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현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강행할 경우 인구 10만 명당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미국과 일본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앞서 의대 정원을 늘린 영국과 프랑스, 그리스는 의대 증원의 역효과를 경험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4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의과대학 입학정원 변동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2025년도 인구 10만 명당 의대 정원 한국 12.85명…미국 9.33명, 일본 10.48명
지난 2월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한 뒤로 의료계의 격렬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5월 일부 조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의대 정원은 현 입학정원의 65% 이상을 대폭 증원하게 된다.
이에 의정연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미국과 일본의 인구 10만 명당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비교했는데 그 결과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의 입학정원을 훨씬 넘어섰다.
해당 비교 분석에 따르면 2024년 7월 현재 기준 우리나라는 의대 3058명와 한의대 750명을 포함한 입학정원이 3808명으로 인구 10만명당 입학정원은 7.43명이다.
미국은 2023년도 의대 정원이 3만1261명으로 10만 명당 의대 입학정원은 9.33명이며 일본은 2023년도 의대 정원 9384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입학정원 7.55명으로 한국과 비슷하거나 약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정부 계획대로 2025년 의대 정원이 1552명이 늘어나면 의대 총 정원은 4610명, 한의대 정원 750명을 포함한 의사양성 대학 총 입학정원은 5360명으로 늘어나며, 인구 10만 명당 입학정원도 10.48로 늘어난다.
의대 정원이 2000명 증가하게 되는 2026년에는 의대 5058명과 한의대 750명을 더한 총 정원 6558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입학정원은 12.85로 늘어나 우리나라보다 인구 수의 6배, 2배 많은 미국과 일본의 숫자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
의정연은 우리나라에 앞서 의대 정원을 늘린 OECD 국가들의 사례도 소개했는데, 먼저 정원을 늘린 영국은 정원증대 정책의 주도가 정부가 아닌 의과대학연합체 그리고 국가 의료제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1만 명에 가까운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는 영국은 늘어난 정원에 따른 전공의 교육에 대한 지원비 충당과 교육장소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증원 실시 몇 년 만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의정연은 "영국은 한해 만 명 가까이 배출되어도 의업을 사직하거나 해외로 나가는 인력이 연간 1만2000명을 넘고 전공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으로 그리고 영국 출신 의사는 절반이 약간 넘게 됐다"며 "증원에 대한 효과가 사실상 없다. 다행히도 인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과거 영국 식민지 의사의 유입이 대폭 증가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역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렸으나 600만 프랑스 본토 주민은 정작 1차 진료의 또는 여타 보건의료인력을 접촉하기 어려운 '의료사막화' 현상을 겪고 있었다.
의정연은 "프랑스는 의과대학 정원증가가 의료사막화를 완화하지 못했다. 과거 의과대학 정원증가의 의료사막에 대한 효과가 전무해 과거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던 공공의료 선두주자의 자리가 무색해지고 1년 내내 각종 의사와 보건의료직의 파업과 휴업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우리나라와 같은 무계획 즉흥적 의대정원 증가를 시도하는 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리스는 의사 배출이 인구 1000명당 6명을 초과할 정도로 의대 정원을 많이 늘렸으나 여전히 공공의료기관의 공석이 남아 있고 많은 도서지역에는 휴일기간 중 응급의학, 중환자 의학의 문을 닫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연은 "그리스 서지방이나 시골지역의 의사 부족현상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사수를 통제할 기전이 없는 나라로 의대증원이 보여주는 역효과를 경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이 크다고 평가했다.
복지부 공무원들, 1990년대부터 의대 정원 감축 주장…"증원 시 의학교육생태계의 파괴 불가피"
특히 의정연은 복지부가 2000년 7월 의약분업 이후 의료계를 달래기 위한 방안으로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감축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당시 의과대학 정원 감원은 1990년대 이전부터 이뤄진 무리한 의과대학 신·증설과 이로 인한 의사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연구 결과, 의학 교육의 부실 문제 등으로 인해 의과대학 정원 감축 논의에 따른 것으로 당시 복지부 공무원들도 이를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복지부 주무과장들의 정책기고문에서 이미 20세기 말 우리나라 의과대학 정원 감축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지난 2002년 이후 시행된 의대 입학정원 10% 감축에 대한 근거 논리가 형성되기 시작됐다.
실제로 전 보건복지부 과장은 "의사인력의 공급 확대가 의사 개인소득의 하향 조절, 농어촌 지역의 의사 수 증가 등의 효과를 가져오기보다는 국민 의료비 앙등이라는 역효과를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의정연은 "의대 정원 감축 실행에서 당시 복지부 주무과장들은 관료로서 의료 인적자원의 관리에 대한 전문성을 보여주고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으로 필수의료 붕괴의 해결이나 의료비 증가는 없을 것이라는 현재의 보건복지부의 주장에 반하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과거의 복지부 관료가 명료하게 잘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당시 기고문은 의사인력 추계의 불확실성과 의사인력관리(Heath Workforce Regulation)의 중요성도 잘 지적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필수의료 패키지’가 담고 있는 거대한 내용도 사실은 90년대 말부터 정권교체마다 만드는 특별위원회에서 이미 모두 거듭 언급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을 못하는 실정에서 의료계가 반대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정부도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의정연은 1500명~2000명으로 일시 정원 증원은 현재 의학교육생태계의 참혹한 파괴 현상을 초래할 것이며 결코 국민의 보건의료 성과와도 연계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정연은 "잘못된 정책과 정치적 상황이 맞물릴 경우 대학의 폐교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경험한 바, 정부는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