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김웅철 칼럼니스트] ‘의사를 확보하라.’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이웃나라 초고령사회 일본의 지상과제다. 특히 일본의 지방 의료는 젊은 의사들의 도심 쏠림으로 파산 직전이다. 최근 일본 지방선거에서는 후보들의 의사 확보 공약이 뜨거운 이슈로 부상할 정도다.
문제는 2025년이다. 단카이세대라 불리는 700만명 베이비부머 전원이 75세로 진입하는 해다. 단카이세대가 전원 후기(後期)고령자에 합류하면서 일본의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의사부족 상황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와 의료계, 지자체는 ‘2025 문제’를 의료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컨틴전시 플랜 ’(contingency plan)을 가동 중이다. 이렇게 지방 정부가 사활을 걸고 진행중인 의료인 확보 방안들 가운데 눈길을 잡는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한다.
퇴직 의사를 다시 현장으로 ‘시니어 닥터’제도
일본 동북부 이와테(岩手) 현(県: 한국의 도道에 해당)의 한 작은 마을 스미타초(住田町). 지난해 여름 7대에 걸쳐 360년 동안 이어져온 이 마을 유일의 개인종합병원이 문을 닫았다. 현지 매스컴은 지역 의료 붕괴의 상징적인 현장이라며 이를 기획 보도했다.
원장의 나이는 92세. 장남이 이와테 병원에서 근무 중이지만 가업을 잇지 않기로 했다. 인구 감소로 병원은 10년째 적자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90세의 노의(老醫)는 생계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식에게 가업을 강요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마을 고령자들은 버스로 50분 거리에 있는 인근 도시의 병원에서 불편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 현의 의사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의료기관이 48곳이나 감소했다. 이 현의 10만 명당 의사수는 204명(2014년 기준), 전국 40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상황이 심각하자 이와테 현에서 2015년부터 비상대책을 본격 가동했는데, 이 중에 ‘시니어 닥터 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시니어 닥터제도는 정년퇴직한 은퇴자를 다시 정식 의사로 재고용하는 것이다. 기술과 의욕이 있는 은퇴 전문의를 대상으로 최대 5년간 현립병원의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는데 지난해 4월까지 시니어 닥터 16명이 일하고 있고, 최고령은 75세였다. 현청에는 의사지원을 담당하는 부서도 있는데 이 곳 관계자들은 “이런 의사부족 상황에 의욕 있는 시니어 닥터가 그나마 해소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야자키 현(宮崎県)에서는 ‘마마(엄마) 닥터 지원제도’를 도입해 시행중이다. 현의 의사회가 운영하는 보육지원 서비스가 그것인데, 병원에 근무중인 엄마 의사들의 갑작스런 야간업무나 출장, 장보는 시간까지 아이를 맡아주고 송영(送迎) 서비스도 해주고 있다. 여성 의사들이 출산, 육아 등과 연수시기가 겹치면서 병원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건실한 육아지원 서비스를 통해 여성들이 지역 병원에서 오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목적에서다.
대상은 생후 6개월에서 12세까지의 자녀가 있는 미야자키 시내 여성 의사다. 보육 서포터는 육아경험이 풍부한 여성고령자들인데, 이용 요금은 1시간당 600~800엔, 숙박은 1만 엔 정도다.
이 서비스는 도쿄여자의과대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2015년부터 시작했다. 첫해년도에 18명이 서비스를 받았고 올해 45명으로 3배나 늘었다. 남성 의사들의 문의도 많다고 한다.
일본의 여성의사 비율은 21.1%(2016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44.8%(2015년)에 크게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이다. 더구나 미야자키 시는 2016년도 18%에 그쳤다. (한국은 2017년 기준 25.4%)
젊은 의사 유혹하는 지방병원의 매력적 연수제도
매력적인 연수제도를 활용해 젊은 의사를 끌어들여 의사 부족 사태에 대응하는 곳도 있다.
시마네(島根) 현 마쓰다(益田) 시는 젊은 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수 기간(2년)의 70%는 시의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30%는 자신이 희망하는 분야의 개인병원에 근무하면서 개업의(開業醫)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현장의 기술을 해당 분야 베테랑 전문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렸다.
젊은 의사들이 도심을 선호하고 최신 진료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중에는 지역의료에 관심 있는 이들도 분명 있다. 현재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연수 제도가 없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마쓰다시의 연수제도가 주목을 끄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장학금 등 금융지원이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의사 확보에 나서는 사례는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이바라키 현(茨城県)의 미토(水戸) 시에서는 올해부터 학자금 지원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 시내 고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입학부터 대학 졸업시 까지 최장 6년간 학자금을 융자해준다. 다만 지원 받는 기간만큼 시내 병원에서 근무하면 변제를 면제 받는다. 사실상 학비를 지원해주는 셈이다.
지원 대상은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에 한정된다. 세 분야 모두 인력난이 가장 심한 분야다. 특히 응급의학과는 고령자 증가에 따라 의사 수요가 급확대되고 있지만 희망자가 적어 부족 정도가 심각하다.
도쿄의 ‘경력단절 의사 복귀 프로그램’ 눈길
의사부족 문제는 지방만의 고민이 아니다. 후생노동성 인구추계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증가하는 고령자 가운데 도심의 고령자 비중이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도쿄가 전체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머지않아 의료의 폭발적 수요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에 도쿄도는 조만간 닥쳐올 의사부족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경력단절 의사의 복귀 지원 제도다. 의사 면허가 있음에도 육아나 부모 간병 등의 문제로 병원을 떠났던 의사들이 다시 현업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신 의료기술 연수를 제공한다. 첨단 MRI(자기공명영상장치) 판독법, 마취 관리 방법 등 최신 의료기술은 물론, 소아 정신과 등 담당의의 진찰에 동석해 임상 경험을 할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다.
연수기간은 2~5개월로 연수 장소는 도쿄 소아종합의료센터, 정신과, 응급의학과 등이 있는 도립 병원 8곳이다. 모두 의사 부족 상황이 심각한 의료분야들이다. 연수 중에는 비상근 임시직원 자격으로 근무하고 급여는 도쿄 도가 지급한다. 연수가 끝나면 도쿄 도내 민간 병원 등 의료기관에 복직을 권유한다. 하지만 강제는 아니다.
일본 정부도 지역의료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2025년 문제’ 대응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이미 각 시도에 ‘의사확보계획’을 의무화했으며 특히 지방 의료 위기와 관련해 산간벽지에 근무하는 의사 수의 목표치와 구체적인 목표 실천방안을 마련하도록 각 지자체에 의무화하고 있다.
인센티브 제도도 있는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일정기간 근무한 의사를 국가가 인증해주는 제도를 오는 2020년부터 도입할 계획이다. 국가인증을 받은 의사는 향후 병원장 등 병원경영의 관리자 선발시 평가기준에서 가점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수여할 방침이다.
올 여름 일본 명문의과대학인 도쿄의과대 의학부가 올해 입시에 여자 수험생들의 합격자 수를 억제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대학 측은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휴직을 하는 여성 의사들이 많은데, 그로 인해 대학 계열 병원이 의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학 측의 해명에 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사태의 본질은 초고령사회 일본이 겪고 있는 의사부족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