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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맹이 없는 인프라 말싸움과 기계적 가산제, 지역·필수의료 소생의 답이 될 수 없다

    [칼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기사입력시간 2026-07-06 14:34
    최종업데이트 2026-07-06 14:34

    지역·필수의료 소생을 위한 공론화 숙의토론회 전경.  사진=보건복지부 유튜브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열린 '지역·필수의료 소생을 위한 의료혁신 시민패널 공론회' 2일차 토론회를 지켜보며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정부는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지혜로운 미래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정작 현장에서 도출된 논의는 ‘공공병원 신설·투자’와 ‘민간병원 공공성 부여’라는 철 지난 이분법적 인프라 논쟁의 틀을 전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부 학계는 인구 감소 지역의 필수 의료 유지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거점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민간 의료기관에서는 진짜 문제는 시설이 아니라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는 ‘의사 인력의 부족’이라며 맞선다. 그러나 이 치열해 보이는 공방의 이면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장 역학의 진실’과 ‘제도적 맹점’이 통째로 빠져 있다. 현장 전문가의 시각에서 본 이번 공론화 토론의 구조적 한계와 현행 보상 제도의 치명적인 모순을 직시해야만 진짜 지역 의료 소생의 길이 보인다.

    1. 인력 쪼개기의 비극과 '착한 적자' 프레임의 허구

    이번 시민패널 토론에서 가장 뼈아프게 외면당한 현실은 '의사 총량의 한계'와 '공공병원의 채용 불가능성'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의사 면허자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힘겹고 위험한 필수의료를 전공한 의사들조차 사법 리스크와 열악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현장을 외면하는 것이 본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병원을 추가로 짓겠다는 정책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에 불과하다.

    새로운 공공 거점 병원이 생기면 인근 민간병원에서 간당간당하게 24시간 365일 당직 체계를 유지하던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필수 인력이 그곳으로 이동할 것이라 가정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전국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이 매년 기관당 100억 원이 넘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경경상황 속에서는, 민간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처우로 필수의료 인력을 새로 채용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지역 전체의 의료 총량은 변하지 않은 채 인력 채용 경쟁만 부추겨, 양쪽 모두 당직 체계가 무너지고 의료 공백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이러한 인력 이동의 역학관계와 재정 현실을 깊이이해하지 못한 채 진행되는 시민 공론화는 자칫 "응급실 뺑뺑이 없는 세상"이라는 선언적이고 이상적인 슬로건 나열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민간은 수익 추구, 공공은 착한 적자’라는 이분법적 프레임 역시 심각한 오류다. 국내 민간 의료기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의료법인’은 법적으로 수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 없으며, 발생한 이익을 100% 의료업에 재투자해야 하는 구조를 겨우 유지하며 강력한 공공성을 이미 띠고 있다. 굳이 수천억 원의 세금과 수년의 시간을 들여 건물을 새로 짓지 않더라도, 이미 지역에서 고군분투 중인 민간 인프라에 전폭적인 공적 자금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훨씬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안이다. 구체적인 재정 확보 대책이나 전문 인력 정주 여건 개선안이 빠진 정부의 ‘소프트웨어 혁신’은 현장의 냉소만을 자아낼 뿐이다.

    2. 기계적 '분만 수가 가산제'가 가져온 지방 분만실 폐쇄

    정부가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연간 3000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도입한 ‘분만 수가 가산제(안전정책수가·지역수가)’ 역시 현장에서 심각한 왜곡을 낳고 있다. "행정 구역 기준의 기계적 차등이 지역 분만실을 되레 도폐(倒閉)시키고 있다"는 현장의 비명이 과장이 아님을 통계와 현실이 증명한다.

    현재의 지역수가는 서울을 제외한 시·군·구 지역에 기계적으로 더 높은 가산금을 얹어준다. 이로 인해 서울과 사실상 동일한 생활권이자 인프라가 충분한 경기도 중소도시나 특례시의 병원들은 대규모 가산금을 챙기는 반면, 정작 인구 밀도가 높고 분만 인프라 유지가 시급한 서울 중심부나 대도시의 분만병원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가산금으로 재정 여력이 생긴 특정 지역 병원들이 인근 취약 지역의 산과 의사와 간호사를 높은 임금으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인력 빼앗기 도미노’ 현상이다. 안 그래도 씨가 마른 분만 의료 인력이 일부 지역으로 쏠리면서, 졸지에 인력을 빼앗긴 중소 지방 분만병원들은 버티지 못하고 단기간에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분만 건당 얼마를 더 주겠다는 사후 보상 방식은 출생아 수 자체가 소멸해가는 지역에서는 손익분기점조차 맞출 수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3. 생색내기식 가이드라인이 초래한 NICU 전문의 소외

