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가 '각 대학 상황에 맞게'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 가운데, 이전부터 의학교육계 안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관련 수정안 부칙에 '추계위 심의에도 불구하고 2026학년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학의 장이 2025년 4월 30일까지 모집인원을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상 각 대학 상황에 맞게 내년도 의대증원을 대학 총장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 논의 안은 총장이 정원 재조정 권한을 갖는 방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의료계와 당장 협상 가능성이 적은 정부가 책임회피 및 내년도 의대정원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시 '면피성 임시방편'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대 학장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되면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각 대학 총장들에게 2026학년도 정원을 동결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하기까지 했다.
총장-의대학장들 정원 문제 의견 차이 심해…결국 교육부 말 듣는 총장 마음대로
20 메디게이트뉴스 취재결과, 의료계 내 의학교육계 안에서도 정부안과 비슷한 대학별 정원 조정 논의가 있었다. 대학별로 정원과 의학교육 시설, 인프라 상황이 다르니 각 대학에 맞는 정원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당시 논의 내용을 보면, 대학별로 올해 정원 증원 분, 향후 의학교육 상황 등을 고려해 의대 정원을 각 학교가 결정하도록 하는 안이 포함됐다. 각 대학 개별 정원안이 합산되면 이를 2026학년도 최종 의대정원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학교 총장이 아닌 각 의대가 주체적으로 개별적 교육 환경을 고려해 선발 정원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정부안과 다른 점이다.
의학교육계 고위 관계자는 "지금 발표된 정부 안은 최악의 수다. 의학교육 당사자가 아닌 총장이 정원 문제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정원 조율이 힘들다"며 "기존에도 총장과 의대학장 사이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서 학장들이 사표를 내는 등 사단이 났는데 총장이 전적으로 결정하면 결국 달라지는 건 전혀 없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의대 교수는 "총장들은 교육부와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사실상 교육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또한 이들은 대학 운영 관점에서 정원을 늘리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다"고 지적했다.
정원 결정 과정에 대학 총장 권한이 막강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의대학장들 사이에선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의대가 속한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사운영 정상화를 위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2026학년도 의대정원은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동결하고 2027년 이후 정원은 추계위원회에서 추계를 바탕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KAMC는 "2026년 의과대학 정원은 2024년 정원인 3058명으로 재설정하고 2027년 이후 의대 정원은 의료계와 합의해 구성한 추계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함을 요구했다"며 "의대 입학 정원 관련 각 대학의 이해가 다를 수 있지만 현 상황의 해결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함께 해달라"고 전했다.
또 "2025년 1학기 중 학생 복귀가 되지 않고 2학기 이후로 늦어지면 2년째 의사 배출을 할 수 없게 되고, 의학교육 시스템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장 주도 의대정원 결정안 왜 나왔나…'원점재논의' 해석 놓고 의-정 좁힐 수 없는 간극
정부가 '총장 주도 의대정원 결정안'을 내놓은 배경으론 2026학년도 정원 문제를 두고 의료계와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6년 의대정원을 결정해야 될 시기는 1~2달 안으로 다가오는데, 추계위는 아직 위원 구성이나 독립성 등 쟁점이 남아 있는 데다 의료계와 협상테이블에 앉게 될 가능성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는 최근 2026년 의대증원 '원점재논의'가 가능하다며 의료계에 대화에 나서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협상이 시작되기 어려운 이유는 '원점재논의'에 대한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의협 간 원점재논의 기준이 상이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존 3058명 정원을 원점으로 보고 '3058명+α'를 원점재논의의 기준선으로 평가하는 반면, 의협은 2025년 정원이 크게 늘어난 만큼 내년엔 정원을 뽑지 않는 '0명'을 원점재논의 기준으로 보고 있어 입장 차이가 크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계와 협상에 난항을 겪는 정부가 책임 회피 및 자기 중심적 문제해결을 위해 교육부의 영향을 받는 총장들이 정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교묘한 악수를 들고 나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