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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만 인프라 구축 위해 도입한 '공공정책수가'…특별·광역시 분만병원부터 위기 찾아온다

    분만 건수마다 55만원 보상하는 '지역수가', 특별·광역시 제외…"정부 탁상공론"에 한숨

    기사입력시간 2024-01-26 07:31
    최종업데이트 2024-01-26 07:3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지역사회 분만 인프라 유지를 위해 마련된 공공정책수가가 특별·광역시 분만병원은 제외되면서 분만 건수가 적은 특별·광역시를 중심으로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으로 전국적으로 분만 건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특별·광역시'라는 이유로 지역수가를 지원을 받지 못하는 특별·광역시 분만병원들이 24시간 분만실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역사회 분만 기반 유지를 위해 연간 26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개선한 분만수가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분만 건당 55만원 추가 보상하는 '지역수가'…특별‧광역시 제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따른 분만수가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복지부는 저출산으로 인한 분만 건수 감소와 의료분쟁에 대한 책임부담으로 분만진료를 기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과 기관 단위로 공공정책수가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인 '안전정책수가'는 의료사고 예방 등을 위한 안전한 분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근하고, 분만실을 보유하고 있는 의료기관에 대해 분만 건당 55만 원을 보상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와 별도로 지역 여건에 따른 의료자원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수가'를 도입해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전 지역의 의료기관에 분만 건당 55만 원을 보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특별‧광역시는 분만 건당 안전정책수가 55만원만을 추가 보상받게 되고, 시군, 특별‧광역시 소속 자치군 등은 안전정책수가에 더해 지역수가 55만원을 추가로 지원받아 분만 건당 110만원이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같은 복지부의 공공정책수가가 분만 건수가 많지 않은 특별‧광역시 분만 의료기관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같은 지역의 산부인과들이 분만을 접게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었다.

    부산광역시 일신기독병원 "저출산, 분만의료진 수급 어려움으로 분만 진료 종료" 통보
     

    실제로 최근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있는 산부인과 중점 병원인 정관 일신기독병원은 내달 9일부터 산과 진료를 중단한다고 일방 통보해 지역사회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8년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설립된 이후로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9개 전문과목을 진료해왔다. 

    하지만 올 초 병원이 돌연 홈페이지를 통해 "가임연령의 결혼관 변화, 저출산 문제 심각성 및 24시간 응급진료가 필수인 산과(분만)의료진 수급의 어려움으로 분만과 관련된 산과 진료를 종료하게 됐다"고 공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면서 병원은 "고령화 사화에 따른 척추 및 관절질환, 다양한 스포츠 활동 및 청소년기 근골격계 질환 등에 대한 정형외과 진료와 수술을 강화시켜 나갈 계획"이라며 "새로 취임 예정인 정형외과 병원장님과 함께 새롭게 도약함으로서 지역 주민의 건강주치의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식에 출산을 앞둔 기장군 정관신도시의 임신부들은 자동차로 30~40분 거리의 해운대나 금정구 쪽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광역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인천 계양구에서 분만진료를 시행해 오던 대형 여성병원이 올해부터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고,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서 유일하게 분담을 전담해오던 여성의원도 지난해 말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적자에 시달리다 결국 분만과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중단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병원이 하루아침에 분만을 포기하고 정형외과 분야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면에 대해 산부인과 의료계는 정부의 정책 실패라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부산광역시와 인천광역시는 '지역수가' 제외 대상으로 타지역 분만병원과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분만 건수가 극적으로 늘지 않는 한 55만원의 추가 지원이 '정형외과'와 같은 다른 전문과목으로의 전환보다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출산율 낮은 서울시도 지역수가 '제외'…분만 건수 적어 분만실 유지도 어려워

    서울특별시라고 해서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 은평구 소재 A 분만 병원은 정부의 안전정책수가 소식에 기쁨도 잠시, 전년보다 감소한 분만 건수로 인해 24시간 당직을 서며 분만실을 지킬 직원의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2명이었지만,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59명으로 최저 수준이다.

    A 병원은 '서울특별시' 소재라는 이유로 지역수가 지원대상에서 배제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은평구와 인접한 경기도 일산의 대학병원은 안전정책수가에 지역수가까지 지원을 받아 55만원을 추가로 지원받고 있다.

    A 병원 원장은 "대학병원에 환자도 뺏기고, 복지부 수가 지원에서도 차별을 받으니 한숨만 나온다"며 "경기도는 서울보다 출생율이 높다. 그렇다보니 분당, 성남, 동탄 등 출생율이 높은 지역의 병원들은 정부 공공정책수가로 큰 이득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산, 분당, 성남, 동탄 등 신혼부부가 많은 신도시 일부 분만병원은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아 분만 건수가 월 400건 전후에 달해, 지역 수가 55만원 추가지원으로 정부 지원책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학병원들은 365일 24시간 당직을 설 산부인과 전문의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소아청소년과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까지 충분히 채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A병원장은 "정부의 공공정책수가가 의료취약지 지원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의도대로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은 집값이 비싸 새로 시작하는 신혼부부가 많지 않다. 그렇다보니 야간 분만 건수가 한 달에 10건밖에 되지 않는다. 한 달에 20일은 야간에 환자가 없는데도 혹시 모를 환자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24시간 분만실을 유지하기 위해 당직을 서고 있다. 원장의 나이가 70인데도 당직의가 모자라 당직을 서는 상황이다"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해당 원장은 "인구가 많은 서울도 이처럼 분만이 적다. 지역수가 등은 분만 건수가 많은 병원들에게만 좋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져온다"며 "이런 상황에서 분만 건수 지원은 의미가 없다. 분만실을 운영하는 병원에 대한 인건비 지원 등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만병원들 "광역시 이상에서 분만인프라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특별시, 광역시는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높고 임대료도 비싸지만 분만 건수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낮다"며 "이런 상황에서 분만건수에 따라 지원되는 공공정책수가로는 분만실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아이 낳을 병원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오히려 광역시 산모들이 지역 원정 출산을 해야하는 상황이 불가피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분만수가는 절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지역수가로 인한 차등 지원으로는 현 분만 인프라 개선을 유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년 합계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분만실이 365일 24시간 유지되려면 당직의사에 대한 직접적 비용 부담 등 분만실에 대한 직접적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분만병원협회 오상윤 사무총장도 "정부는 이번 정책수가 지원으로 지역사회 분만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은데 현장은 조만간 광역시 이상에서 분만인프라가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 사무총장은 "경기도 안에서도 젊은 인구가 많아 출산율이 높은 경기도 일부 지역 대형병원 외에는 지역수가를 받지 않으면 유지가 어려운 병원도 많다"며 "단순히 특별시, 광역시 기준으로 분만 건수에 대한 공공정책수가 지원책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기에는 복잡한 상황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는 일부 지역수가로 지원을 많이 받는 병원들로 인해 봉직의 월급이 올라가거나 봉직의들을 추가 채용할 경우, 서울과 인천의 분만병원들은 봉직의 수급이나 마취과 수급에서 불리하게 된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지역 분만수가 차등지급으로 서울 외곽지역에 인접한 경기도에 있는 분만병원에서 지역분만수가를 재원으로 급여를 대대적으로 인상해 직원을 모집하면서 분만병원 직원의 이탈이 발생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사무총장은 "일본은 분만기관이 3500개로 떨어졌을 때부터 국가 분만 인프라 붕괴를 우려하며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학병원을 포함해 분만 기관이 420여개다. 일본은 합계출산율이 1.2이고, 전체 인구수가 1억 20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의 현실은 위기 상황"이라며 답답한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