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다이스 몰레큘(DiCE Molecules)은 2013년 스탠포드 교수인 페르 하버리(Pehr Harbury) 박사의 연구를 바탕으로 세워진 바이오텍 회사이다. 조용히 기초를 다지다가 2016년 3월 사노피(Sanofi)와 공동연구를 발표해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2017년 12월에는 제넨텍(Genentech)과 공동연구를 발표했다.
제넨텍과의 공동연구 금액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언론에 노출된 사노피와의 공동연구 금액은 상당히 큰 것이었다. 사노피는 다이스 몰레큘의 타깃 열두 개에 대해 공동연구 5년 동안 한 타깃 당 5천만 달러까지 지불한다고 했다. 마일스톤까지 1억 8천4백만 달러를 지불한다고 하니 열두 타깃이 다 잘 진행된다고 하면 23억 달러까지 가능한 엄청난 액수의 딜(deal)이다.
다이스 몰레큘(DiCE Molecules)이 가지고 있는 플랫폼이 무엇이길래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protein-protein interfaces) 타깃과 지금까지 소위 '언드러거블(undruggable)', 즉 약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타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일까? 현재 우리가 다이스 몰레큘 플랫폼을 추측할 수 있는 건 2016년 8월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과 이를 10월에 C&EN(Chemistry and Engineering News, 미국화학회가 출판하는 뉴스)가 소개한 것이 전부이다.
단일클론항체를 만드는 과정은 '지시된 진화'(directed evolution)를 통해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됐다. 최적화(optimization)와 재디자인(redesign)을 반복해서 수행해 왔다. 이런 항체에서의 '지시된 진화'를 저분자화합물(small molecules)에 적용하는 것이 다이스 플랫폼의 핵심이다. 유전자암호 라이브러리(DNA-encoded libraries)와 믹스앤스플릿(mix-and-split)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을 이용해 10의 9승이나 10승의 화합물 라이브러리(chemical libraries)를 만들어 지금까지 약으로 만들기 어려웠던 '언드러거블(undruggable)' 타깃들을 정복하겠다는 것이다.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은 '지시된 진화'(directed evolution)를 통해 단백질인산화효소(PKA: Protein Kinase A)의 인산화효소 기질(kinase substrate)을 찾는 작업을 예로 보여줬다. 유전자 구조는 4개의 아미노산 코딩 지역(region)을 만들었고(VA-VD), 각 아미노산 코딩 지역에는 384개의 다른 유전자 코돈(DNA codon)을 줬다. 그래서 라이브러리에 1536개의 다른 코돈을 심었다. 각각의 코딩 위치에 17개의 F-moc 아미노산 중에 하나를 넣으라고 '지시'(direct)했고, 아지닌산 다이머(dimer)를 18개로 넣으라고 지시했다. 엑스트라 바코드(VE)에는 '인산화효소 기질'이나 '콘트롤'로 지시했다. DNA로 프로그램 한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을 진행했다. 펩타이드와 DNA가 결합된 라이브러리가 네 번째 세대까지 단백질인산화효소(PKA)의 인산화효소 기질로 만들어졌다. 단백질인산화효소 컨센서스 모티프(PKA consensus motifs, 아미노산 RR*[S/T]* 혹은 RRSF*)가 2nd 세대에서는 조금 보이다가 3rd, 4th 세대에서는 더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RRFSL 펩타이드가 가장 높은 kcat/Km 값(values)을 나타냈다.
