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료보험이란?
보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동질(同質)의 경제상의 위험에 놓여 있는 다수인이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여, 미리 통계적 기초에 의해 산출한 일정한 금액(보험료)을 내어 일정한 공동자금(기금)을 만들고 현실적으로 우연한 사고(보험사고)를 입은 사람에게 이 공동자금에서 일정한 금액(보험금)을 지급하여 경제생활의 불안에 대비하는 제도’
따라서 의료보험은 질병이나 상해 등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질병과 상해로 인해 경제적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국민들에게 의료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이를 이용해서 질병 및 상해로 인한 경제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의료보험은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운영 주체에 따라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보험과 민간 보험사가 운영하는 사보험으로 나눌 수 있고, 운영 주체의 수에 따라 단일보험자 체계와 다보험자 체계로도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헌법은 ‘사회보장’에 관해서 ‘출산, 양육, 실업, 노령, 장애, 질병, 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보험의 항목에 건강보험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은 건강보험이라는 단일공보험 체계를 갖추어 전체 국민들의 건강보험 강제가입과 전체 요양기관들의 건강보험 강제지정을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그리고 민간 보험사가 운영하는 사보험은 실손보험 등의 형태로 건강보험의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2. 한국 의료보험의 역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는 제대로 된 의료보험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1963년 12월 의료보험법이 제정되면서 이후부터 국민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1970년대까지 우리 국민들의 소득 수준은 의료보험 가입에 관심을 가질 만큼 높지 않았다. 강제가 아닌 본인의 선택에 따른 임의 가입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낮은 대다수 국민들의 의료보험 가입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1976년 12월 의료 보험법 개정을 통해 강제 가입 조항이 추가됐고, 이로 인해 1977년 7월부터 500인 이상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 대해 직장인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지금의 건강보험의 형태와 같은 의료보험 제도가 시작됐다.
이후 공무원과 교원에 대한 의료보험도 출범했고, 직장인 의료보험 당연 가입의 기준도 500인 이상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서 점점 범위가 늘어나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실시되기 직전인 1988년에는 5인 이상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1989년 7월 1일 다른 보호 대상자를 뺀 전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제도가 실시됐다. 이 시기까지는 공무원과 교원은 별도의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1998년에는 227개 지역 의료보험 조합과 공무원 및 교원 의료보험 관리 공단을 통합해 국민 의료보험 관리 공단을 설립하고 직장 의료보험 조합들은 140개로 통합했으며, 2000년에 비로소 국민 의료보험과 직장 의료보험을 통합해 국민건강보험을 출범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 주도의 공보험 제도가 만들어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1960~70년대에 오히려 민간에서는 조금씩 의료보험 가입에 대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부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이었다.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은 미국 텍사스주에서 일어난 청십자 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것으로, 1968년 부산에서 성산 장기려 박사와 부산 지역 교회가 중심이 돼 설립됐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기 전까지 약 23만 명의 회원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컸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은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가 만들어지는데 많은 영향을 줬으나, 반대로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가 왜곡되는 데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 또한 제공했다.
당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의 설립 목적은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고, 조합원 서로가 돕는 정신을 가지며, 질병과 경제적 부담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가득 찬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다. 따라서 조합원들에게 받는 조합비는 매우 저렴하였고, 조합비만으로는 조합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워 교회와 사회단체의 기부금까지 보태어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조합의 재정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 수가는 매우 낮을 수 밖에 없었고, 의사의 진찰이나 술기에 대한 대가는 수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재료대의 원가 정도로만 수가를 책정해 운영했다. 그리고 당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가입자를 진료했던 의사들은 장기려 박사의 영향을 받아 거의 봉사 수준으로 진료에 임했기에 낮은 수가로도 조합이 운영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수가를 정할 때, 당시 정부가 관행 수가에 한참 못 미치는 바로 이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의 수가를 기준으로 수가를 정해버린 것이었다. 대한민국 의료 왜곡의 핵심 원인인 저수가 체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의료보험 체계가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대를 거치며 완성됐기에 강압적으로 저수가와 강제지정체제를 만들 수 있었고, 의료계는 이렇다 할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의료계는 이러한 강압에 저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진료량을 늘리는 등 다른 방향으로 살길을 모색해나갔고, 이것이 이후 3분 진료로 대변되는 박리다매식 진료, CT 및 MRI 촬영 남발 등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진료 행태 관련 문제점들을 파생시켰다.
1970년대에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논의를 시작할 시기에는 지금과 같은 강압적인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는 1970년대 초 국민 의료보험 도입을 위해 만들어졌던 ‘보건의료발전 연구회’(전직 보건사회부 장관·도지사·의사 출신 여당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의 기본 건의 사항의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보건의료발전 연구회는 아래의 4가지 건의 사항을 제시했다.
첫째, 원칙적으로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둘째,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개선에 따라 각 계층별로 점진적으로 적용 인구를 확대해 나간다.
셋째, 취약한 병원시설(특히 지방의 시립 및 도립병원)에 투자를 증대해 의료보험 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현대화해 나간다.
넷째, 의료보험 수가 결정은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각계각층과 협의해서 조정해 나간다.
둘째,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개선에 따라 각 계층별로 점진적으로 적용 인구를 확대해 나간다.
셋째, 취약한 병원시설(특히 지방의 시립 및 도립병원)에 투자를 증대해 의료보험 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현대화해 나간다.
넷째, 의료보험 수가 결정은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각계각층과 협의해서 조정해 나간다.
결국 1970년대에 제시됐던 보건의료발전 연구회의 4가지 건의 사항은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는 시장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경제 상황의 고려 없이 급격하게 도입되고 대상자가 확대됐으며, 공공의료기관들은 여전히 낙후돼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투자에 소홀해 왔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의료보험 수가 결정은 온전히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으며, 애초에 초저수가로 설정된 의료 수가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발생한 물가 상승률만큼도 수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와 의료 시스템이 왜곡되고,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최초 의료보험을 설계할 당시에 전문가들이 제시했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