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해외 사례에 비춰봤을 때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서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고려대 의과대학 안덕선 명예교수(전 의료정책연구소장)는 최근 메디게이트뉴스가 개최한 의대정원 관련 긴급진단에서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의사를 늘려 소위 ‘낙수과’를 만드는 식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전문성이 떨어지다보니 나오는 얘기”라고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계획을 비판했다.
[관련 동영상=긴급 진단, 의대정원 늘려도 필수의료 지원이 저조할 명백할 이유]
그리스, 유명 관광지에도 의사 부족…스웨덴, 수술 받으려 3달 넘게 기다리기도
안 교수는 우리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많은 국가들의 사례를 열거하며 의사 수 확대가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그리스의 경우 지난 2007년 1000명당 의사 수가 5.35명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두 배 수준에 달했지만 대도시 집중으로 인한 의료취약지 문제가 있었고, 인구당 의사 비율과 주민 건강 간 상관관계도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 처치, 약제 등의 의료 과소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안 교수는 “지역, 직역, 전문과의 불균형이 심각했고 인기과에 전공의 지원이 쏠렸다”며 “아테네의 실직 의사와 불완전 고용 비율이 28%에 달하면서 1만7500명의 의사가 해외로 이주했다”고 했다.
이어 “2만명 이상의 전문의 과잉공급 등으로 상황은 계속 악화했고 2020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6.3명까지 늘어났다”며 “그럼에도 현재 유명 관광지를 포함한 도서지방에는 의사가 부족하다. 임시로 섬에 근무하는 의사에게 상여금을 월 1800유로(약 253만원)를 주겠다고 하는데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 2017년 기준 1000명당 의사 수가 4.3명인 스웨덴도 긴 수술 대기 기간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웨덴은 법적으로 수술 대기 기간을 90일 이내로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90일 이상 대기하고 있다.
안 교수는 이처럼 의사를 무턱대고 증원할 경우, 기대하던 효과는 커녕 되레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에서 (의사인력 확충을) 해봤더니 양성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적인 낭비가 크고, 양적 해결의 결과로 오히려 도시 집중 현상이 악화됐다”며 이 외에도 ▲의료시설 신설 및 장비 구축에 따른 비용 지출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적 작동 방해 ▲저수가 시대의 의료인력 간 경쟁 발생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의료 접근성 세계 최고…의사 인력 조정 전 보건의료발전계획부터 세워야
안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수(2.6명)가 OECD 국가들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 평균(3.7명)보다 낮지만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가정의학과 전문의 진료를 받으려고 해도 4주를 기다려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하루에 전문의 진료가 3회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환자 입장에선 굉장히 편하다”며 “외국에서 살아 본 사람은 그 가치를 알 것이다. 의료 접근성이 최고인데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니 어리둥절하다”고 했다.
안 교수는 의사 인력 조정은 의료체계 전반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한 계획을 세운 뒤 그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까지 정부는 이 같은 기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지금처럼 싸고 빠른 의료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이제 한 번쯤은 의료체계를 어떻게 꾸려갈지 형태를 정해야 한다”며 “그러면 그 계획에 따라 의사가 얼마나 필요하지를 추계하고, 단기간에 해결이 불가능하면 단기 계획은 어떻게 짤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2000년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르면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하는데, 지금 복지부는 그런 방대한 규모의 일을 할 구조적 역량이 안 된다”며 “2~3년마다 보직 순환을 하고 입에 맞는 연구를 하는 기관만 있으니 될리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