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분만을 비롯한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의료사고에 따른 과도한 사법 부담부터 줄여야 한다는 산부인과 개원의들의 호소가 나왔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발생할 수 있는 나쁜 결과를 이유로 고액 배상과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수가 지원만으로 의료진의 이탈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18일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22차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과 공적 배상체계 마련, 개정 의료분쟁조정법 보완을 촉구했다.
“수가 정상화와 사법 리스크 해소…필수의료 살리는 두 가지 조건”
이날 김동석 명예회장은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핵심 과제로 수가 정상화와 사법 위험 해소를 꼽았다.
김 명예회장은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법은 저수가를 정상 수가로 만들어 주는 것과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막아 주는 것”이라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사고 이후 과도한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을 함께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위험한 진료를 피하는 것은 예견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 명예회장은 “과도한 배상도 받고 형사처벌도 받는데 어떤 의사가 그런 위험성 있는 진료를 하겠나”라며 “분만하는 의사가 없어지는 이유가 사법 리스크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의사만을 위한 법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험 등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신속한 배상을 제공하고, 의료진에게는 소신 진료 환경을 보장해야 환자의 치료 기회도 지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의사들이 위험한 진료를 하지 않으려 하면 결국 환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만 보고 당시 판단에 책임 물어선 안 돼”
김재유 회장은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에 우려를 표하며 의료행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진료 당시의 상황을 기준으로 의사의 판단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일본 오노병원 사건을 언급하며 산모를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판단이 사망이라는 결과만으로 형사절차의 대상이 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처벌에 집중하기보다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을 막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의사의 의무가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무는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완치시켜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긴박한 진료현장에서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 항상 알 수는 없다며 “의사의 판단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다. 신이 아니고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손해액 전액 지급을 형사특례의 전제로 삼는 구조도 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액 배상 사건에서 의료진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보호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국가가 보험료를 지원하는 책임보험 가입을 통해 기소 면책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판결 이후뿐 아니라 조정·합의 단계에서도 신속하게 배상하는 공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대한 과실의 범위와 설명 의무의 예외 역시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를 지킬 의사를 보호해야…지금 있는 병원부터 문 닫지 않게”
대한의료정책학교 최한나 교장(강릉의료원 원장)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의료진을 보호하는 것이 지역 환자의 진료 기회를 지키는 일이라는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최 교장은 “어느 의사도 환자를 죽이고 싶은 의사는 없다”며 “최선의 진료를 다함에도 불구하고 다 살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의학의 한계”라고 말했다.
그는 나쁜 결과가 발생하면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필수의료를 선택할 의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수가와 의료분쟁 문제를 경고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최 교장은 “그 지역의 환자를 지키는 것은 그 환자를 살릴 의사를 지키는 것”이라며 “의사를 지키는 것이 환자를 지키는 것이라는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 투자 역시 기존 지역 의료기관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새 시설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과 함께 현재 지역에서 진료하는 민간 산부인과가 더 이상 문을 닫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지금 지키고 있는 회원들이 한 분 한 분 더 문 닫지 않게 해 달라”며 “그 지역의 민간 의료기관이 못 하는 것이 있으면 공공의료기관이 무엇을 할 것인지, 거기에 투자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도 의료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영업방해, 온라인 괴롭힘으로부터 의료기관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송은 이겼는데 병원은 문 닫았다는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의료진 보호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 필수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과제라고 밝혔다. 분만 의료기관 지원과 별개로 분만을 담당하는 봉직의에게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