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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개발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FDA 보고, 임상 1상에 진입한 약물 12%만 허가 획득에 성공

    기사입력시간 2018-05-25 06:26
    최종업데이트 2018-05-25 06:26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We are existing for failure(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필자의 말이 아니라 1993부터 2006년 9월까지 쉐링-플라우 연구소(SPRI)의 회장을 맡았던 존경하는 세실 B. 피켓(Dr. Cecil B. Pickett)이 어느 인터뷰 기사에 실렸던 제목이다. 신약개발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지난해 6월 2일 금요일에 첫 칼럼을 게재한지 1년이 됐다. 어떤 주제로 1년을 마감할까 고민하다가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신약개발의 대명제를 다시 씹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주식시장은 ‘알투바이오’라는 말이 돈다고 한다. ‘알고 투자하는 바이오’란다. 신약·바이오에 제대로 투자하려면 ‘우리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투자하는 것이다.

    제약·바이오산업은 고위험도의 신약개발 사업을 할수록 실패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승인 받기까지 보통 12년 이상 걸리고 평균 1조7000억이 드는데 성공확률은 0.02%에 불과하다. 이런 통계적인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R&D를 통한 글로벌화(化)’만이 지속적인 토종 제약사의 성장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살기 위해 R&D는 필수요건이다. 성공확률이 0.02%에 불과하다면 ‘제약·바이오산업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을 위해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실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상충되기도 한다.

    다른 제조산업과 달리 신약개발은 최종 제품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반적인 신약개발의 첫 과정은 먼저 어떤 생물학적 타깃이 그 대상으로 하는 질병에 가장 적합한가 선별한다. 그 타깃으로 인해 질병의 ‘미충족 욕구(Unmet Need)’가 충분히 보상돼야 한다. 이 선별 과정을 위해 구성원들이 ‘오늘날의(Up To Date)’ 사이언스를 알아야 하고 충분히 토론해야 한다. 그 선별된 타깃을 제일 먼저 스크린으로 만들고, 회사가 가지고 있는 화합물은행에 속한 모든 화합물을 스크린하고 테스트한다. 

    100만개의 화합물을 은행으로 가지고 있다면 히트(hits) 화합물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50~100개의 히트를 골라 어느 것이 가장 좋은 지 활성(activity), 물성을 참조해 2~3개의 화합물 구조(scaffold)가 다른 물질을 선별한다. 100만개의 화합물 은행을 통해 1개의 약을 허가 받는다면 여기서의 확률은 100만분의 1이다.

    동물실험에서 독성이나 유효성을 확인하고 건강한 성인에서 임상 1상을 마친 뒤 환자에게 투여해야 한다. 적절한 용법용량을 확인하고 대규모 환자에게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 2상, 3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임상 1상에 진입한 신약 후보물질 중 12%만이 허가 획득에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미국바이오협회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FDA의 9985건의 임상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약품 후보물질이 임상 1상부터 품목승인까지 전과정을 통과하는 확률은 9.6%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상 1상에 진입하는 물질이 허가를 받을 확률이 10% 정도인 것이다. 이런 낮은 확률은 약의 가장 중요한 두 포인트 즉 안전성·유효성 평가에 대한 기준이 보다 강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제약협회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임상 1상의 성공확률은 54%이고 실패확률이 가장 높은 임상 2상에서의 성공확률은 34%이다. 또 임상3상의 성공확률은 70%이고 신약품목허가(NDA)에서는 91%로 당연히 성공확률이 높다. 아무리 확률이 높아도 뼈아픈 한국신약개발의 경험은 SK바이오팜과 존슨앤존슨(J&J)이 2008년 10월에 간질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 임상 3상후 미국 FDA에 의약품허가신청(NDA)을 넣었는데 문턱에서 좌절된 바 있다. 

    확률이나 생산성 제고 방식은 실패를 낳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세포실험(in vitro) 값을 먼저 보고 동물실험(in vivo)을 진행하던 생산성 제고방안을 역행해 화합물을 만든 후에 직접 동물실험(in vivo)을 진행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가 성공한 신약개발이 고지혈증 약으로 허가된 제티아(Zetia)이다. 스타틴과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은 알았지만 고전적인 동물실험(in vivo) 방법으로 약을 만들었다. 따라서 2002년 시장에 출시할 때까지도 타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2007년에 에제티미브(ezetimbe)의 주된 타깃이 콜레스테롤 운반 단백질(cholesterol transport protein)인 NPC1L1(Nieman Pick C1 like 1) 단백질로 밝혀졌다. 

    신약개발 확률은 그저 확률일 뿐이다. 예를 들어 파르네실 전달효소 억제제(Farnesyl Transferase Inhibitor) 신약개발 과정에서 쉐링-플라우 연구소(SPRI)는 약 1만개의 화합물을 만들었지만 단 1개의 후보물질 로라타딘(SCH66336)을 임상에서 진행했지만 결국 신약으로 개발하는데 실패했다. 임상에 들어간 확률은 ‘1만분의 1’이지만 개발 실패는 0이다. 그저 확률의 무모한 도전이라면 신약개발 연구소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그저 다른 나라 회사가 개발한 약을 비싸게 수입해 다시 이익을 얹어 유통을 하면 된다. 

    신약개발 투자비용과 소요기간 절감을 위한 신약개발 생산성 제고방안의 필요성이 계속 대두된다. 그러나 과제를 시작하는 조기에 신약 후보물질의 개념증명(PoC, Proof of Concept)을 확보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융통성이 없으면 창조성도 없고 실패의 확률을 알면서도 도전하지 않으면 신약을 창조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실패하기 위해 존재하며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열심히 연구-개발하는 것이 존재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