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김웅철 칼럼니스트] 초고령사회 일본에 최근 ‘개호(介護) 의료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고령자 의료시설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개호(介護)'란 간병과 수발을 뜻하는 말로 '개호 의료원'(이하 간병 의료원)은 간병과 의료의 기능을 합쳐놓은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합쳐진 것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고령화 대책으로 나온 의료+간병, 간병 의료원 4583병상
일본 정부는 갈수록 심화하는 고령화 대책으로 의료와 간병의 일체화를 추진해 왔다. 간병 의료원은 중간 결과물 중 하나다.
간병 의료원은 올해 4월 첫 선을 보인 이후, 현재(9월말 기준) 63개의 의료원(4583 병상)이 전국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3개월 전 21개(1400 병상)였던 것에 비하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간병 의료원에서는 상주 의사의 진료와 간호사·요양사의 간병 수발, 임종 케어, 여기에 다양한 생활서비스가 제공된다.
시설 형태도 입주자들의 생활편의를 위해 공용거실이 넓어지고, 입주자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해 다인실의 침상 구분도 커튼이 아닌 가구 등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 간병의료원 내에는 레크리에이션룸과 다실이 있어 입주자들의 생활의 질(QOL)이 유지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간병 의료원은 ‘의료+간병+생활지원+거주기능’을 겸비한 고령자 의료생활복합시설인 셈이다.
다양한 고령자 주거시설과 의료기관들이 있는 일본에 이제와 새삼스레 ‘간병 의료원’이라는 기관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간병 의료원의 등장 배경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 일본이 처한 의료·간병의 현실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선 고령화 심화에 따른 의료와 간병 분야의 수요 변화를 들 수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고령의 만성질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 환자들에게는 치료뿐 아니라 식사, 레크리에이션, 입욕 등 (입원)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생활 서비스’가 더 긴요해지고 있다.
간병 분야에서는 시설 입소자의 초고령화로 인해 단순한 간병수준을 넘어 욕창제거나 임종 케어 등 의료적 수요가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즉, 두 분야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의료와 간병의 일체적 제공이 고령사회의 주요한 테마로 부상한 것이다.
만성기 고령자의 장기 입원에 따른 의료보험 재정의 압박도 간병 의료원을 등장시킨 주요 요인이다. 일본의 한 해 ‘국민 의료비’는 42조엔(약 420조원. 2015년 기준)을 넘어섰다. 이 중 60% 가량을 65세 이상 고령자(75세 이상 35%)가 차지한다.
일본 정부는 어떻게든 불필요한 고령자 의료비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만성기 환자의 장기입원치료를 담당하는 ‘개호(간병) 요양병상’의 대대적 축소다. 고비용의 병원 치료 환자를 저비용의 시설 간병으로 유도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 측의 생각이다. 실제로 ‘간병 요양원 제도’의 주요 타깃은 ‘간병요양병상(4만 5000개 병상)’의 교체 수요에 있다.
인구 감소로 의료인력을 비롯 요양사 등 간병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도 개호의료원을 등장시킨 배경이다. 2025년 일본의 전후(戰後) 베이비붐 세대(47~49년 700만 명 출생, 단카이 세대)가 모두 75세 후기고령자 진영에 합류한다. 이 때가 되면 약 25만명의 간병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의료 및 간병인력의 효율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간병 의료원의 활성화로 의료와 간병이 동시에 제공되면 의료와 간병인력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정책 당국의 계산이다.
의료·간병 일괄법, 고도급성기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 등 병상 기능 개편
일본 정부는 2006년부터 '의료와 간병의 연계'를 핵심 정책으로 삼고 관련 법률을 정비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2014년 6월 시행된 이른바 '의료·간병 일괄법'이다.
'지역에서의 의료 및 개호(간병)의 종합적인 제공을 위한 관련 법률의 정비 법률안'이라는 긴 이름의 이 법은 2025년까지 '의료와 간병의 일체화'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2025년은 상기했듯, 베이비부머들이 후기고령자가 되는 해다.
의료 간병 일괄법의 핵심내용은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의료기관에 병상별(고도급성기,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 보고의 의무화다. 의료기관별 병상기능의 보고를 통해 지역별 의료 수요를 추계하고 이를 기준으로 최적의 지역 병상수와 병상기능의 재편을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9000억원에 달하는 '지역 의료·간병 종합확보 기금'이라는 국가교부금을 창설해 의료기관의 기능분화와 의료·간병 연계에 필요한 관련 서비스를 정비하는 데 쏟아 부을 계획이다. 간병의료원의 설립과 관련한 수가 지원 등의 재원도 이 교부금에서 활용된다.
간호사에 의한 일부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것도 의료간병일괄법에서 눈에 띠는 대목이다. 간단한 의료행위에 드는 의료와 간병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법에 따르면 앞으로 연수를 받은 간호사는 욕창으로 인한 괴사조직 제거 등 총 38개 의료행위를 자체 판단으로 시술할 수 있게 된다.
2017년 6월 성립된 '지역포괄케어(커뮤니티 케어) 강화법'도 의료와 간병의 연계를 핵심 사항으로 담고 있다. '의료에서 간병으로, 병원·시설에서 재택으로'를 모토로 내건 이 법안에는 간병요양병상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설(간병 의료원)의 창설과 의료와 간병을 연계해 추진하는 기초단체에 대한 지원이 명시돼 있다.
일본의 고령화 정도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절반 수준이다(일본 고령화율 28.3%, 한국 고령화율 14.2%). 의료나 간병에 들어가는 재정도 약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도 2026년이면 고령화율이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그만큼 고령자 증가에 따른 의료와 간병의 재정은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혁'의 주 대상인 일본의 간병요양병상처럼 우리나라의 요양병원도 의료재정의 낭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간병 의료원의 등장이 남의 나라의 이야기만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