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세계 응급실·중환자실을 가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병원들의 필수의료 중심인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어떤 모습이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메디게이트뉴스는 일본과 미국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두루 탐방한 다음 국내 필수의료 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속적인 기획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본 기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①응급·중환자 살리는 도쿄대병원의 ‘마지막 요새’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대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병원들의 필수의료 중심인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어떤 모습이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요. 메디게이트뉴스는 일본과 미국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두루 탐방한 다음 국내 필수의료 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속적인 기획 시리즈를 이어갑니다. 본 기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①응급·중환자 살리는 도쿄대병원의 ‘마지막 요새’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8월 초 일본의 응급·중환자치료(구급·집중치료) 시스템을 알아보기 위해 찾은 도쿄대학병원(東京大学病院)은 예상과 달리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환자들로 매일같이 북적이는 서울 소재 대형병원들에 익숙해진 탓에 여유로운 도쿄대병원의 분위기가 되레 낯설게 느껴졌다.
실제 도쿄대병원의 지난해 외래환자 수는 65만4232명, 입원환자 수는 32만7537명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아산병원(외래 345만7690명, 입원 90만9113명), 서울대병원(외래 245만998명, 입원 55만7645명)에 비해 적다. 같은 기간 수용한 응급환자 역시 1만2315명으로 서울아산병원(10만5491명)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병원을 찾는 환자 수와 무관하게 도쿄대병원은 뉴스위크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서 국내의 내로라 하는 병원들보다 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등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을 자랑한다. 그런 도쿄대병원 내에서도 구급·집중치료학과는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도쿄대병원의 ‘마지막 요새’로 불리는 곳이다. 20여명의 집중치료·구급의학·정형외과 전문의를 포함한 의료진들이 24시간 365일 2교대 체제로 도쿄 지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연신 땀을 훔치며 도쿄대병원의 구명구급센터·응급실 외부부터 살펴봤다. 외부에는 응급실 내부와 연결돼 있는 구급차 전용 입구가 마련돼 있었다. 구급차 대신 걸어서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병원 내에 위치한 구급외래 접수처에서 접수 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도쿄도 내에서 발생한 응급환자의 경우 현장으로 출동한 도쿄소방청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해 이송할 병원을 결정한다. 응급환자를 받는 병원은 수용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1~3차 구급병원으로 나뉘어지고, 3차로 갈수록 응급·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받는다.
도쿄대병원은 2·3차 구급병원으로 병원 내에 구급대원들이 연락할 수 있는 직통 전화(핫라인) 2대가 설치돼있다. 어느 핫라인이 울리느냐에 따라 곧 이송돼 올 환자의 응급·중증도를 알 수 있다. 대응 가능한 전문의가 부족하거나 병상, 수술실이 꽉 차 이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일도 있다.
병원 내부로 들어온 후에는 도쿄대병원 구급·집중치료과 과장인 도이 켄토(土井研人)교수의 안내로 응급실과 중환자실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구급·집중치료과 의사가 응급환자에 대한 초기 대응을 담당하는 구명구급센터·응급실에는 긴급영상검사를 위한 CT·엑스레이와 함께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방(초료실·初療室)이 3개, 그 외에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환자들을 위한 베드 4개가 마련돼있었다.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구강외과 전용 진찰실도 있어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한 장소에서 치료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었다.
도쿄대병원은 2·3차 구급병원으로 기본적으로 응급실에서 경증 환자는 받지 않는다. 대신 평소 도쿄대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온 환자들이 응급실을 찾은 경우는 경증이더라도 수용하며, 각 진료과 의사들이 진료를 하게 된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는 상태에 따라 중증환자는 구급·집중치료과 전용의 EICU(8병상)로, 긴급입원이나 경과 관찰이 필요한 환자는 응급병동(12병상)으로 옮겨져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다. EICU 병상은 총 8개로 전부 1인실로 구성돼있다. 도이 교수에 따르면 이전에는 EICU 병상 8개 중 음압 시스템이 갖춰진 2개만 1인실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공사를 거쳐 전부 1인실로 탈바꿈했다.
기자가 병원을 방문한 날에는 EICU 병상 중 일부에만 환자들이 있어 그나마 병상에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도쿄대병원 구급·집중치료과 의사들이 돌보는 환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EICU 외에도 중증심혈관질환 환자, 이식 수술 환자 대상의 제1ICU(16병상)와 일반 병실에서 치료가 어려운 중증 환자, 수술 후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제2ICU(18병상)도 각 진료과와 함께 구급·집중치료과가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구급·집중치료과는 신속대응시스템(Rapid Response System)에 따라 입원 환자 중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대응에 나서게 되며, 대규모 재해 발생시 긴급의료부터 중장기적인 보건·예방활동까지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재해의료 전문 의료인 육성을 목표로 재해의료매니지먼트부(DMM)도 운영하고 있다.
도이 교수는 도쿄대병원의 구급∙중환자치료 시스템의 강점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 치료 시스템이 매끄럽고 긴밀하게 연계돼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구급외래로 오는 환자 중 80%는 귀가, 20%는 입원하고 입원하는 환자 중 3분의 1가량은 ICU로 들어온다”며 “이 전 과정에서 구급·집중치료과가 각 진료과와 연계해 끊김없는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구명ICU와 제1∙제2ICU 등의 환자를 모두 우리가 보고 있어, 어느 한쪽에 ICU가 부족하면 다른 쪽으로 이동시키는 등 전체 시스템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