다이스 몰레큘 플랫폼을 보면서 생각난 것이 1990년 즈음부터 유행했던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이다. 첫 주자는 피터 슐츠(Dr. Peter Schultz) 교수이다. 아피맥스(Affimax)를 공동 창업해 주목을 받았던 슐츠 교수는, 여기에 더 근사한 테크닉을 더해 GNF(Genomics Institute of the Novartis Research Foundation)를 세우고 많은 연구진과 함께 신약개발을 했다. 하지만, 2010년 그가 GNF를 그만둘 때까지 기억나는 작품은 없다. 머크에서 근무하던 요셉 몰리카(Joseph A. Mollica) 박사가 만든 바이오텍 '파마코페이아(Pharmacopeia)'는 그들만의 고유 화학정보학(chemical informatics)을 이용한 새로운 조합화학 플랫폼에 비드(beads)를 붙인 다양한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고속대량스크리닝(HTS: high-throughput screening)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플랫폼은 그 당시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유는, 항상 문제가 되던 화합물 라이브러리(chemical libraries)를 10배나 100배 이상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쉐링 플라우(Schering-Plough)와 파마코페이아(Pharmacopeia)는 1994년 12월부터 항암제와 천식을 타깃으로 공동연구를 시작했는데, 양사는 1998년 11월에 공동으로 연구하는 5년 동안 6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돌아보면 얼마 전 사노피와 다이스 몰레큘이 체결한 계약과 비슷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이 든다. 파마코페이아가 잘 나갈 때는 여러 제약회사와 파트너십(partnership)을 체결했다. 당시 쉐링플라우를 포함해 BMS(Bristol Myers Squibb), 와이어스(Wyeth), GSK(GlaxoSmithKline), 세엘진(Celgene), 세팔론(Cephalon)까지 파마코페이아의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잘 나가던 파마코페이아는 2008년 리간드(Ligand Pharmaceuticals)에 7천만 달러의 가격에 흡수되고 말았다.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에서 배운 교훈은 그냥 다양한 조합(combination)은 숫자 놀음이고, '합리적 디자인'으로 '집중된 조합화학(focused combinatorial chemistry)'을 통해 지시되어 만들어진 소수의 물질들만이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다.
다이스 몰레큘(DiCE Molecules) 플랫폼의 가장 큰 문제는 '화학적 공간(Chemical Space)'이라는 개념적 가상 공간이다. 플로스 원(PLOS One) 논문의 논고(Discussion)에 기술한 첫 문장을 보면 이 개념적 공간에 대한 의미가 좀 더 명확한데, 그 문장은 다음 과 같다. "Ultimately, the purpose of directed evolution is to identify functional molecules hidden within large chemical spaces." 이를 해석하면, 화학적 공간(Chemical Space)이라는 크고 큰 공간에 숨어있는 유효물질을 발굴하는 것이 이 플랫폼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가상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저분자화합물(small molecules)의 수는 무려 10의 60승 (10^60 diversity)이고, 약물같은 분자(drug-like molecule)가 무려 10의 40승(10^40 diversity)이다(필자가 의약화학의 원로 유성은 교수에게서 얻은 정보이다). 아무리 다이스 몰레큘 플랫폼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합성물질(~70 million)의 10배 또는 100배 되는 10의 10승(10^10 diversity)의 물질을 만든다 해도 그것은 극히 일부의 화학적 공간(Chemical Space)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
두 번째 문제는 다이스 몰레큘 플랫폼의 '지시된 진화(directed evolution)'가 얼마나 원하는 방향의 변화(진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지시된 진화'가 과연 우리가 원하는 '유효물질(functional molecules)' 방향으로만 진화할 것인가?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물들은 그들을 만드는 종(種)이 다양한 외부 위협에 대해 적응·방어하는 과정에서 대사과정 등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화합물을 생성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시된 진화(directed evolution)'의 산물로 여러 유효물질(functional molecule)을 만든다. 천연물이 갖는 뛰어난 성질 중 하나는 화합물의 다양성이다. 라이브러리에 있어서 화합물의 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합물의 모체골격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천연물이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 종의 '합리적 디자인(rational design)' 때문이다. 항생제에 사용되는 고리형 펩타이드(cyclic peptide)나 많은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에 히트(hit)로 검출되는 천연물들이 만들어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 번째 문제는 '지시된 진화(directed evolution)'로 만들어진 화합물들의 물리화학적 특성(physico-chemical property)이 과연 약물같은(drug-like) 성질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이 화학공정(process chemistry)과 CMC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CMC는 화학(Chemistry), 제조(Manufacturing), 관리(Control)의 약자로, 의약품 개발과정에서 원료의약품(Drug substance 또는 API(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과 완제의약품(Drug Product)의 생산 부분을 다룬다. 원료와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공정개발(Process Development)'과 '품질관리(Quality Control)'가 CMC의 핵심이다.
물론 이런 의문들에 답할 수 있는(우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자료들이 이미 다 준비돼 있고 사노피나 제넨텍에 제공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위 '언드러거블(undruggable)' 약을 '지시된 화학적 진화(Directed Chemical Evolution)'로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