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일본 정부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을 확대하면서 의료기관의 정보시스템을 표준화된 클라우드 방식으로 바꾸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가 제품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맞춰 개발된 민간 EMR을 인증한 뒤 의료기관의 도입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병원마다 별도로 구축해온 시스템을 전국 의료정보 공유망에 연결하기 쉽게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 9일 발표한 ‘EMR 보급 계획안’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EMR보급률 100%를 목표로 잡았다. 단순히 종이 진료기록을 전산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의료기관 간에 필요한 환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EMR을 보급하는 게 핵심이다.
일본은 의료기관 규모에 따라 EMR 도입률 격차가 크다.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 결과, 응답한 기관들 중 EMR을 도입한 곳은 의과 의원 중 72.6%, 20~199병상 병원 중 73.5%였다. 반면 400병상 이상 병원은 94.4%였다. 정부는 우선 EMR을 도입하지 않은 의료기관의 전산화를 지원하면서 이미 도입한 기관도 시스템 교체 시점에 전국 정보 공유 체계에 연결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병원별 맞춤형 구축 대신 클라우드 EMR 공동 이용
이번 계획에서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보급할 EMR의 기술적 구조까지 기준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의원∙중소병원용 인증 제품은 정부 기준에 맞는 공용 클라우드 환경에서 작동해야 한다. 여러 의료기관이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을 통해 이용하는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고, 의료기관마다 프로그램을 별도로 수정하는 방식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담겼다.
병원마다 전용 서버와 프로그램을 따로 구축하는 대신, 여러 의료기관이 표준화된 EMR 서비스를 함께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각 기관의 환자정보와 접근 권한은 구분하되 공급업체가 공통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기능 개선이나 보안 업데이트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후생노동성은 기존 병원 내 구축형 시스템이 의료기관별로 수정∙운영되면서 비용이 늘고, 정부가 만드는 의료정보 서비스와 연결할 때도 개별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서버만 클라우드로 옮기고 병원별로 별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보다 처음부터 공동 이용을 전제로 만든 클라우드형 제품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다.
인증 기준에는 시스템 구조뿐 아니라 온라인 자격 확인, 전자처방전 관리 서비스, EMR 정보공유 서비스와의 연계 기능도 포함된다. 환자 데이터의 일본 국내 보관, 별도 백업, 취약점 점검과 보안 업데이트 등도 요구한다.
일본 정부가 표준 사양을 정하면 민간 EMR 기업이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후생노동성이 심사∙인증한다. 첫 심사는 2026년도 연말, 인증제 운영 시작은 2027년도 초반으로 상정하고 있다. 표준 사양은 이후에도 갱신해 인증 제품이 새로운 의료DX 서비스와 보안 요구사항에 맞춰 업데이트되도록 할 계획이다.
인증 제품을 도입하는 의료기관에는 도입 비용의 절반을 상한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존 병원 내 구축형 EMR에서 인증 제품으로 옮길 때 발생하는 데이터 이전 비용도 절반을 지원한다. 이 사업에 대한 후생노동성의 2027년도 예산 요구액은 336억엔(한화 약 2900억원)이다. 아직 확정 예산이 아닌 정부 요구안이다.
일본 정부는 공급 측면도 함께 지원한다. 인증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의료기관 현장에 설치하고 기존 데이터를 이전할 인력 및 지역 업체가 부족하면 보급이 늦어질 수 있어서다. 계획안에는 인증 제품을 병원에 제공할 업체와 인력을 확보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종이차트 의원엔 ‘정보 공유용 도입판’ 제공
민간 인증 제품 지원과 별도로 일본 정부는 병상이 없는 의원을 대상으로 표준형 EMR의 초기 버전인 ‘도입판’도 개발하고 있다. 모든 진료기록을 전자화하는 기능을 갖추는 대신 종이차트를 쓰는 의원도 국가 의료DX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부터 제공하는 제품이다.
도입판을 이용하면 다른 의료기관이 보낸 진료정보제공서와 검사 결과를 조회하고, 진료정보제공서를 보내거나 전자 처방전을 발행할 수 있다. 외부 검사기관에서 받은 검사결과를 전자차트 정보공유 서비스에 등록하는 기능도 포함된다.
후생노동성은 도입판을 올해 안에 완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27년에는 의원이 이를 도입할 때 필요한 기기 구입, 설치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관련 사업의 예산 요구액은 93억엔이다.
대형병원에는 별도 경로를 마련했다. 대형병원은 EMR에 검사∙영상∙약제∙수술 등 여러 부문의 시스템이 연결돼 있어 의원용 클라우드 제품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대형병원용 클라우드형 EMR과 부문시스템 개발을 지원하고, 서로 다른 시스템이 정보를 주고받는 연결 방식도 표준화할 계획이다.
당장 클라우드로 전환하기 어려운 의료기관에는 과도기적으로 패키지판 EMR 도입을 지원한다. 정부의 의료DX 서비스에 연결되고, 필요한 보안 기능을 갖추며, 병원별 별도 수정을 하지 않는 제품을 정부가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번 정책에 대해 일본 의료계는 지원의 지속성을 주문하고 있다. 병원마다 EMR 교체 시기가 다른 만큼 2027년뿐 아니라 2028년 이후 교체 비용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대형병원은 영상 등 모든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옮기기 어려운 만큼, EMR은 클라우드로 전환하더라도 일부 시스템은 병원 내에 두는 방식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