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정부가 현재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는 비급여의 전면급여화 방안 중 최악의 시나리오는 저질 급여화로 인해 정책의 순기능은 실종되고 환자와 의료기관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만 발생시키게 되는 경우이다. 또한 비급여의 급여화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방안 중 가장 후순위 대책이며 비용대비 효과 면에서도 매우 비효율적이다. 중증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은 재난적 의료비지출의 주된 원인이므로 우선적으로 급여대상을 확대하고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치료적 비급여는 대체불가한 필수적 의료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한 경우가 많고 보장성강화 측면에서도 우선순위에서 한참 먼 경우가 많다.
비급여는 일정 부분 수요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로봇수술은 전통적인 수술과 비교해 기기에 숙련된 의사가 시술할 경우 미세하고 섬세한 수술에 적합하다는 상대적인 장점도 있지만 기존의 수술법을 대체해야 할 정도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부족하기에 환자의 선택에 의해 100% 본인부담으로 자유로운 치료가 가능했다. 도수치료나 하지정맥류 수술 등도 치료적 목적이나 미용적 목적 등 구별이 모호한 부분이 있으나 지금까지는 비급여 본인부담으로 시술이 이뤄져왔고, 이를 실손보험 등으로 충당해 왔다. 그러나 향후 이를 예비급여나 선별 급여화하면, 의사는 의학적 필요성 여부의 판단이 모호한 경계 부분에서 심한 통제와 견제를 받고 수시로 진료비 관련 분쟁에 휘말리는 등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이는 어쩌면 해당 진료과의 생존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현 정부에서 발표한 보장성 강화대책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보장성강화 대책에 비급여의 전면급여화라는 임팩트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더해 요란하게 발표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냥 두어도 노령화로 인한 의료비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 정책까지 반영하면 소요재정은 기존 발표한 규모보다 몇 배나 더 증가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를 충당하려면 보험료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러한 부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책 실현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의료공급자에게 돌아가야 할 재원이 미집행 되어 누적된 건보 적립금으로 원가보전이나 수가 정상화를 전제하지 않고 비효율적인 '비급여의 급여화'에 우선 투입한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심히 어긋난다.
게다가 예비급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오직 총 진료비 억제만을 위한 것이며 지불제도 변화와 관련한 총액계약제로의 준비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10%를 보장하고 150%를 규제하는 봉이 김선달식 셈법을 현실화하려는 발상은 참으로 갑질의 극치이고 항상 을의 위치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의료공급자들도 각성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규제와 통제도 적당히 해야 한다. 비급여의 급여화는 매일 매일 달걀을 낳아주는 암탉의 배를 갈라 잔칫상에 올려 오늘 하루 배불리 먹고 보자는 것이고, 쓰러지는 한국 의료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비급여 기둥을 빼내 축제용 화목으로 쓰자는 것이다. 또한,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으로 치러질 향후 5년 동안의 잔치 비용은 결국 다음 세대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빚으로 넘길 수밖에 없다.
모든 치료적 비급여를 90% 본인부담 형태의 예비급여로 정해 운용해 보고 급여화 할 것인지 비급여로 할 것인지 결정하겠다는 발상 역시 결국 급여화가 우선적인 목적이 아니라 비급여 관련 자료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10% 짜리 예비급여를 이용하겠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관련 당국자도 굳이 이러한 속내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비급여는 오로지 비급여 의료행위의 통제가 그 목적임이 자명하다. 이는 환자들에게는 시기를 놓쳐 혹은 급여조건에 못 미쳐 최선의 치료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해 치료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고, 의료계로서는 일부 개원 진료과목의 퇴출을 시작으로 의료계 전체를 몰락으로 이끌 총액계약제라는 재앙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예비급여로 대표되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시도는 비록 의료계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시도이지만 진정 높이 사야 할 꼼수라고 생각한다. 의료계도 이를 계기로 건강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단호히 거부하고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민간의료기관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징발돼 혹사와 착취를 당하고 버려지는 수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강제지정을 파기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단체계약을 쟁취해야 한다. 의료계는 법적·물리적 투쟁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를 관철해야 한다. 예비급여라는 형태의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시도는 의사와 환자, 국민 모두에게 재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