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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10대 사망사건 "변한 게 없다...또 병원 탓, 또 의료진 탓"

    필수의료 의사 병원 떠나니 응급실로 온 환자 치료 불가능…"의사 붙잡을 방안 없인 회생 불가"

    기사입력시간 2023-03-31 07:08
    최종업데이트 2023-04-05 10:2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대구의 한 건물에서 10대 청소년이 떨어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의사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입원을 거절당해 사고 2시간 만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보건복지부는 대구광역시와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대구 10대 청소년 미수용 사망 사건과 관련해 환자의 119 이송에서 응급의료기관 선정, 환자 수용 거부 및 전원, 진료까지 전 과정에서 부적절한 대응과 법령 위반 사항이 있었는지를 살펴본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찰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업무상 과실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는 사실상 응급 상황에 있는 10대 청소년을 수용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다. 이에 의료계는 2011년 대구 장중첩 소아 사망 사건 등을 떠올리며 10년 전과 변한 게 없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경찰, 복지부 의료기관 조사 등 책임 소재 찾기…대구 사건 때도 전문의 2명에 책임 물어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달 19일 오후 2시 15분. 대구 북구 대현동 골목길에서 4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우측 발목과 왼쪽 머리를 다친 A양(17)이 발견됐다. A양은 신고 후 2시 34분쯤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차를 타고 대구 동구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전문의가 없어 입원하지 못했다. 이에 A양은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다.

    하지만 경북대병원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권역외상센터는 이미 응급환자가 많아 환자를 수용할 여력이 없었다. 이후 A양을 실은 구급대가 대구 시내 병원 2곳을 더 방문했으나 A양은 병실을 찾지 못했고, A양은 오후 4시 30분쯤 달서구 한 종합병원으로 인계되는 과정에서 심정지가 와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평일 낮 시간 대구 한복판에서 외상을 입은 10대 청소년이 2시간 동안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A양을 치료하지 못한 의료기관과 의료진에게 향하고 있다. 이에 대구 북부경찰서는 병원 관계자 등을 상대로 업무상 과실은 없었는지 조사에 나섰고, 복지부도 책임 소재를 찾기 위해 대구시와 공동조사단을 꾸려 파견했다.

    대구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일명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해 논란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11월 21일 복통을 호소하던 4세 여아가 응급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응급실을 전전하다 끝내 숨을 거둔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해당 4세 여아 역시 경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내원해 장중첩이라는 소견을 들었으나 병원이 파업중이라 의료인력이 부족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 됐다. 이후 대구 시내 대학병원 2곳에 연락을 취했으나 모두 거절당했고 증상 발현 4시간 만에 경북 구미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으나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복지부는 해당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통해 그에 상응하는 조치와 처벌을 하기로 결정하고 경북대병원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취소를, 당시 응급실에 있던 소아청소년과와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2명에게는 진료 거부에 대한 14일의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위험 부담 크고 고된 근무에 보상은 없어, 필수의료 떠나는 의사들…"수술할 의사가 없다"

    2011년 장중첩 사건으로 의료기관과 일부 의료진이 처벌을 받고, 유사한 사건을 막기 위한 각종 응급의료 대책과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나왔지만 12년이 지난 2023년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의료계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평가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김호중 교수는 "응급실은 지난해 11월부터 날마다 전쟁이다.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우리 병원만 해도 전원을 받아 달라는 전화를 하루에 수십 통 받고 있다. 그런데 환자를 받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필수의료과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 때는 응급환자가 줄어서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필수의료과 의사들이 보상이 많고, 업무 부담이 적은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응급실에 온 환자 중 응급의학과가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는 50%다. 나머지 50%는 응급의학과가 응급처치를 한 뒤 전담 과에서 응급 수술 등으로 해결을 해줘야 하는 환자들이다. 중증 응급환자를 받고 싶어도 관련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과 전문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과는 3년제로 바뀐 뒤 전공의들이 응급실 근무를 안 하려 한다. 소아과는 이번 폐과 선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아예 전공의들이 지원조차 안 한다. 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내외산소 필수의료과가 사실상 망한 상태다 보니 응급의학과가 볼 수 없는 50%의 환자들을 볼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병원에서 쓰러졌을 때도 병원에는 다양한 진료과의 의사들이 많았지만 정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의 뇌 수술을 할 필수의료 관련 의사는 없었다.

    김 교수는 "힘들게 근무해도 돌아오는 게 없으니 다 나가버린다. 성형외과처럼 비급여로 하는 다한증, 정맥류 수술을 하면 대학병원 월급의 배를 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책임감 때문에 참고 있지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며 "환자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사건이 터지니 그 것만 무마하기 위해 처벌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단순히 한 지역의 병원, 응급의료센터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누군가의 잘못일 수도 없다. 총체적인 응급의료 시스템과 중증환자 관리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다"라며 "생사와 직결된 필수의료 의사들을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대책이 없이는 해결 할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경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사진=경북대병원

    '환자 수용 거부한 나쁜 병원' 낙인찍는 정부·사회…"적절한 보상밖에 답 없어"

    대구 장중첩 사건 당시 대구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용인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유사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유족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나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1년 장중첩 사건 때도 의료기관과 의료진을 희생양으로 삼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건이 넘어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고 싶지 않아서 치료를 거부한 것은 절대 아님에도 사회와 정부는 또 의료기관, 의사 탓을 하고 있다"라며 "여전히 왜 응급실이 환자를 받을 수 없는지 그 근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역시 30일 성명서를 통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수술 인력에 여유가 있고, 병상에 여유가 있었다면 환자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므로, 환자 수용을 거부한 병원들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들은 해당 병원들의 업무상 과실 여부를 수사하여 처벌하려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결국 비극적인 이번 사건은 무너져가는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동안 대학병원에만 몰아주기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원 대책과 지원금 뿌리기 정책 같은 미봉책으로만 일관해 오면서 지역사회 내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것이 이번 사건의 원인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경원 교수도 이에 동조하며 "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폐과를 선언했다. 충분히 심정을 이해한다. 다른 필수의료과 의사들도 과도하고 위험한 업무,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보상, 환자를 치료하면 오히려 찾아오는 소송 등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 대다수는 이미 필수의료 과를 떠났고, 극히 일부만 남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미 30대 젊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형편없는 응급실 상황에 질려 개원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20년을 응급실에 있던 교수들이 전공의 대신 밤을 새고 지키고 있었다.

    이 교수는 "결국은 고된 근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밖에 답이 없다. 필수의료,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의사들은 책임감, 사명감이 있는 의사다. 그런데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근무환경과 보상인 현실을 개선하는 게 제일 급선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