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학생도 전공의도 없는 곳에서 스스로를 교수라고 칭하자니 면목이 없어 일단 저 자신을 대학병원 직원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지금 당장 대학병원 직원들이 착수해야 할 작업은 주 64시간에 맞춰 전공의 수련 커리큘럼을 짜는 일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80시간에서 더 줄이면 부실이다, 영국은 8년이다, 라떼 K-의료의 영광은 어쩌고 이런 소리 하고 있을 시간에 오로지 교육, 교육, 교육. 이 땅에 ‘전공의’라는 직업이 다시 생기게 하려면 의사와 비의사의 업무를 분류하고, 정말 교육적인 업무만 솎아내는 작업만 해도 하루가 모자라야 맞는 지경입니다. 그런데 왜 움직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까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될 첫 번째 세대입니다. MZ 세대가 정말로 그 이전 세대보다 유독 자기애적이고 물질주의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천만에요. 파피루스에도 조선왕조실록에도 무자비하게 건방진 젊은이들에 대한 욕지거리는 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출산율 0.7의 시대, 이제는 상황이 정말 달라졌다는 걸 조금만 공부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증가한 부의 대부분은 나이 든 세대들이 차지했고 ‘소득’보다는 ‘자산’(주로 부동산)의 형태로 축적됐습니다. 얼마나 버느냐보다는 언제 태어났느냐가 부를 결정하지 젊은이들의 나약함이나 무기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택 가격 상승, 대출 규제, 소득 정체, 부채 증가 때문인 거죠. 자산에서만 밀리는 게 아니라 평균 소득도 꺾이고 있습니다. 신규로 진입하는 젊은이들에게 제공되는 노동 시장의 빈자리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비정규적이거나 불안한 위치니까요.
반면에 주당 근무 시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의 모든 연령 집단에서 함께 줄어왔습니다. MZ가 64시간을 요구하니까 근면 성실하지 않다? 그건 당신이 SNL 예능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허상에 히죽거리며 세뇌당했다는 멍청이 인증일 뿐, 합당한 대우와 경제적 대가만 있다면 오히려 일을 적게 하는 게 아니라 더 하고 싶어 하는 게 요즘 MZ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학병원 직원 여러분. 작금의 상황이 ‘세대 갈등’을 넘어선 ‘세대 단절’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세대 간 부의 편중과 불평등의 전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젊은 세대를 훨씬 더 아끼며 존중해 줘야만 합니다. 젊은 의사들은 앞으로 평생 뼈를 갈며 일해도 선배 의사들이 쌓아 올린 만큼의 부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현재의 삶의 질과, 직업 자체의 숭고함과 생명에 대한 가치 구현에 초점을 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병원 밖의 사람들은 진작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주 40시간 노동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 이게 정상이고 우리가 비정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교수의 당직은 누가 줄여주고 교수 삶의 질은 누가 지켜주냐고요? 아니 교수 스스로 지켜야지 누가 지켜줍니까. 노조 결성해야죠, 그래도 안 되면 파업해야죠. 전공의들이 조만간 주 64시간 일하게 된다면 그것은 전공의들이 피눈물 나게 아까운 청춘을 불살라 스스로 얻어낸 아주 떳떳한 투쟁의 결과물인 겁니다. 남아있는 대학병원 직원들은 그럴 용기가 없어 못 해본 걸 그들은 해낸 거란 걸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환자, 1년 뒤에 올 환자를 떠날 수 없다며 대학병원을 지켰지만 정작 10년 뒤, 20년 뒤에 올 환자들은 다 죽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후학 양성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몸과 마음이 지친 나머지 당직비 정산에 일희일비하고, 잘 키운 PA가 전공의보다 낫다며 교육자의 본분을 잊어가고 있진 않았는지 우리의 마지막 남은 양심을 돌아봅니다. 하지만 기억해 보면 우리는 모두 교육자일 때 가장 의사답고 가장 행복하지 않았던가요.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지나친 열정과 격려를 나누던, 때로는 환자 잃은 슬픔과 환자 살린 기쁨에 얼싸안고 함께 눈물 흘리기도 하던, 그때의 우리가 정말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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