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현 정부는 야당 시절 원격의료는 대기업과 대형병원을 위한 의료영리화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이제와 비대면 진료로 이름을 바꿔 이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전라북도의사회 김재연 정책이사는 21일 열린 전라북도의사회 정기총회에서 원격의료와 관련한 내용으로 토론을 진행했다.
원격의료는 30년 전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시도해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원격의료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시 원격의료에 대해 의료영리화가 시작되는 계기라고 반대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공약을 보면 “의료영리화를 막겠다. 원격의료는 의료인과 의료인간의 진료 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한정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민주당은 환자에 대한 원격의료를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제 와서 정면으로 이를 어기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로 용어를 변경하면서 걱정하던 의료영리화는 없다고 애써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의료영리화 수순을 피할 수 없고 오진 문제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비대면진료로 이름만 바꾼 원격의료, 의료영리화 초석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88년이다. 서울대병원·한림대병원·경북대병원 등 3개 대학병원과 3개 보건의료원이 원격영상 진단 시범사업을 최초로 추진한 이후 30여년간 시범사업만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2015년 메르스 때 삼성서울병원, 건국대병원 등 일부 병원에 한시적으로 전화 진료가 처음 시행됐다.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월 24일부터 전화 상담·처방 및 대리처방이 허용됐다. 5월 10일 기준으로 2달여만에 26만건이 넘는 전화 상담·처방이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전화 상담·처방을 원격의료 추진으로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일 제2차 비상경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디지털 기반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과 코로나 방역 계기 시범사업 확대를 선언한데 이어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기 특별연설에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포스트 코로나 중점 육성 사업으로 꼽았다.
특히 코로나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준비 중인 한국판 뉴딜정책에 원격의료가 포함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2주간 논의 과정을 거쳐 이르면 6월초 한국판 뉴딜정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재연 이사는 “예외적인 전화상담 처방만으로 ‘뉴딜’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원격의료 허용, 즉 정부와 여당이 말하는 비대면 진료 허용은 의료영리화 재추진을 위한 초석으로 이해해야 한다”라며 “비대면 진료는 의료법 제17조 1항이 진료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는 직접 진찰을 우회해 원격의료가 가능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또 스스로 부정해왔던 의료영리화를 추진했을 때 닥쳐올 저항감을 낮추기 위한 꼼수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원격의료를 내세울 때가 아니다. 지금 시급한 것은 코로나19 환자를 진찰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원격의료가 아니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코로나19의 대응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원격의료가 숙원사업인 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원격의료법 반드시 개정해야 가능, 전화 처방에서도 책임소재 주의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의사간 원격의료만 가능하다.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의사와 환자 사이 원격의료는 또 다시 시범사업 아니면 감염 병 발생시 한시적 허용밖에 시행할 수 없다.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이사는 “정부와 여당은 의료법을 개정해 원격의료에 길을 터주기 위해 지금부터 여론전을 펼쳐 21대 국회에 원격의료법을 통과시키려고 할 것이다"라며 "하지만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 처방은 의료인의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우려했다.
대법원(2010도1388)은 2013년 원격의료에 대해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이뤄진 경우에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했다면 직접 진찰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2014도9607)은 “현대 의학 측면에서 보아 신뢰할만한 환자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라며 "이런 행위가 전화 통화만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돼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김 이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사인 피고인이 전화 통화만으로 환자에게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한 사안에 대한 것이었다"라며 "의사가 전화 통화 이전에 환자를 대면해 진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전화 통화 당시 환자의 특성 등에 대해 알고 있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는 신뢰할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환자에 대해 진찰을 했다고 할 수 없다는 중요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현장의 의료인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화 진찰 허용은 한시적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라며 "원칙적으로 전화 통화를 통한 처방전 작성·교부는 이전에 환자를 대면해 진찰한 적이 있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오진 위험성에 환자쏠림까지...의협에 원격의료 대응 주문
의료계가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진의 위험성과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김 이사는 “무엇보다 원격의료는 수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 의료지식이 없는 환자가 원격 진료기기를 작동하거나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원격으로 처방을 받았을 때, 오진과 의료사고의 위험성은 전문 의료진이 직접 진료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김 이사는 “오진이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인이 대면진료와 같은 책임을 지는지 등의 책임 소재 문제도 있다.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원격의료는 지식·정보격차로 인한 의료 불평등까지 초래한다”고 했다.
김 이사는 “원격의료가 본격화되면 대형 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원격의료 경쟁이 심화됐을 때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병의원이 살아남기 어렵다.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다는 원격의료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의료전달체계까지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의협에 대해 "원격의료를 반대하던 민주당은 설득력 있는 해명부터 하라”고 요구할 것을 주문했다. 김 이사는 "민주당이 ‘원격의료=의료 영리화”로 규정해버린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횡설수설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시민단체도 재벌 기업의 숙원사업이라며 원격의료를 반대하고 있어, 의료민영화 주장을 씌우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다만 "국민들이 원격의료를 이용할 의향이 분명한 데다 코로나19로 전화상담·처방을 직접 경험한 국민들이 의협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지도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령 일본의 경우 의사법 제20조를 통해 원격진료를 제시하고 후생노동성은 일종의 고시를 마련했다. 원격의료 허용을 열어두면서도 "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뤄지는 대면진료가 기본 원칙이다. 원격의료는 직접 대면진료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한다"는 전제를 마련했다.
김 이사는 “정부가 전화상담·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을 때 의협이 회원들에게 자제와 지양을 권고했는데도 26만 건이 넘었다"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들은 의협의 원격의료 무조건 반대를 직역이기주의로 보고,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원격의료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고 싶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