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산모 감염 예방과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1·2인실 중심으로 병상을 운영해 온 분만산부인과의원이 일반병상 확보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7억원대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받은 데 대해 산부인과계가 반발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같은 결정이 분만기관의 특수성과 현장의 병상 운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분만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한 의사 3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의원은 총 21병상을 운영하면서 1인실 17개, 2인실 2개 등 대부분을 상급병상으로 운영했다. 산모들에게는 상급병상 입원료를 비급여로 징수했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현지조사를 통해 이 의원이 당시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상 일반병상 의무보유 비율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를 근거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했다.
당시 기준에 따르면 10병상을 초과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일반병상을 총 병상의 50% 이상 확보해야 상급병실료를 비급여로 받을 수 있었다. 해당 의원 측은 개설 의사가 3명인 만큼 총 21병상을 의사 수로 나누면 1인당 7병상에 불과해 일반병상 확보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병상 수 산정 기준은 개별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관 전체라고 봤다. 총 21병상을 운영한 이상 10병상 초과 의원급 의료기관에 해당하며, 일반병상 50% 확보의무가 적용된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일반병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급병실료를 비급여로 징수한 것은 본인부담금 초과 징수에 해당하고, 입원료 청구 역시 관계 법령상 지급받을 수 없는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국민건강보험법상 환수 대상인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은 적극적인 허위기재나 기망행위에 한정되지 않고, 법령상 지급받을 수 없는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해 지급받은 경우도 포함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해당 판결이 건강보험 규정의 엄격한 적용에는 충실했지만, 분만의료의 현실과 제도 간 괴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분만기관은 일반 입원기관과 달리 산모와 신생아의 감염관리, 산후 회복, 수유, 프라이버시 보호 필요성이 크다”며 “법원이 이러한 특수성을 실질적 판단 요소로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일반 병상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회는 이 사건을 단순한 부당청구 사건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산모들이 추가 비용을 인지한 상태에서 1·2인실을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분만기관 역시 감염 예방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병상을 운영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적극적인 허위나 기망이 없는 경우까지 ‘부당한 방법’에 폭넓게 포함시켜 급여기준 위반과 부당청구를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한 것은 지나치게 엄격하다”며 “환자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고려도 약했다”고 밝혔다.
전액 환수 처분에 대해서도 비례원칙 심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봤다. 해당 처분이 개별 의료기관의 운영뿐 아니라 지역 분만 인프라에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의사회는 “분만기관은 저출산, 인력난, 의료분쟁 부담, 낮은 수가 등으로 이미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수억원대 환수와 행정처분은 분만의료 현장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후 제도개선의 의미도 짚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12월 관련 규칙을 개정해 2024년 3월부터 의원급 산부인과·주산기 전문병원·분만병원의 일반병상 의무비율을 기존 50%에서 20%로 완화했다. 의료계는 이 같은 개정이 종전 기준이 분만의료 현실과 맞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보고 있다.
의사회는 “사후 제도개선이 과거 행위의 위법성을 곧바로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존 기준이 실제 분만의료 현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법원은 이를 단순한 사후 사정으로만 보고 제도 자체의 문제를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의료기관의 병상 기준 위반 문제가 아니라 분만의료 현실과 건강보험 규범이 충돌한 구조적 문제”라며 “산모와 신생아의 안전, 감염관리,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병상 운영을 일반 입원기관과 같은 기준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의 공공성과 투명성은 중요하지만, 필수의료인 분만 인프라의 지속가능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며 “분만기관의 특수성을 반영한 병상 기준과 급여기준, 예외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