    정부가 사법 리스크 완화를 위해 2026년 6월 확정 발표한 '필수의료 고액 배상보험 지원사업' 역시 세부 가이드라인을 들여다보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정부는 소아 분야 지원 대상을 '모자의료센터 전담 전문의'이거나 '병원급 이상의 소아외과 계열 수술·외과계 전문의'로 철저히 한정했다. 이는 현장을 전혀 모르는 치명적인 맹점이자 사각지대다.

    신생아 중환자실(NICU)에서 초미숙아와 신생아를 24시간 모니터링하며 인공호흡기를 달고 실시간으로 약물을 조절해 생명을 살려내는 핵심 인력은 바로 소아청소년과 '소아내과계' 전문의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자의료센터로 지정되지 않은 일반 종합병원이나 수련병원의 NICU에서 근무할 경우, 단지 외과(수술) 계열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센터 소속이 아니라는 행정적 기준 때문에 국가 지원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거나 모호한 경계에 놓이게 된다.

    NICU는 저산소성 뇌손상, 신생아 가사 등 단 한 번의 불가항력적 사고로도 법원에서 10억에서 15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배상 판결을 내리는 가장 위험한 곳이다. 리스크는 최고조인데 정작 현장을 지키는 소아과 의사들이 기계적 기준 때문에 지원에서 소외된다면 어느 의사가 NICU에 남겠는가. 아이를 받는 산과 의사만 보호하고, 태어난 아기를 살리는 소아과 의사는 보호하지 않는 생색내기식 가이드라인은 위험도 중심의 전면 재정비가 시급하다.

    4. 지역·필수의료 소생을 위한 3대 근본 개혁안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에 따라 춤추는 공론화나 생색내기식 수가 가산이 아니다. 필수의료 붕괴의 메인 퓨즈를 갈아 끼우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필수의료 유지 보상제(사전 지급제)로의 전환이다.

    환자가 없어서 문을 닫는 지역 분만실을 살리려면 '분만 행위 건당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제의 틀을 깨야 한다. 지역 분만실과 분만실을 지키는 인력 체계(산과, 마취과, 간호 인력)를 '유지하는 것 자체'에 대해 사전에 일정액의 기본 운영비를 국가가 매년 고정 지급하는 보상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인구 감소율과 출생아 수 저하에 비례하여 분만당 수가가 자동으로 우상향하는 '출산율-분만수가 연동 메커니즘'을 즉각 도입해야 한다.

    둘째, 의료사고 위험의 완벽한 국가 책임제 및 재보험 구조 명문화다.

    1년에 단 몇 건만 발생해도 의사 개인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10억 대 배상 판결'이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에서 신생아 중환자실과 분만실을 지킬 의사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불가항력적인 고위험 필수의료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종 보상을 100% 담보하는 ‘국가 재보험(배상기금) 구조’를 법률로 완전히 박아야 한다. 사법적 리스크가 해소되어야만 인력의 자발적 유입이 시작된다.

    이 배상보험 제도의 영구적인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새로 마련한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나 담배 개별소비세 등에서 확보되는 공적 재원의 상당 부분을 '고위험 필수 의료사고 배상책임 기금'으로 영구 편입시켜야 한다. 이 제도는 단순히 의사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지방의 소중한 신생아들과 산모들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비용이다.

    셋째,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기능 중심의 투명한 성과 평가 체계 구축이다.

    소유 주체가 누구냐를 떠나, 지역에서 실제 '치료 가능 사망률'을 낮추고 골든타임을 지켜내며 고위험 환자를 받아내는 기관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지원된 공적 자금에 대해서는 투명한 사후 관리를 진행하되, 성과를 내는 민간 의료법인에는 공공병원에 준하는 파격적인 혜택과 지역 의사제 인력 배정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국가가 보장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본권이다. 그러나 그 보장의 방식이 현실을 무시한 인프라 확장이나 기계적 구역 나눔, 현장을 소외시킨 반쪽짜리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더 이상 설익은 공론화 뒤에 숨어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남발하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를 뼈아프게 수용하여 필수의료 유지 보상제와 국가 책임 재보험 제도라는 근본적인 메스를 들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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