가 의료제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중앙정부가 의사 총량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GME 등 수련 재정 지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절하고,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의료계획의 큰 틀을 먼저 세운 뒤 필요한 의사 수를 산정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네덜란드는 독립 비영리기구가 의사인력 추계와 공청회를 담당하고, 정부가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의회에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노 교수는 네덜란드가 50여개 변수와 시뮬레이션 모델을 활용하고, 데이터 수집에만 2년가량을 투입하며, 3년 주기로 자료와 모델을 업데이트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복지부 장관 소속 심의기구로 설치돼 있고, 추계 결과를 존중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정부가 이를 어떤 기준으로 반영하거나 수정·거부할지 설명하는 구조는 약하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한국은 이번 운영에서 합의를 도출한다는 의미보다는 빨리 결론을 내놓으라는 기능이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기계적으로 도출된 숫자 그 자체는 충분하지 않다. 숫자를 검증하는 절차적 투명성, 이해관계자가 인정할 수 있는 합의 과정, 이를 실현할 재정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 좋은 거버넌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필수의료 추계는 총량보다 ‘지역별 불균형’ 반영해야
강태욱 성신여대 교수는 일본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필수의료 의사수급 추계에서 고려해야 할 쟁점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의사인력 추계가 전국 단위 총량 산출에 머물 경우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격차와 필수의료 분야의 공급 부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일본이 지역의료구상과 의사확보계획을 연계해 지역별 의료수요와 공급 상황을 분석하고, 의사소수지역·의사다수지역을 구분해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강 교수는 지역필수의료 의사추계가 단순히 전체 의사 수를 늘릴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지역에 어떤 진료과 의사가 필요한지,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역별 의료수요 분석, 의사 확보 정책, 수련·근무 여건 개선, 재정 지원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패널토의서도 “방법론 정교화·정부 책임·소통 구조 필요” 지적
패널토의에서도 의사인력 수급추계가 사회적 수용성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데이터, 방법론 검증, 정부와 의료계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재훈 고려의대 교수는 지난해 수급추계 과정의 방법론적 한계를 지적했다. 정 교수는 “작년에 수급추계 결과가 논문으로 들어왔다면 데스크 리젝됐을 것 같다”며 “정책적 요소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방법론적으로는 더 정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부를 향해서도 “정부가 정책적 발표를 너무 과격하게 했기 때문에 수급추계위원회는 수습을 하고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정해진 결론에 다가가기 위한 논의 과정처럼 전문가를 활용하면 다음에는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창수 연세의대 교수는 정부 주도의 보건의료체계에서 의사인력 추계에 필요한 대규모 자료와 변수를 확보하려면 정부와 의료계의 공동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의료계를 협상의 대상이자 카운터파트로 생각한다면 공동 연구과제를 도출하고 자료를 확보하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추계위원회가 단순 숫자 산출을 넘어 교육 현실, 의료 질, 인증평가 결과 등을 통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정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추계 결과가 센터 단독이 아니라 위원들과 함께 논의한 결과라고 설명하면서도, 향후 더 긴 시간을 두고 자료를 축적하고 공동 연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신 연구위원은 “오늘 이 자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소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전문과목별 현황을 점검하고 26개 전문학회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