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최근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119법) 개정 이후 간호사 구급대원의 응급처치 업무범위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소방청은 병원 전 단계 응급처치 역량 강화를 위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와 응급구조학계, 현장 구급대원 등은 기관내삽관 등 고위험 처치를 단기 교육만으로 허용하는 것은 환자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8일 국회에서 열린 '병원 전 응급의료 환자안전 강화를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직역 간 업무범위 논쟁보다 어떤 교육과 검증, 질 관리 체계 아래에서 응급처치가 이뤄질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논란은 119법 개정 이후 소방청이 간호사 구급대원의 응급처치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개정 법률은 소방청장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해 구급대원의 자격별 응급처치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응급구조사단체와 의료계는 응급구조사 자격체계와 병원 전 응급의료 전문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기관내삽관 등 전문 기도관리 술기 허용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위험 응급처치 확대보다 검증 체계 먼저…"환자안전이 우선"
이날 발제에 나선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119법 시행령 개정 논란의 본질은 업무범위 확대 자체가 아니라 환자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검증·관리 체계 구축 여부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병원 전 단계 응급의료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시스템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법 개정의 목적 역시 환자 생명 보호에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개정 방향이 환자 생명보다 행정 편의에 가까워 보인다고 우려했다.
특히 개정안에 포함된 '소방청장이 복지부 장관과 협의해 처치 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조항과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예외 규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회장은 "협의라는 단어는 반대해도 협의하면 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며 "환자 생명을 다루는 업무범위는 단순한 협의가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책임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법에서 면허 범위를 정해둔 이유는 면허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법을 우회하면서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정말 환자 생명과 치료 결과 향상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관내삽관 등 전문 기도관리 술기에 대해서는 단순히 허용 여부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교육과 검증 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 일본 사례를 언급하며 "어떤 술기든 100% 성공하는 경우는 없으며 실패했을 때의 책임과 대안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결국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술단체 주도의 근거 마련과 표준화된 교육·실습 체계 구축, 고위험 술기별 별도 인증제 도입, 현장 처치 결과에 대한 평가·피드백 시스템 구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중환자실 등에 구급대원을 파견해 실제 임상 환경에서 충분한 실습 경험을 쌓도록 하는 '임상실습 파견제'와 대한응급의학회 등 전문학회가 고위험 술기 수행 역량을 평가해 별도의 특수면허(credentialing)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현장 응급처치에 대한 전수 데이터 분석과 정기적인 피드백 체계를 구축해 처치 결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응급구조사는 다발성 중증외상 환자 구조와 척추 고정, 현장 응급처치 등 병원 전 중증환자 처치에 집중하고, 간호사 구급대원은 이송 과정에서의 지속 관찰과 의료진 연계 역할을 담당하는 등 직역별 전문성을 살리는 방향의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관내삽관은 단순 술기 아냐…복지부 '행위별 검토' 필요성 공감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전문가들은 기관내삽관을 단순 기술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법제위원회 정우석 간사는 기관내삽관은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는 대표적 응급처치인 동시에 기도손상, 흡인성 폐렴, 식도삽관, 저산소증 등 심각한 합병증 위험을 동반하는 고위험 술기라고 설명했다.
정 간사는 "기관내삽관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환자를 살리는 기술"이라며 "삽관 전 평가, 적응증 판단, 실패 시 대체 기도 확보, 삽관 후 감시까지 모두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응급구조학과 양현모 교수도 단기 교육만으로 병원 전 응급의료 전문성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마네킨에 튜브를 넣는 술기는 단기 교육으로도 가능할 수 있지만 실제 응급현장에서 처치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은 정규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며 "병원 전 응급의료는 수년간의 교육과 훈련을 거쳐 형성되는 전문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행령 개정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 환자안전을 향하고 있는가"라며 "정규 교육을 통해 양성된 전문 인력이 책임 있게 처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현장 구급대원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소방공무원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간호사 구급대원들 역시 배우지 않은 술기를 수행해야 한다면 상당한 부담과 법적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며 "보건의료 분야에서 교육과 검증 없이 먼저 업무범위를 넓혀놓고 이후 교육을 하는 사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1급 응급구조사와 간호사 업무범위를 논할 수준이라기보다 인력 부족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업무범위 확대에 앞서 과학적 검증과 현장 의견 수렴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재난의료정책과 임아람 과장은 2024년 소방청이 입법예고했던 시행령 개정안의 논의 경과를 설명하며, 현재는 간호사 구급대원 업무범위를 포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아닌 개별 행위별로 검토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임 과장은 "당시 소방청이 간호사 구급대원의 업무범위를 1급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와 동일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안을 입법예고했는데, 복지부는 이에 반대했다"며 "이후 논의 과정에서 행위별로 검토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접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소방청에서도 다소 무리한 입법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별 행위별로 검토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관내삽관에 대해서는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나 응급분만 시 탯줄 결찰·절단 등은 특별구급대 시범사업을 거쳐 업무범위에 포함됐지만 기관내삽관은 검증과 데이터 축적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다른 업무범위보다 더욱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병원 전 단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응급환자 분류와 처치, 이송 이후 결과까지 연결해 평가할 수 있는 체계와 정보 공유 시스템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전문성의 가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전문성과 전문성의 증진을 지지하는가를 본질적으로 물어야 한다"며 "이는 내가 이 학문과 술기를 배울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성이 느슨해지면 어디까지 느슨해질지 알 수 없다"며 "학문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돈, 젊음과 열정을 바친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정부와 국가, 국회는 전문성의 증진을 응원함으로써 더 좋은 내일을 만들고, 결국 환자를 더 잘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단체 "직역보다 환자안전 우선…사회적 논의 필요"
환자단체 역시 직역 간 이해관계보다 환자안전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김성주 대표는 "환자 입장에서는 무면허 의료행위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명과 치료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먼저 시행한 뒤 데이터를 쌓겠다는 접근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급차 안에서 고위험 처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보건의료인의 업무범위는 정규 교육과 임상실습, 국가시험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전문간호사 진료지원 업무범위 논의 과정에서도 기도삽관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1급 응급구조사는 "응급환자는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응급환자"라며 "국가는 왜 이러한 전문 인력을 양성했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