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범의약계가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첩약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면 이 같은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대한의사협회 측은 최소한의 검증이 없이 예정대로 시범사업이 진행될 경우 의정합의가 파기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첩약과학화 촉구 범의약계 비상대책위원회(범대위)는 17일 오전 10시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대안 제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범대위가 밝힌 가이드라인은 국민 안전을 위해 첩약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경제 효과성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 골자다. 특히 과학적으로 표준화돼 있지 않은 조제과정을 개선하고 추적관리 시스템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범대위 측의 주장이다.
대한병원협회 이왕준 국제위원장은 "첩약 평가방법과 기준이 우선 마련돼야 하고 첩약 복용에 따른 이상 반응, 장기복용 약효 독성평가 등 기준이 필요하다"며 "향후 한약 수요증가에 따른 기술적 정책 방안과 조제 과정의 수가 적정성 등 첩약에 대한 경제성 평가, 임상시험 등도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국제위원장은 "현재 사례 모음집에 불과한 한의임상표준진료지침(CPG)을 과학적으로 보완하고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을 비교연구해 평가하는 것도 사업안에 포함돼야 한다"며 "특히 한약 조제기관에 대한 시설 공정 관리와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오남용, 관리부실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관리기준, 표준화도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한의계는 한약의 안전성이 담보됐다고 주장하나 폐기되는 한약제가 굉장히 많다. 한약제 품질 안전관리 방안과 이에 대한 책임소재도 명확히 해야한다"며 "원재료를 포함해 최종 가공 관리기준을 강화하고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해 시범사업을 추적관리해야 한다. 회수폐기에 대한 안전관리시스템도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현재 한약재는 약사법이 아닌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로 관리되고 있다. 이에 대한 법체계 정비도 필요하며 한약사에 대한 업무량을 정하는 인력배치기준도 정해져야 한다"며 "과잉진료와 처방에 대한 재정영향 평가방안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한약사회 좌석훈 부회장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첩약시범사업을 결정한 이후에도 한약재 회수폐기 명령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한의계는 한약의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하지만 가짜약, 중금속 포함 등 유해성 크다는 이유로 회수폐기가 이뤄지고 있다. 시범사업 과정에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2019년 8월부터 2020년 5월까지 1년이 채 안된 시기에 회수되거나 폐기된 한약재는 52건이다. 구체적으로 중금속 부적합 15품목, 성상이상 9품목, 이산화황 8품목, 순도시험미달 5품목 등이다. 반면 3년간 한약재와 의약품을 비교해보면 의약품의 회수나 폐기명령은 118건(30.2%)에 그친 반면, 한약재는 278건(69.8%)에 달했다.
범대위는 이 같은 최소한의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고 사업이 강행되는 상황에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범대위는 의정합의를 통해 협의체를 통해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발전방안을 의료계가 제안할 수 있는 만큼 10월에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정부가 의정합의를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문제제기를 위해 조만간 공개토론회 등 공론화 과정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왕준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의료계는 어떤 위험수당이나 추가 수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건정심에서 결정됐다는 핑계만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범의약계는 난국에 시범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저의와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개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협 김대하 대변인은 "의정합의문을 보면 의료4대문제 중 하나인 첩약급여화 시범사업도 협의체를 구성해 발전 방안을 함께 논의하도록 했다"며 "안전성과 유효성의 보증이 없는 상태에서 예정대로 시범사업이 진행된다면 의료계는 의정합의가 깨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