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미국에 사시는 띠동갑 큰 누님이 필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40대는 40마일로, 50대는 50마일로, 60대는 60마일로, 70대는 70마일로 간다. 얘 너도 그 나이가 되면 안다." 누님의 예견대로 필자도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 시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은 어떤 날은 좀 더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
사실 더디게 가는 날은 생산적으로 지낸 날이고 어떤 이벤트가 있었고 어떤 일이 있었던지 기억되는 날이다. 더 생산적으로 느낀 날은 몸과 마음이 푹 쉼을 얻고 난 날이다. 잠을 푹 잘 자고 난 아침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피곤에 지친 내가 아니라 더 젊어 보인다. 운동 선수들은 그들의 경험을 통해 푹 잘 자고 쉰 날에 더 성과가 좋은 것을 경험한다. 쉼이 부족하면 공에 대하여 어떤 동작을 하여야 하는지 놓치고 공이 어느 방향으로 날라올 것이 예상되는지 추측이 어렵다.
어렸을 땐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지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왜 하루가 화살처럼 빨리 가는 것처럼 인지(perception)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 'Times flies!'다. 시간은 날아간다는 것이다. 왜 사람은 나이에 따라 시간이 빨리 날아가는 것처럼 인지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과학자들의 연구는 여러 다른 각도에서 진행됐다. 노화에 따라 생체시계가 느려지는 점, 기억 능력이 줄어드는 점, 뇌의 작동 속도가 느려지는 점, 새로운 자극에 민감한 쾌락 호르몬의 일종인 도파민 분비가 줄어드는 점 등 다양한 원인들을 제시해왔다. 아마도 이 다양한 원인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요인보다는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시간은 과연 얼마나 빨라질까? 1996년 미국에서 진행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당시 연구진은 19~24세 25명과 60~80세 15명을 대상으로 마음 속으로 3분을 재보도록 했다. 미국 사람들이 일초를 재는 'one thousand one, one thousand two, one thousand three, …(1001, 1002, 1003, …)' 이런 방식으로 피실험자 각자가 읊조리며 시간을 재게 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생각한 3분은 평균 3분 3초였으나 반면 노인들이 3분이라고 생각한 시간은 실제론 평균 3분 40초였다. 결과는 노인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시간이 22% 더 빨리 흘러갔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시간이 구체적으로 빨라진 결과였다. 다르게 보면 긴 시간을 짧게 느낀 것이다. 이런 착각은 나이에 비례해 더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듀크대 기계공학&재료과학과 애드리안 베얀(Adrian Bejan) 교수가 3월 18일 저널 '유러피안 리뷰(European Review)'에 'Why the Days Seem Shorter as We Get Older'라는 제목의 짧은 리뷰(Review)를 올렸다.
어떤 날들은 다른 날들보다 더 느리게 간다고 느끼게 되는 물리학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특별한 날들에 집착하게 되는가? 이 논문은 이런 일상적인 경험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뇌 안에서 시간 감각과 관련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베얀 교수의 결론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적 '시계시간(clock time)'과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시간(mind time)'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체의 변화를 물리학적으로 들여다본 결론이다.
인간의 마음시간은 일련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이미지들은 만들어진다. 마음시간은 인지한 이미지가 대뇌피질에 도달한 시간이다. 자신이 인지한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의 변화를 느낀다. 하루는 24 시간이다. 시계의 시간(clock time)은 잴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이 마음시간은 아니다. 신체가 노화하면 뇌가 이미지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늘여진다. 덩달아 이미지의 변화 속도도 느려진다. 나이와 함께 바뀌는 안구의 움직임이나 몸집 등 신체 특성의 변화가 이를 매개한다.
사람들은 흔히 젊은 시절 기억이 많은 것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더 깊거나 더 의미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빠른 속도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베얀 교수는 그 원인을 인체의 물리적 변화에서 찾는다. 세월과 함께 신경망이 성숙해지면, 즉 신경망의 크기와 복잡성이 커지면 신호를 전달하는 경로가 더 길어진다. 또 신호전달 경로도 나이가 들면서 활력이 떨어져 신호의 흐름이 둔해 진다.
이런 신체 변화는 총체적으로 새로운 심상(mental image)을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를 떨어뜨린다. 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어른들보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빈번하게 움직이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베얀 교수는 설명한다. 아이들은 이미지를 어른들보다 빨리 처리하기 때문에 눈동자를 더 자주 움직이게 되고, 자연히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정보를 엮어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똑같은 물리적 시간에 어른이 받는 이미지 수는 어린 사람보다 더 적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인지한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러니 감지한 이미지가 더 적은 어른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베얀 교수의 설명이다.
영국 배스대의 수리생물학 교수인 크리스티안 예이츠는 마음시간을 대수 비례 함수로 설명한다.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즉 10살 아이에게 1년은 자신의 삶의 10%이며, 20살 청년에게 1년은 자신의 삶의 5%이다. 2살짜리가 1년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20살짜리가 경험을 증가시키려면 30살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5~10세, 10~20세, 20~40세, 40~80세 구간이 각각 같은 의미를 갖는다. 5~10살의 5년 동안 겪는 경험이 40살부터 80살까지 40년간 겪는 경험과 같은 셈이다.
마음시간의 과학적 원리가 젊은 시절의 경험이 그만큼 소중함을 깨우쳐 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리학 관점에서 본 마음시간의 비밀은 습득 이미지 변화로 느껴 신호전달 경로가 길어지고 속도도 느려져 같은 시간 받는 이미지 수가 적어진 결과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자꾸만 빨라지는 자신의 시계를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까? 자신의 시계가 자꾸만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스스로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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