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보상부의 의뢰를 받아 ‘의료질평가 지표 제안 요청서’라는 공문을 각 산하단체와 회원 병원에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의협과 병협의 이번 공문에 따르면 심평원이 시행하는 의료질평가는 2015년부터 선택진료 축소에 따른 손실보상 차원에서 도입·운영됐다. 심평원은 이를 토대로 선택진료제 폐지 이후 국가 의료질 향상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중장기 개편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심평원은 공문에서 “2018년 관련 단체로부터 지표 제안을 받아 산출방법·중요성 등을 고려해 2020년 의료질평가 신규지표로 선정하고, 평가영역별 목표와의 연관성·지표 실효성·중복 여부 등을 검토해 기존 지표를 정비한 바 있다”고 했다.
심평원은 “평가지표 개편 방향은 국민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구조지표에서 과정·결과지표 중심으로 전환·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평원은 “의료현장의 환경변화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전향적 평가 적용을 위해 2021년 의료질평가 지표 제안을 요청드린다. 평가영역별 목표를 참고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심평원의 계획인 가치기반 심사평가제도로의 이행과 가치기반 지불제도(VBP, Valued-based purchasing)와 맞물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가지표를 만들어 인센티브로 공급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 다음 추후에는 의무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의 연구보고서를 보면 종합병원급을 시작으로 의원급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선진국의 현황을 지켜본 결과, 가치기반 지불제도 도입 이후 의료의 질 개선, 환자 결과 향상 등 보건의료체계 성과를 향상 및 지속가능성에 기여했다고 보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편, 정부와의 대화 중단을 선언한 의협이 이번 공문을 발송한 이유에 대해 의협 대변인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발적 인센티브에서 의무적 디스인센티브로 확대
정부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를 위해 처음에는 의료기관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다가 나중에는 의무적인 평가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단기적으로 건강보험의 재정 지원을 받다가 이후에는 의료공급자가 갹출한 예산을 통해 ‘감액 예산’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가려면 처음에 공급자에 대한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충분한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바로 선택진료비 폐지 이후에 손실보상금으로 지원하는 의료질평가지원금이다.
이같은 내용은 201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치기반 지불제도 도입방향' 연구보고서에 잘 나와있다. 보사연은 “가치 기반의 지불제도를 도입하려면 인센티브의 규모가 공급자의 행태 변화를 유인할 만큼 충분히 커야 한다”라며 “인센티브의 규모가 적으면 공급자의 성과 향상을 유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고, 인센티브 규모가 크면 공급자의 성과 향상 관심 및 행태 변화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보사연은 “프로그램의 설계단계부터 일선에서 환자에게 의료를 공급하는 의사들의 적극적 참여 유도가 필요하다”라며 “질 지표 선정부터 지불제도와의 연계방식 등에 이르기까지 제도화 과정 전반에 공급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전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사연은 “자발적 참여만으로는 참여 기관과 비참여 기관 간의 질 격차가 생긴다“라며 ”성과가 높은 공급자만 참여하는 문제 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의무참여방 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보사연은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의료의 질 향상 분담금 도입 등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라며 “향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시범사업을 활성화해 한국에 적합한 가치기반 지불제도 모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종합병원급에서 시작해 의원급으로 확대, 지표 개발이 첫 단계
정부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를 단기적으로는 종합병원급을 시작으로 장기적으로는 의원급 이상까지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의료질지표 개발이 가치기반 지불제도의 첫단추를 위해 중요한 항목으로 꼽혔다.
보사연에 따르면 평가대상은 단기적으로 전자의무기록 등 질 보고체계 기반을 구축해 놓은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수행하고 중장기적으로 의원급까지 그 대상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단기에는 과거 성과에 대한 자료 부재로 성취도(상대적 수준) 중심의 지불제도를 도입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개선도(절대적 수준)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향후 가치기반 성과보상 지불제도를 성공적 도입과 운영을 위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며, 이 중 성과 측정 지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보사연은 첫째,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를 다양화하되, 광범위한 영역을 균형 있게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어떤 지표를 포함하는지에 따라 공급자의 진료행태와 관심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사연은 “측정되지 않은 지표에 해서는 공급자의 관심이 간과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성과측정 지표를 보다 다양하고 포괄화해서 제도의 성과를 균형 있게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측정 지표는 최소한 임상적 질, 환자 중심성, 효율성은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라며 "결과적으로 성과측정 지표를 보다 다양하고 포괄화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공급자의 수용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형태로 지불제도와의 연계 모형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사연은 "가치기반 성과지불제도는 공급자 지불보상 체계의 변화를 통해 공급자의 진료행태 변화를 유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환자의 건강 수준 향상과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라며 "이러한 기전이 작동하기 위해 공급자의 진료행태 변화를 유인하기 위한 지불제도 형태, 지불 시기 및 빈도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셋째, 제도의 투명성, 신뢰성 확보를 위한 조정기전(coordination)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사연은 “제도의 도입과 확를 위해서는 원칙에 기반한 제도 운영이 선행돼야 한다. 원칙에 기반한 제도 운영을 위해 위험보정 지수 개발, 의도지 않은 결과에 대한 대처, 제도의 평가 체계 등을 위한 조정기전이 구축돼야 한다”라며 “특정 영역, 특정 공급자에게 분절적으로 운영돼 오던 지불제도를 모든 영역, 모든 공급자에게 보편적․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보사연은 "제도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무엇보다 타당도와 신뢰도가 입증된 평가지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과보상 지불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료수집에 대한 별도 보상 등을 통해 의료기관 제출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