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과연 누가 무엇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의 뜻에 맞서려 하는가. 오늘의 치욕적인 의협 대의원회의 결정은 살아있는 동안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 채 회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당당해하는 모습에서 의협의 미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27일 대한의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 회장과 임원 불신임안,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이 모두 부결된 가운데, 박상준 대의원 등 경남대의원 5명이 곧바로 대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경상남도의사회 대의원은 9명인데, 회장과 의장을 빼고 선출직 대의원 7명 중 5명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비록 임총에서 최대집 회장 탄핵안은 부결됐지만 최 회장 탄핵에 찬성한 대의원이 전체 203명 중 절반 이상인 114명(56%)으로 반대 85명(42%) 보다 많았다. 이에 따라 대의원회가 회원들의 여론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내부의 비판과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준 대의원은 “오늘 저는 그동안 활동해 온 대의원직을 내려놓으려 한다. 부당한 정책에 맞서 항거한 전공의의 분노가 가라않지 않았고 의과대학 4학년 학생들이 국가고시를 치르지도 못한 채 정부와 국민에게 사과를 강요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품고 있던 의사협회에 대한 작은 희망의 불씨마저 꺼져버렸다”고 말했다.
박 대의원은 “방어를 위해 만든 견고한 성에 둘러싸인 채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의사협회에서 회원을 위해 할 일은 물러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동토에 버려진 의과대학 4학년 학생의 공허한 눈빛이 아른거려 어떻게든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이들을 살리려 발버둥 쳤지만 그들의 생각은 저와 달라도 너무도 달라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대의원은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야 할 대의원이 회원들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이를 말릴 힘이 없어 지켜봐야 했다. 이런 무력감에 더는 대의원의 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라며 “회원에 의해 선출된 제가 스스로 직을 떠나는 무책임한 행동에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빛과 소금이야 할 대의원회가 회원의 뜻을 거스르고 독선에 빠져 의협을 위기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오늘의 대의 총회가 가져올 파장을 어떻게 감당할지 차분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박 대의원은 “조금이라도 회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고 고민한 제가 정작 회원을 위해 이룬 것 없이 이렇게 물러나게 되어 너무도 송구스럽다”라며 “무능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의협을 바로 잡지 못하고 떠나지만, 새로운 대의원이 나서 회원을 위해 봉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올바른 대의원이 나타나기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최장락 대의원은 “최대집 회장의 탄핵은 과반수 이상인 56%만 찬성해 탄핵 조건(3분의 2 찬성)인 67%에 미치지 못해 부결됐다. 이제 젊은 의사, 전공의 전임의들이 의협을 독립해 나갈 전망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최 대의원은 “상당수가 의협을 떠나면 앞으로 의협 회비 납부율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졸업하는 의대생, 전문의 시험 보는 전공의 등 신규 의사회비로 살아가던 의협이 이제 어디서 돈을 만들어 의협을 운영할지 모르겠다. 의협의 존립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대의원은 이어 “이번 임총은 한 마디로 충격, 탄식, 허탈, 분노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라며 “대의원이 전체 회원들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했을 때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도의사회장단도 회원들 민심을 읽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근 대의원은 “오늘의 임총을 즐거운 장례식장, 호상(好喪)으로 표현하고 싶다”라며 “우리 새끼들이 배고프고 아프다고 울고 있는데, 남의 새끼가 굶고 아픈 것을 걱정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진압군으로 출정했는데 결론은 반란군으로 퇴각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이 대의원은 “오늘 더 이상 중앙대의원의 자리에 있을 이유를 없음을 확인했다”라고 했다.
이 대의원은 후배 의사들에게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다”라며 “선거에 임할 때 지연과 학연을 초월한 투표를 하고 여러분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퇴 의사를 밝힌 정인석 대의원은 총회장에서부터 항의에 나섰던 인물이다. 정 대의원은 “의협 대의원회가 회원들이 그토록 바라는 최대집 회장 탄핵안을 부결시켰다. 회원들의 참관도 못하게 막고 발언권도 주지 않는다. 이럴거면 대의원회를 해산하라”라고 말했다.
이날 총회장 입구에는 20명 내외의 젊은 의사들이 피켓시위를 계속 진행했으며 방역 관계로 회원들이 임총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피켓에는 '대의원 여러분, 역사에 오명을 남기시겠습니까' '의협 집행부 탄핵과 비대위 구성, 의료 바로세우기의 시작입니다' '대의원 여러분,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등의 문구가 쓰여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