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부산에서 50대 급성 심혈관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응급실 뺑뺑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의료계가 반박에 나섰다.
현장 의료진까지 등판해 해당 환자가 정상적으로 응급 수술이 진행됐다고 사실을 설명하고 나선 가운데 응급의학회는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언론보도가 현장 의료진의 사기를 꺾고 있다고 유감을 표했다.
급성 대동맥박리 환자, 진단 후 3시간 30분만에 응급 수술이 '응급실 뺑뺑이'?
지난 11일 다수의 언론이 부산에 사는 A씨의 사망 사건이 '응급실 뺑뺑이'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부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6일 오전 6시 13분께 자택 주차장에서 호흡 곤란이 발생해 119에 신고했고, 6시 20분 현장에 도착한 소방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급대원은 A씨가 등과 가슴 통증을 함께 호소하자 심혈관계 질환을 의심했고, A씨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물색했으나 4곳의 대학병원을 포함해 부산 내 15곳의 병원에서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A씨는 오전 6시 59분께 부산 수영구의 B병원으로 옮겨졌고, 해당 병원 의료진은 A씨를 '급성 대동맥박리'로 진단해 부산의 C 대학병원과 울산의 D 종합병원에 전원을 요청했다.
A씨는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C대학병원이 수술 불가 통보를 하면서 B병원으로부터 56km 떨어진 울산의 D 종합병원으로 오전 10시 30분경 옮겨졌다.
A씨는 해당 병원에서 10시간 동안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으나 A씨는 지난 1일 오후 8시 30분께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가족들은 A씨가 평소에 건강했다는 점을 들며, 이번 사건이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소생 가능성이 높았던 A씨가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억울한 죽음의 정황을 밝혀달라는 민원까지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최초 진단 병원인 B병원으로 이송되는 데 걸린 시간은 39분이었고, B병원에서 실제 수술이 진행된 울산 D 종합병원까지 이송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시간 30분이었다.
진단부터 수술까지 심각한 지연이라 보기 어려워…"흉부외과는 이미 전공의 없어"
응급 대동맥박리 환자였던 A씨가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으로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사망했다는 언론보도가 일파만파 퍼지자 의료계는 반박에 나섰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유가족의 안타까운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망하거나 전공의 사직 사태와 관련해 지연이 발생한 것도 아니며, 소위 '응급실 뺑뺑이'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응급의학회 이경원 공보이사는 "119구급대원이 현장에서 환자 평가를 통해 중증도를 판단하고 분류해 해당 환자를 적절히 진료할 수 있는 응급의료기관을 연락하고 선정하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며 "119구급대의 출동, 이송 시간까지 고려하면, 119신고 후 병원 도착까지 46분이 걸린 것을 두고 환자 안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심각한 지연이 있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공보이사는 "119구급대가 현장 평가를 통해 심혈관계 응급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는 종합병원으로 이송 병원 선정도 적절했다"며 "해당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적절한 진료를 통해 대동맥 박리증을 진단했으며, 대동맥 박리증 진단을 놓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동맥 박리 수술은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응급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 대동맥 박리 수술을 특화해 시행하는 병원이 수도권에 있기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흉부외과는 전공의가 이미 20여년째 지원이 적어, 전국적으로도 숫자도 많지 않다"며 "즉, 흉부외과는 전공의에 의존해 진료하거나 수술하지 않은 지 이미 꽤 오래 됐다. 따라서 대동맥 박리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것은 이번 전공의 사직 사태와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공보이사는 "B병원은 대동맥 박리증 진단에 따라 A씨를 정상적으로 전원했고, 전원받은 병원은 적시에 응급 수술을 시행했다. 따라서 수술이 늦어졌다는 것도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라며 "A씨는 수술 후 의식도 회복했으나 대략 술후 6일 이후 중환자실 입원 중 안타깝게도 다발성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고 이야기했다.
골든 타임 내 수술 시작한 환자, 수술 후 의식도 돌아왔지만…다발성 장기기능 부전으로 사망
실제로 울산 D 종합병원에서 A씨의 수술을 집도한 E씨는 SNS를 통해 "(A씨는) 대동맥 근부와 관상동맥을 침범한 급성 대동맥 박리증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설명하고 수술을 시작했다"며 "상행 대동맥 근부와 대동맥궁 인조혈관 치환술을 시행했고 수술 자체는 걱정과 달리 무난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E씨는 "하지만 대동맥을 연결한 후 대동맥 겸자를 푼 후에 심장 기능이 원활하게 회복 되지 않았다. 박리가 대동맥 근부까지 진행된 상황임을 술전 CT로 확인한 상황이라 좌주관상동맥의 내막 파열 혹은 동적 장애물(dynamic obstruction)로 인한 관상동맥의 순환장애가 발생했다고 판단됐다"며 2차 수술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E씨는 "이후 환자는 의식이 깨고 심장 기능이 조금 호전을 보이는 등 차도가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심장 기능 부전에 의한 다발성 장기기능 부전으로 사망했다. 수술 후 8일간 에크모(ECMO)를 유지했으며 7일째까지 의식이 있었다. 심장 이식 등의 더욱 적극적인 치료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수술 후 신부전 및 수술 수일 후 부터는 범혈구감소증(pancytopenia) 등의 다발성 장기 기능 부전 소견이 보여 심장 이식 등 더욱 적극적인 치료는 무리일 것이라 판단했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에서 A씨가 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사망했다고 보도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E씨는 "대동맥 박리증이라는 질환이 응급 수술을 요하지만 최소 5시간 이상의 수술 시간이 필요한 수술로 최대한 빨리 수술하는 것이 원칙이다. 부산에서 진단 후 우리 병원에서 수술 시작까지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골든 타임 내 수술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동맥박리는 50% 이상이 현장에서 바로 사망할 수 있는 질환이며, 수술 사망률도 2~30%까지 보고되는 매우 위험도가 높은 수술이다.
그는 "기사에서는 수술이 늦어서 심장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나와있지만 저는 환자 보호자에게 관상동맥의 파열이 의심돼 다시 심장을 멈춰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수술 중 보호자를 수술실로 불러 다시 한번 설명했다"고 정정했다.
E씨는 "제가 능력이 모자라 결론적으로 환자를 살리지 못한 죄인이 됐지만 모든 심장 수술을 하고 대동맥 수술이 가능한 흉부외과 의사들은 최대한 많은 환자를 살리고 수술도 받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 부족한 능력 탓에 열심히 일하시는 흉부외과 의사들과 다른 모든 의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수술을 받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일을 절대로 막기 위해서 타 지역의 심정지 환자, 대동맥 파열 환자들을 의뢰 받아 환자가 사망하기고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수술을 못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것 또한 흉부외과 의사의 숙명이라도 생각하고 지내고 있었으나 이렇게 기사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처럼 응급환자, 중환자 치료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호소했다.
응급의학회는 사실과 다른 왜곡 보도에 우려를 표하며 "지역에서 응급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 시간에도 애쓰고 있는 119구급대원들과 최선을 다한 의료진들의 사기를 꺾고, 더욱 소극적으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이러한 언론 보도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최소한의 의학적 사실 확인을 통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불신을 하게 만드는 이러한 보도는 정말 자제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